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게 달콤한 옥수수
구황작물 [救荒作物]:흉년이 들어 곡식이 부족할 때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주곡 대신 소비할 수 있는 작물.
곡식의 부족함을 못 느끼고 자란 세대들은 음식 재료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한다. 나라고 다르진 않다. 이미 음식 '재료'라고 표현한 것만 봐도 그렇다. 어릴 적에는 제철의 구황작물이 식탁 위에 늘 올라와 있었다. 감자를 시작으로 감자+옥수수 조합이 보이다가 반찬으로 고구마순이 오르고, 그 뒤에는 고구마를 볼 수 있다.
큰 감흥이 없던 이 3종 세트 구황작물들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BBQ 할 때 새롭게 등장했다. 큼지막한 그릴에 올려진 이 3종 세트는 숯의 향을 입고, 그릴의 스트라이프 옷을 입고 근사하게 재탄생했다. 숯 향이 더해진 구황작물들은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니었다. 감자에는 사워크림을 더해, 고구마에는 스윗크림과 시나몬, 케이쥰 소스를 바른 옥수수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므슈가 내게 오고 다시 입맛이 바뀌었다. 아니, 바뀌어야만 했다. 화식을 했던 므슈를 위해 전국 팔도에서 늘 신선하게 받아, 딥 없이 그 자체로 덩그러니 식탁에 올려져 있던 어릴 적 비쥬얼 그대로 다시 마주했다. 고구마는 당분 때문에 적당히 주어야 했고, 감자는 독소 때문에 가려 주어야 했다. 옥수수는... 좀 특별했다.
귀촌하신 지인께서 동친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직접 키운 옥수수 한 접(대략 100개)을 보내주시면, 그날은 종일 옥수수를 다듬어야만 했다. 온 사방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옥수수 껍질을 손질하고, 큰 솥에 끊임없이 삶아냈다. 옥수수 주인께서 뉴슈가를 넣어야 맛이 날 거라고 했으니, 뉴슈가를 넣고 삶았다. 다음에는 소금과 설탕을 넣어봤고, 그다음에는 소금만 넣어보았다. 그렇게 100개씩 몇 년을 삶았더니, 옥수수 삶기에도 기술을 터득하였다. 한평생 서울에 살면서 옥수수를 껍질, 수염과 함께 볼 일이 얼마나 있는가. 옥수수수염은 페트음료 아닌가.
므슈는 옥수수가 큰 자루에서 쏟아지는 날마다 살짝 업되어 있었다. 알알이 톡톡 터지면서 쫄깃하고 달콤한 노오란 옥수수를 처음 맛본 날, 그렇지 않아도 큰 녀석의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부정교합으로 먹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찌나 열심히 씹어 먹던지... 시골에서 옥수수가 도착할 때마다 녀석은 몹시도 신나 그 큼지막한 자루 옆에서 춤을 추어댔다. 그 뒤로는 옥수수가 한창일 시기에 굳이 서울을 떠나 녀석에게 옥수수밭을 보여주었다.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근처에서 기묘하게도 생긴 개 한 마리를 안고 서성이는 나를 대부분의 옥수수 주인들은 기꺼이 환영해 주었다. 그렇게 므슈는 신나게 뛰고 나는 옥수수를 한가득 따오곤 했는데, 그래서 옥수수를 볼 때마다 녀석의 그 신난 눈망울이 떠오른다. 사실 거의 모든 식재료에 녀석이 있긴 하지만...
더 이상 고구마를 박스로 사지도 않고, 옥수수도 한 접씩 받을 일이 없지만, 가끔 시골에서 갓 온 옥수수 본연의 모습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옥수수 슾을 끓여야겠다.
<기묘하게 달콤한 옥수수>
재료: 옥수수, 큰 솥
1. 옥수수를 속껍질을 1~2겹만 두고 겉껍질을 제거한다.
2. 옥수수수염은 남긴다.
3. 옥수수를 깨끗이 씻는다.
4. 큰 솥에 옥수수를 ㅣ, ㅡ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는다.
5. 물을 옥수수 80~85% 정도 높이로 붓는다.
6. 뚜껑을 닫고 센 불로 끓이다, 물이 끓으면 중불로 낮춘다.
7. 25분이 지나면 옥수수가 골고루 익을 수 있게 위치를 바꾸어준다.
8. 10~15분이 지나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은 채로 10분 정도 뜸을 들인다.
9. 다 삶아진 옥수수를 건지고, 삶을 옥수수가 남았다면 물을 더해 계속 삶는다.
- 마트에서 산다면, 분명 옆에 버려지는 옥수수수염이 있을 것이다. 야무지게 챙겨와서 같이 끓이자. 조미료 없이 충분히 자연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