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일이 시작하면 끝맺음이 있다.
삶의 모든 현상이 그러하듯, 프로젝트 역시 분명한 시작과 끝을 가진다. '시작과 끝'을 하나의 루틴으로 정의한다면, 문화 예술 분야의 일은 유독 이 루틴의 반복이 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은행 창구 업무나 쇼핑센터 서비스센터 직원처럼 하루의 일과가 작은 루틴의 연속이지만 직업 자체는 끝없이 이어지는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공연, 전시, 콘서트, 페스티벌은 기획-준비-실행에 이르는 하나의 명확한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이 끝나면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예술 기획자 업무의 독특한 특성이다.
이런 파워 루틴이 천직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 격렬한 사이클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았다.
이 루틴의 장점은 명확하다. 바쁜 시기에는 지옥처럼 바쁘지만,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 잠시 유연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남들이 일할 때 밤샘을 하고, 남들이 쉴 때 잠시 세상과 단절하는 셈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문득 '이것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 아닌가?' 하는 자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명백히 장점이다. 가령, 공연과 전시가 폭증하는 12월 연말 시즌은 업계에서 말 그대로 '전쟁'이다. 평일 공연은 횟수가 늘고, 주말은 말 그대로 살인적인 일정의 연속이다. 일손은 늘 부족하고, 연장 근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12월이면 가족과의 시간이나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은 아예 포기한 채 오직 프로젝트에만 매달려왔다. 그러나 그 시기가 끝나면,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 매력적인 '파워 루틴'은 삶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루틴 하나가 끝나면 하나둘 병원 신세를 지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 예술 기획자들은 평소 건강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쉴 때는 아주 깊고도 푹 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전쟁을 향해 힘껏, 마음껏 달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점은 설령 이번 프로젝트가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한번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음 시도에는 그림이 달라지거나 참여하는 배우가 바뀔 수 있으며, 시간적·공간적·사회적 환경 또한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이나 전시는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이는 실패하여 넘어져서 그 자리에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을 위해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쓰디쓴 실패의 경험이 다음의 성공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새로운 시작의 용기 또한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점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건강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 결국 건강을 해쳐 수술까지 치렀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다시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병원 침대에서 얻은 깨달음 때문이다. 누워 있으려니, 내가 두 발로 걷고 움직이며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지난날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병원 천장의 무늬를 세어가며 다짐한 나의 신념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마음껏 행복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또 무리해서 아프자는 뜻은 절대 아니다.
[글/그림 신나]
Prolog: 문화 기획자가 뭔데? (feat. 어느 날 찾아온 후배 놈...)
Part 1. 진짜 이 일 하고 싶니?
왜 하필 문화 기획자? 딴 거 할 거 많잖아
예술, 정답이 없는 특별한 곳
Part 2. 예술판 생존의 기술
화려함 뒤에 감춰진 현실의 민낯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1
다름을 이해하는 시선: 장르와 공간 2
혼자가 아닌 우리: 협업의 가치
여성 기획자로 살아온다는 것
문화 기획자의 파워루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들
Part 3. 예술가와 조직 사이, 멘털 지키는 법
예술가와 대화는 통역이 필요해
예술가한텐 친구, 조직한텐 충신? 소통은 너무 어렵다
꼰대 되기 싫으면 눈치 챙기고, 요즘 트렌드 읽기
관객이 주인공이야
선배? 후배? 결국 '한 배' 탄 동지들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