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8

by 류류류

술은 주중에는 마시면 안 되는 것을 또 한 번 상기시킨다.

와인이라서 조금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장 보고 와서 배가 고픈 상태였고, 화이트 와인이라 음료수처럼 마셨던 것 같다.

알코올도 13.5%라 낮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6시경에 더운 감정을 느끼며 깼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나름 상쾌하게 출근을 했다.

난 회사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어제 다 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 한 사람이 통근버스를 놓쳐 지각을 했는데,

다들 어제 누구 많이 먹었나 보다. 허허허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그렇게 넘긴다.

(뭐 솔직히 아주 대수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서로 어제 누가 많이 마셨니 누가 취했니 영웅담처럼 얘기하는 그런 게 난 솔직히 좀 한심해 보인다.

난 직장생활을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좀 이상하긴 하다.

난 내가 무척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점점 내향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사람 때문인 건지, 내가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내향적이었는데 외향적이라고 생각해 왔는지. 잘 모르겠다.

나와 점점 대화를 많이 하면 할수록 알게 되겠지.


어제 읽은 책 중에 나는 내가 하는 생각이 아니고 내가 하는 행동이며,

우리는 헛짓거리들을 많이 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늘 살아간다고도.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난 알게 모르게, 아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피해자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건 누구 때문에, 이런 상황 때문에 라는 외부요인을 갖다 되며 나 자신을 슬쩍 책임에서 벗어나게 했고,

좋은 일이 생기면 다 내 덕분인양, 운이 좋다는 듯 행복해했다.


지금 돌아보면 인생이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내가 결정한 것으로 일어났던 일인데 말이다.


연애와 결혼도 결국엔 그 사람보다 더 중요한 건 나다.

내가 결혼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결혼을 해서 생기게 될 더 많은 책임을 인내할 준비가 되었는지.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일어날 많은 희로애락을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었는지.

그리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챙겨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그러고 나면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


그 사람은 마인드는 처음부터 준비가 된 것 같으나,

현대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자신의 삶에 기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둘 다 서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잘 걸어간다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를 갖지 말라고 하는 것. 나한테는 참 어려웠다.


나는 소중한 존재고(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나는 나에게 제일 소중한 존재고,

희한하게 이렇게 여기면서도 자기 학대는 또 그만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특정한 매너와 존경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분 나빠하고 분노했다.

그것 때문에 많이도 싸웠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이렇게 나와 대화하고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신기하다 이런 일을 서른이 돼서야 시작하게 되다니. 시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소름 돋았다.)

(6년 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늦은 나이가 전혀 아니었다. 이렇게 시간은 상대적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거지만,

난 지금 내가 살아갈 날 중에 가장 젊고 어리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 얘기가 이제야 피부에 가까이 와닿는 느낌이다.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계속 나와 대화하며, 지각하며 그쪽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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