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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묘한 Apr 09. 2024

기묘한 레시피 ep.036

기묘한 자두잼

다른 건 몰라도 내 잼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손발 오그라들지만,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 말이다. 내가 만든 다른 음식들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유독 내가 자부하는 것이 나의 잼이다.


언제인지도 기억에 나지 않을 만큼 어렸던 내게 아빠는 <초원의 집>이라는 책 전집을 선물해 주었다. 저자 로라 잉겔스 와일더가 그린 미국 개척시대 속 소녀 로라와 그녀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나의 인생 책은 아니지만, 소울푸드 같은 나의 소울북이자 소울프렌드가 되었다.


큰 숲속 작은 집, 빅 패밀리의 하루하루는 고되고 따뜻하고, 그만큼 끈끈하고 사랑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숲에서 갓 따온 과일들로 잼을 만들고, 밀가루로 빵을 구워내고, 귀한 고기가 생기면 햄을 만들어 저장하고, 겨울 눈이 올 때면 쌓인 눈을 떠와 과일 시럽을 부어 먹는 그 모습들은 어린 내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제철 과일들로 잼과 절임을 만드는 구절을 읽을 때면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는데, 더운 여름날에도 뜨거운 불 앞에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잼을 만들어 냉장고 한 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은 어쩌면 기묘하지만, 그래서 기묘하지 않다.


잼의 핵심은 농장에서 갓 딴 신선한 과일, 일반 설탕과는 차원이 다른 풍미를 주는 비정제 원당, 향긋한 화이트 와인, 그리고 과일에 어울리는 허브의 조합이다. 이건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어디서 본 적도 없고, 그저 나의 손이 닿는 대로 만드는 그야말로 기묘한 레시피이다. 마시다 남은 와인과 하늘하늘한 초록이들은 그 어떤 유명 잼보다 더 감칠맛 좋은, 아주 유니크한 나만의 잼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든 잼은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서 먹기도 하지만, 보통 나는 샐러드 드레싱으로 더 유용하게 쓴다. 또 에이드를 만들어 웰컴드링크로 내거나, 따뜻한 차로 마시기도 하고, 요거트에 곁들이거나, 베이킹에 쓰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만들기도 한다.


책 속의 로라와 그녀의 가족이 어린 내게 선물한 그 넉넉한 따스함이 이 레시피와 함께 은은하게 퍼지길 바라며.




<기묘한 자두잼>


재료: 자두 1183g, 유기농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 591g, 드라이 화이트 와인 247g, 레몬 2개 (제주 유기농 레몬일 경우는 레몬즙과 제스트 모두 쓴다.), 애플민트, 그리고 블렌더와 유리병


- 애플민트 대신 타임, 라벤더


* 준비: 유리병을 소독하고 반드시 완벽하게 말린다.


1.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이용해 자두를 깨끗하게 씻는다.

2. 큰 팟에 자두, 유기농 비정제 원당, 화이트 와인을 넣고 중불에서 끓인다.

  - 과일과 원당의 비율은 입맛에 따라 3:1~2:1로 한다.

  - 화이트 와인은 과일이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붓는다.

3. 보글보글 끓으면 약불로 낮추고 애플민트를 넣는다.

4. 과일이 물러졌다면 불을 끄고 블렌더로 곱게 갈아준다.

- 애플민트도 같이 갈아준다.

  - 블렌더 사양을 잘 확인하여 쓴다.

5. 레몬즙을 더한다.

6. 중간중간 거품을 걷어내면서 약불에서 계속 졸여낸다.

7. 타거나 눌어붙지 않게 나무 주걱으로 계속해서 저어준다. 

8. 총량이 1/3~1/2이 될 때까지 뭉근하게 졸인다.

  - 잼으로만 활용한다면 1/3까지 졸인다. (살짝 찐득한 정도)

  - 샐러드 드레싱 등 다른 요리에 활용한다면 1/2까지 졸인다. (살짝 묽은 정도)

9. 소독하여 말린 유리병에 소분하여 담는다.

10. 반나절이 지나 잼이 식으면 냉장고에 보관한다.


- 자두는 껍질까지 쓰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친환경을 쓴다.

- 허브가 잘 갈리지 않았다면 4와 5 사이에 체에 걸러낸다.

-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잼의 풍미를 놀랍게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남긴 와인이 있다면 당장 잼을 만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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