기묘한 청사과 쏨땀
장마의 시절은 갔다.
(23년 여름에 쓴 글이다.)
기후변화로 우리가 알던 '장마'의 모습보다는 동남아 '우기'에 가까운 비를 경험하고 있다. 500년 이상을 써왔다는 우리말 '장마'라는 용어를 학계, 언론, 인문, 사회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재정립을 한다는 뉴스를 봤다. 새로운 용어가 생기기 전에 더 큰 변화, 그리고 피해가 없기를...
그렇다고 우리가 꿉꿉한 이 날씨처럼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 산뜻하고, 상큼한 무언가가 절실한 시기이다. 덥고, 습하고, 예고치 않은 비를 언제든 마주하는 지금, 짜고, 시고, 맵고, 달콤한 동남아 음식이 당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뜨끈한 고깃국물에 부드러운 면과 이국적인 향신채가 담긴 쌀국수에 새콤달콤하고 아삭아삭 씹는 맛에 쿰쿰한 젓갈의 향까지 더해진 쏨땀을 함께 먹는 건, 한여름에도 푹 우려낸 고깃국물에 쌀밥을 말아 아삭아삭한 열무김치를 올려 먹는 우리네 음식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이야 없는 식재료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쉽진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곤 했는데, 그중 몇 가지는 어느새 나의 여름 대표 메뉴가 되었다. 라임 대신 레몬, 태국고추 대신 청양고추, 피쉬소스 대신 젓갈, 파파야 대신 청사과...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비슷한 이 재료들처럼, 장마 대신 그들의 우기처럼 변화하는 우리의 여름에 기묘하게 적절한 요리로 산뜻함을 되찾아 보자.
<기묘한 청사과 쏨땀>
재료: 청사과 1개, 당근 1/2개, 양파 1/2개, 방울토마토 5알, 땅콩 30알, 매운 고추 (태국 고추/페퍼론치노 2~3개 or 크러쉬드 페퍼 1Ts), 건새우 1Ts, 마늘 3알, 피쉬 소스 2 Ts, 설탕 1ts, 라임 1/2개, 고수 1/2컵
+ 레몬그라스
+ 타마린드 소스 1ts
+ 설탕 대신 팜슈거
+ 고수 대신 민트 1/4컵
+ 절구를 사용하면 식감이나 풍미가 더 좋다.
- 쏨땀의 근본인 그린 파파야를 구했다면 설탕을 1ts 정도 더한다. (입맛에 따라 가감한다.)
- 청사과 대신 콜라비나 참외를 써도 좋다. (참외에는 설탕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달다.)
- 땅콩 대신 캐슈넛이나 피스타치오를 써도 좋다.
1. 땅콩은 마른 프라이팬에 약불에서 덖어준다.
2. 청사과와 당근은 채 썰고, 양파는 얇게 슬라이스 한다.
3. 양파는 물에 담궈 매운기를 뺀다.
4. 절구에 마늘, 고추, 땅콩 (1의 2/3을 쓴다.), 건새우, 고수 (장식용으로 조금 남겨둔다.), 방울토마토를 순서대로 빻는다.
- 마늘을 제외하고 다른 재료들은 청키하게 빻아 재료 자체의 향은 더하고 식감도 좋게한다.
5. 라임은 쥬스를 내어 피쉬 소스, 팜슈거를 믹스하여 설탕을 녹인 후 4에 더한다.
6. 물기를 뺀 양파와 채썬 청사과와 당근에 5를 끼얹는다.
7. 남은 1/3의 땅콩은 챱하여 고수와 함께 장식하여 서브한다.
- 그린 파파야를 쓴다면 절구에 살짝 빻아주면 소스가 잘 스며 맛이 잘 든다.
- 레몬그라스가 있다면 역시 절구에 빻아 (혹은 칼 넓은 면으로 으깬다는 느낌으로 서너번 친다.) 5의 소스에 더하여 향을 낸다.
- 청사과 색을 보호하고 싶다면 채 썬 뒤 식초나 라임 쥬스를 조금 뿌려 둔다.
기묘한 와인 페어링: 피쉬소스 특유의 꼬릿함과 청사과의 상큼함, 양파의 알싸함과 고추의 매콤함, 땅콩의 고소함까지 더해진 기묘한 청사과 쏨땀은 특유의 페트롤 향과 꿀, 꽃 향이 나는 리슬링은 아름다운 마리아쥬를 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