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굴절임
와인 모임을 하다 만나게 된 나의 남사친은 똘똘이 스머프처럼 야무지게 근사한 요리를 뚝딱뚝딱 해낸다. 프랑스식으로도 이탈리아식으로도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근사한 코스 요리를 대접해 주기도 하고, 홈메이드 샤퀴테리로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어느 날 그가 가져온 굴절임은 내 입맛을 사로잡아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만의 굴절임을 만들고야 말았다.
20대에 뭔지도 모르고 유럽 어디선가 먹었던 역하기만 했던 통조림 굴절임의 좋지 않은 기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통통하게 실하면서 신선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리나라 굴은 겨울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미식적 사치가 아닐 수 없다. 이 굴의 수분을 날리고 오일에 절이면 말캉했던 것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변하는데, 그 근사한 식감은 물론이고 한층 짙어진 굴의 풍미와 여러 가지 향신료, 좋은 올리브오일을 한껏 머금은 그 향은 가히 일품이다.
샴페인과도, 화이트 와인과도, 심지어 레드 와인과도 어울리고 꼬냑, 위스키 그 어떤 술과도 어울리는 궁극의 맛. 제철이 지나면 먹기 힘든 과일들을 청이나 마리네이드, 잼 등으로 만드는 것과 같이 내게도 굴을 보름 정도는 거뜬히 보관할 수 있는 멋진 팁이 생겼다. 그것도 쭉 맛있게-
*** 며칠 전 만난 보안이 철저한 나의 남사친은 내게 이 레시피에 본인의 지분이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레시피를 그에게 바친다. :)
재료: 굴 1kg, 굴소스 1 Tsp, 꼬냑 1 Tsp or 화이트 와인 4 Tsp, 마늘 3~400g, 통후추 2~3 tsp, 페퍼론치노 10~20알, 정향 3~4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생 로즈마리 or 월계수 잎, 유리병, 토치
+ 블랙 페퍼 대신 레드, 화이트 등 믹스 페퍼
-> 이런 향신료들은 올리브오일의 향을 훨씬 풍부하게 해준다.
1. 유리병을 소독하여 말린다.
2. 굴을 깨끗하게 씻은 뒤 체에 밭쳐 물을 뺀다.
3. 편 썬 마늘은 볶아 따로 준비한다.
4. 3의 웍에 굴을 넣고 볶듯이 수분을 날린다.
5. 물기가 살짝 남아 있을 때 3의 마늘과 굴소스를 넣어 컬러와 맛을 입힌다.
6. 꼬냑 or 화이트 와인을 넣고 토치로 불 맛을 더한다.
- 토치가 없다면 3에서 넣어 수분과 알콜을 함께 날린다.
7. 수분이 날아가 꼬들꼬들해진 굴을 식힌다.
8. 1의 유리병에 식힌 굴, 통후추, 생 로즈마리, 페퍼론치노, 허브, 정향을 넣고 올리브오일이 내용물을 덮을 정도로 가득 채운다.
9. 뚜껑을 닫고 2~3일 숙성한 뒤 먹는다. (냉장고 약 2주 보관 가능)
- 냉장고나 겨울철 베란다에서는 올리브 오일이 굳기 때문에, 서브하기 전 미리 오일이 녹도록 실온에 둔다.
- 굴소스는 한살림이나 초록마을에서 판매하는 건강한 것으로 쓴다. 굴의 함량이나 다른 부재료가 많이 다르다.
- 굴소스가 없다면 간장을, 꼬냑이나 화이트 와인이 없다면 소주를 쓴다. (하지만 풍미에는 차이가 있다.)
- 알싸한 매운맛을 더 선호한다면 마늘을 미리 볶지 말고 5에서 마늘을 넣는다.
-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우더리한 건 로즈마리는 생 로즈마리의 향과 전혀 다르다. 생 로즈마리가 없다면 구하기 쉬운 월계수 잎으로 대체한다.
- 토치로 내는 약간의 불 맛, 정향, 컬러 페퍼 등의 향신료는 넣지 않아도 맛은 아주 좋지만, 그것이 바로 기묘한 굴절임의 킥이다. :)
- 바게트나 포카치아, 기묘한 브레드 등 기본 빵에 굴절임 오일을 잔뜩 머금은 뒤 굴과 마늘을 얹어 먹는다.
- 파스타 면만 삶으면 라면보다 쉬운 굴 파스타가 된다. -> 다음 레시피에서... :)
기묘한 와인 페어링: 기묘한 굴무침을 샴페인과 페어링하여 파티의 시작을 열었다면, 메인 코스 이후에 먹을 기묘한 굴절임은 비오니에를 추천한다. 화이트와인치고 바디감도 있고 산도는 낮거나 중간 정도인 비오니에는 도수도 다른 화이트들에 비해 센 편이고 상당히 퍼퓨미하다. 그래서 이 쫄깃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기묘한 굴절임과 상당히 근사한 마리아쥬를 뽐낸다. 너무 높은 산도, 너무 가벼운 화이트와인은 굴절임의 무게감에 기를 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