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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28. 2024

서울 유배지에서 만난 첫 룸메이트

서울

공부엔 눈곱만큼도 흥미가 없는 사람이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난 알 수가 없었다.     


공부는 말이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거야.

그저 그런 대학 나와서 뭘 하겠어. 돈만 날리는 거야.

본인이 잘하는 걸 찾아야 한다는 괴변을 세상 물정 모르던 철부지가 부모님에게 떠들어댔다.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던 이모의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한 대 딱 쥐어박고 싶은 철딱서니가 부모님에게 잔인한 못을 많이도 박았다.     

     

말수도 없고, 친구들이나 사람들에게 관심 없으며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항상 사람들에게 쌓여있는 난 항상 분주했다. 능변가도 아니고 유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나에게 모여드는 친구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걱정스러워했다.

모든 부모님이 그러하듯 세상에 무관심하던 나에겐 문제없고 모여드는 친구들이 문제라는 생각에 봉착한 부모님. 그 속에서 끄집어내야 공부를 할 거라는 착각을 했던 부모님은 나에게 서울로 가라는 명령이 내렸다.         

 

힘없는 아이가 뭣하겠냐마는 화도 내보고, 밥도 안 먹고, 방문을 잠가보고, 그 당시 혼자 살던 친구의 집에 피난도 가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와 책이 든 가방을 아빠 차에 싣고 서울 유배길에 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따라 차가 달렸다. 고속도로는 차들로 북적대고, 복잡한 대로를 지나, 번잡한 길이 나오고, 오래된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일단 가방은 두고 내리자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심드렁히 차 유리 밖을 내다보던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기가 어디냐며 짜증을 내고, 싫다고 내색하는 내 손이 엄마의 손에 끌려 내려졌다.     


이층 집이었다.

엄마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곱슬곱슬 파마머리에 작고 통통함을 벗어난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뚱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자꾸 말을 걸었다.

“위층엔 방이 없어서 아래층에서 지내야 하는데 괜찮겠어?”라고 하더니 “같이 지낼 친구가 마산에서 올라온 학생이야. 성격도 좋고 착해.”라고 말을 덧붙인다.     


난 엄마를 쳐다봤다.

나에겐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처음 온 집에서 나도 모르는 사람이랑 잠을 같이 자야 한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나를 못 본 척 연기하고 있었다.


'친구가 많은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소리치며 '어차피 나 같은 애한테 학비는 사치야. 차라리 돈을 버는 게 낫지'라며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밖엔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인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난, 갑자기 음식 냄새가 스멀스멀 느껴지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실 입구에 떡하니 놓여있는 커다란 식탁 주위로 흐트러지게 놓인 의자를 끌어 앉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으로 들어온 아저씨 같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들어오고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니 엄마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몸을 돌려 “네가 새로 온 애구나. 반갑다.”라며 나에게 잘 지내보자며 생끗 웃더니 이름을 물어본다.

창밖을 까만 줄이 지저분하니 널래 널래 붙어있고 하늘을 찌를 듯 쏟은 전신주를 바라보는 척했다.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로 “애가 낮을 많이 가려서-.” 그렇다며 “모르는 사람하고는 말을 잘 안 하니 잘 돌봐줘요.”라는 부탁까지 하고 있다.     


아주머니는 자주 겪어봤는지 이 어색한 상황에 나를 손바닥으로 어깨를 툭툭 치더니 친구와 같이 지낼 방을 보러 가자며 현관문을 나섰다.

난 벌떡 일어나 엄마의 팔을 부여잡았다.  

        

앞서 내려가는 아주머니 뒤통수와 조금 멀어졌다.

“집에 가서 공부하면 서울에서 안 살아도 돼?”냐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울먹이듯 말을 했다. 그리고 엄마의 팔을 더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이런 나의 평상시와 다른 모습에 엄마의 안색이 오락가락하는데, 인사는 잘하고 내려왔냐며 나와는 말이 1도 안 통하던 아빠가 아래층에서 날 보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마주치자 내 어깨를 쓸어주었다.     

반지하에 있는 조그만 방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여기에 짐 푸시고 위층으로 올라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아주머니는 방을 나갔다.   


작은 문을 열면 수도가 있고 신발을 벗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침대방이 있었다.

엄마도 놀란 눈치였다.

“친구랑 둘이 지내기엔 적당한데. 엄마가 자주 올게.” 당황한 목소리다.     

조금 더 처절히 말해볼까.

“엄마, 내 옷장보다 작은데. 나 여기서 어떻게 살아?”

엄마가 날 바라봤다.


아빠가 캐리어를 들고 내려왔다.     

“위층은 대학생들이 꽉 차서 방이 없나 봐. 자리가 나면 옮겨 준다니까 기다려봐.”

“엄마랑 아빠는 갈게. 오늘부터 여기서 자. 내일 엄마가 다시 올게.”

“여기서 어떻게 자. 그것도 모르는 애랑. 어떤 앤 줄 알고.”

“앞으로 같이 지낼 건데 친해져야지. 짐만 놓고 나가면 못써.”


저녁밥은 먹이고 싶었는지 나로 차에 태워 식당으로 갔다.

‘밥을 사주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사주지 소고기가 뭐야’라는 괜스러운 중얼거림으로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힐 아빠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질로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여기도 분명 하숙집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숟가락으로 먹으면 안 되냐. 저러니 살이 안 찌지”하며 아빠가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는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셨다.

“오늘은 그냥 놔둬요. 애가 불안해서 그래요.”하고 내 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더 미웠다.   


불안 불안하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빠는 여지없이 하숙집 앞에 차를 세웠다.

대문 앞에서 들어가길 머뭇거리는 나를 기다리던 아빠가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계단을 내려왔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문 앞에 다가서자 안에서 두런두런 하하 호호 깔깔깔 자지러지듯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다.

“왔나 봐.”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린다.

“어서 와. 니 기다리고 있었다.” 조그맣고 깡마른 몸에 기다란 머리를 늘어뜨리고 왕방울만 한 눈만 보이던 여자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날 반겼다.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와, 어색해? 우리도 처음엔 다 그랬다. 들어 온나. 인자 니 방인데.”라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키가 크고 깡마른 또 한 명의 여자아이가 날 반겼다.  

   

누가 내 룸메이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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