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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24. 2024

춥지? 언니가 유부 듬뿍 쫄면국수 해줄게

평범한 한 끼

지난 20일이 가장 춥다는 ‘대한’이라는데 오히려 다른 겨울보다 따뜻하다.

동장군이 올겨울은 조용히 지나갈 모양인지 눈이 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연일 비만 왔었다.


처마 밑에 앉아 양파 껍질을 벗기다가 내리는 비를 바라봤다.

‘가끔은 눈이 와도 좋은데. 땅에 사는 벌레들도 죽고 땅도 숨을 쉴 텐데.’라며 비멍을 때리다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집에 들어갔다.   

  

내 생각은 기우였다.    

 

휘이이잉 휘이이잉, 철커어어엉 철커어어엉, 휘이이이잉, 끼이이이잌 끼잌, 덜커덩 덜컹 덜커덩   

  

불과 이틀밖에 안 지났다. 눈이 쌓일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날려 온 집을 휘감고 다니고, 보온이 잘 안 되는 시골집은 코끝이 쨍해질 정도로 시린 기분이다.

일어나지 못하는 동생을 깨워 출근을 시키고, 식탁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데 혹시나 해서 이용한 텀블러마저 소용이 없다.

방 안 구석에 놓아두었던 난로를 꺼내 옷을 벗기고 밖으로 끄집어냈다. 바지 속에 레깅스를 껴입고 양말을 신고 다시 앉아 포트에 물을 데워 따뜻한 차를 만들었다.     


철커어어엉 철커어어엉 전주인이 지붕에 덧대놓은 양철판과 플라스틱 패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 꽉 잡고 있나?

끼이이이잌 끼잌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다 쓰러져가는 옆집 창고에서 나는 소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컹 덜커덩 삐걱거리는 창고 문은 벽돌을 대고 자물쇠를 달아 고정을 해 한동안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이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나 보다.    

 

이렇게 날씨가 안 좋은 날이면 전화가 많이 온다.

“괜찮아? 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 집은 따뜻해?”

우리가 사는 집은 시멘트로 만든 블록으로 지어 견고하지 않고 단열이 잘 안 된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집이 날아갈 가봐 걱정이 되나 보다.

“바람이 조금만 더 불면 우리 집 날아갈지도 몰라. 소식 없으면 찾으러 와.”라고 웃음으로 대답을 남기지만 정말 날아갈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갔다.

너무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이렇게 추울 수가, 이번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인 것 같다.

역시 대한, 동장군은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얼굴을 내밀자마자 찌리릿 전기가 오는 것이 벌겋게 변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니 몸이 꼬이듯 떨린다.

잠깐 서 있었는데 까만 롱 패딩이 하얀 눈꽃무늬 얼룩 패딩이 되었다.

하얀 고무가 아랫부분에 덧대진 까만 신발 이제는 반은 하얀색이고 반은 하얀 점을 늬로  넣었다.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앞코로 눈을 튕기며 그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를 한참이나 걸어 차에 탔다.      

시동을 걸고 한참을 기다려도 앞 유리에 낀 눈과 성애인지 얼음인지 모를 것들이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덜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 앉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동장군님 잘못했어요. 인제 그만 화 푸세요.”    

 


오후, 기도가 통했는지 바람은 잦아들고 눈은 그쳤다.  그것도 잠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젠 바람도 분다.


‘이런 날은 몸이라도 따뜻하게 데우자.’ 하는 마음과 눈길이 서투른 동생을 위해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진하고 뽀얀 육수를 끓이고 있다.


쑥갓을 씻어 다듬고, 유부를 채 썰어 놓는다.

대파는 어슷하게 썰어 한쪽에 놓아두고 냉장고에서 미니당근을 꺼냈다.

아! 달걀.

추위에 머리가 멍해졌는지 오늘따라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몸 고생을 시키고 있다.

냉장고를 다시 열어 달걀을 꺼냈다.

또다시 열고 쫄면을 꺼냈다.

에고고고 다시 열어 마늘을 꺼내 다진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언니 나왔어."하고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 동생.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길동이와 장난을 치며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나에게 뽀르르 다가온다.

“언니, 나 얼마나 걸려서 왔는지 알아? 앞차가 이 눈길에 핸들을 확 트는데. 나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해.”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많이 놀랬겠네.”

“뭐라고?”     


멸치, 다시마, 고추, 양파, 대파, 후추를 육수에서 걸러낸다.

육수에 어간장 약간, 간장 조금, 소금으로 마지막 간을 해주고 후추를 뿌린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는다.

끓여 놓은 물에 쫄면을 데치고 찬물에 씻어 전분기를 제거한다. 다시 육수에 넣어 따뜻하게 데우고 그릇에 담았다.

육수에 살짝 데친 유부를 올리고 달걀을 풀어 익힌 후 쫄면 위에 올려낸다.

국자로 따뜻한 육수를 떠서 그릇에 담는다.

쑥갓을 올리고 어슷하게 썬 대파를 올려 마무리한다.   

  

급하게 사진을 한 장 찍어 주고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도마 위에 얇게 채를 썰어 놓은 다시마가 보인다.

“두부야, 너 다시마 넣을래?”

“다시마도 있었어?”

“응.”

“나 국물 더 먹어도 돼?”

“그럼.”

동생이 오는 길이 꽤 추웠나 보다.


내일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동생이 걱정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 간절히 동장군님께 다시 한번 사죄해야 할 것 같다.

    

“언니, 무슨 생각해?”

“아니야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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