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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Jun 17. 2021

그리움의 총량

허향숙 시인의 시를 읽다


오늘도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일어나야지' 하며. 


요즘은 학생들 논문 지도하느라 학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어제도 부지런을 떤 덕분에 일찍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우리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드랬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잠시도 못 쉬고 학생들 박사논문의 목차를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며 보냈지만, 그 시간이 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5시가 넘어가면서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에는 지도학생들뿐만 아니라 그냥 놀러온 친구들까지 합류하며 분위기는 더 활기를 띠었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지 싶었다. 



그리고 오늘...

오늘도 역시 연구실에 일찍 도착했다. 요즘의 나 많이 칭찬해주고 싶다. ㅎㅎ 

학생들의 박사논문 주제에 맞는 자료를 검색하고 프린트하느라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다 내용이 궁금하면 자리에 바로 앉아 소논문을 한참 읽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다 보니 너무 집중했는지 어느 순간 눈도 아프고 살짝 머리도 아파오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이제 잠시 음악 좀 감상해볼까나. 회전의자를 돌리니 창문 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비가 올 것 같은 슬픈 회색이다. 잔잔한 피아노곡도 흐린 하늘도 나를 의자에 그냥 앉아있게 놔두지 않았다. 그렇게 창가에 서고 보니 아침에 나올 때 우편함에서 꺼내 들고 왔던 '시집' 생각이 났다. 


며칠 전 페친 한 분이 시집이 나왔다며 보내주시겠다고 메신저를 보내오셨드랬다. 페북을 안 한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날 기억해주고 연락을 주시다니 참 고마웠다. 바로 그 시집이다. 


제목이 ‘그리움의 총량’이다. 

오늘 날씨와 참 잘 어울리네. 없던 그리움도 마구마구 생겨날 것만 같은 그런... 


창가에 기댄 채 첫 장을 펼쳤다.


‘시인의 말’을 읽는데 글에서 어떤 막연한 슬픔이 묻어난다. 읽자마자 내가 울컥했던 이유가 마지막 문장에 있었다. 십년 전 백혈병으로 잃은 큰 딸을 가슴에 묻고 사는 시인의 아픔이 느껴져서 나도 많이 아팠다. ‘시인의 말’만 읽었을 뿐인데 나는 바로 그 뒷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시집을 가슴께에 올리고 망연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 엄마의 마음을 헤어려보려 하나... 할 수 없었다.


이 깊은 밤, 다시 시집을 펼쳐 시를 읽는다. 


'모정탑'

  그녀는 매일 밤,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차가운 방구들에 가지런히 누웠다 아침이면 움막으로 들어서는 햇살이 이승 너머로 떠난 아이일 것만 같아 마른 꽃잎 같은 몸 일으켜 길 나서곤 하였다 노추산 자락 한켠, 스물여섯 해 동안 쌓아올린 돌무더기 삼천 개의 탑이 되어 영원의 길을 내었다 빛 잃고 바래진 몸 어느 날 그녀는 길게 꼬리 흔들며 날아든 바람의 등에 황망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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