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향숙 시인의 시를 읽다
오늘도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일어나야지' 하며.
요즘은 학생들 논문 지도하느라 학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어제도 부지런을 떤 덕분에 일찍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우리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드랬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잠시도 못 쉬고 학생들 박사논문의 목차를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며 보냈지만, 그 시간이 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5시가 넘어가면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에는 지도학생들뿐만 아니라 그냥 놀러온 친구들까지 합류하며 분위기는 더 활기를 띠었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지 싶었다.
그리고 오늘...
오늘도 역시 연구실에 일찍 도착했다. 요즘의 나 많이 칭찬해주고 싶다. ㅎㅎ
학생들의 박사논문 주제에 맞는 자료를 검색하고 프린트하느라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내용이 궁금하면 자리에 바로 앉아 소논문을 한참 읽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다 보니 너무 집중했는지 어느 순간 눈도 아프고 살짝 머리도 아파오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이제 잠시 음악 좀 감상해볼까나. 회전의자를 돌리니 창문 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비가 올 것 같은 슬픈 회색이다. 잔잔한 피아노곡도 흐린 하늘도 나를 의자에 그냥 앉아있게 놔두지 않았다. 그렇게 창가에 서고 보니 아침에 나올 때 우편함에서 꺼내 들고 왔던 '시집' 생각이 났다.
며칠 전 페친 한 분이 시집이 나왔다며 보내주시겠다고 메신저를 보내오셨드랬다. 페북을 안 한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날 기억해주고 연락을 주시다니 참 고마웠다. 바로 그 시집이다.
제목이 ‘그리움의 총량’이다.
오늘 날씨와 참 잘 어울리네. 없던 그리움도 마구마구 생겨날 것만 같은 그런...
창가에 기댄 채 첫 장을 펼쳤다.
‘시인의 말’을 읽는데 글에서 어떤 막연한 슬픔이 묻어난다. 읽자마자 내가 울컥했던 이유가 마지막 문장에 있었다. 십년 전 백혈병으로 잃은 큰 딸을 가슴에 묻고 사는 시인의 아픔이 느껴져서 나도 많이 아팠다. ‘시인의 말’만 읽었을 뿐인데 나는 바로 그 뒷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시집을 가슴께에 올리고 망연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 엄마의 마음을 헤어려보려 하나... 할 수 없었다.
이 깊은 밤, 다시 시집을 펼쳐 시를 읽는다.
'모정탑'
그녀는 매일 밤,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차가운 방구들에 가지런히 누웠다 아침이면 움막으로 들어서는 햇살이 이승 너머로 떠난 아이일 것만 같아 마른 꽃잎 같은 몸 일으켜 길 나서곤 하였다 노추산 자락 한켠, 스물여섯 해 동안 쌓아올린 돌무더기 삼천 개의 탑이 되어 영원의 길을 내었다 빛 잃고 바래진 몸 어느 날 그녀는 길게 꼬리 흔들며 날아든 바람의 등에 황망히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