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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28. 2024

룸메와 이야기할 틈도 없이 나타나는 하우스메이트

서울

“니 이름이 뭐-야?”

서울말을 흉내 낸 경상도 사투리가 아주 많이 섞인 말투가 너무 웃겼다.     


“앉아바.” 키가 크고 말라깽이인 아이가 날 끌어당겼다.

“니 나랑 방같이 써야 되는데.”라며 가녀리고 눈이 커다랗고 빨간 입술이 도톰한 얼굴이 민혜경을 닮은 아이가 날 방실방실 바라본다.    

      

잠시 방을 둘러봤다.

옷을 걸어둘 작은 헹거 하나에 조그만 서랍장 하나 ‘이방을 이 아이와 같이 써야 한다는 거지.’ 그래도 자그마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저 키가 큰 친구와 같이 지낸다면 둘 다 힘들 것 같았다.   

     

조그만 아이가 나에게 다가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쓱 들이밀었다.

“내 이름은 ‘수’, 야는 ‘하윤’

둘이서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 서진.”

“서진, 맞나. 우리 다 동갑. 위층에 동갑내기 머스마 한 명 더 있어. 가는 우리랑 말도 안 섞는다. 촌스럽게 생겨가.”         

 

도대체 이 집엔 몇 명이 사는 걸까?

아까 아저씨 같은 사람 두 명은 봤고 얘네 둘 그리고 동갑내기 머스마 한 명이면 벌써 다섯 명인데, 이들 말고 더 있다는 말인가?      

    

“오빠야들 올 때가 됐는데. 오늘은 도서관서 일찍 나온다고 안켔나?”

키가 크고 말라깽이인 하윤이가 시계를 보더니 “올 때 됐다. 떡볶이 사 오라고 했는데.”라며 다시 날 바라본다.

나 지금 떡볶이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타이밍인가?    

      

“나 아직 가방 정리가 안 돼서...”

“낼 하면 되지. 오늘은 하숙생들하고 인사해 바. 오빠야들 좋아.”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지만, 이 아이들이 날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스킨, 로션, 아이크림, 에센스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필통과 다이어리를 꺼내 주춤거리고 있었다.

“야도 짐이 많네. 서랍장 하나 사야 안하나?”

킥킥킥 웃던 하윤이가 “서랍장 하나 사야겠다.라고 말해야지.”하며 수를 툭툭 친다.

“글나. 난 서울말 쓴다고 하는 건데요.”


웃음이 튀어나왔다.          

난 충청도 대전에서 왔다. 앞으로 나는 충청도 사투리로 이 아이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서울말을 흉내를 내며 대화하는 장면이 떠오르더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니도 웃기나? 야는 모르나 본데. 너도 사투리 쓰는데. 안 그래요?”

“응 나도 사투리 많이 써.”

“문디, 이제 입을 여네.”

“위에 있는 머시마는 전라도 남원서 왔단다. 재밌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빠들 왔는 갑다. 들어오세요.”

“너네 뭐 하고 있었데. 새로 온 애도 있는겨?”

아까 봤었던 아저씨 둘이 들어오고 한 명이 더 들어온다.

이 좁은 방에서 여섯 명이 앉아 있어야 한다니.   

     

저 커다란 봉투는 떡볶이? 저걸 어디에 놓고 먹으려고 사 온 거지?

수가 접이식 조그만 책상을 꺼내 침대 가운데 올려놓았다. 많이 모여본 솜씨였다.

그 위로 봉투가 놓이면서 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수가 봉투에 들어있는 떡볶이와 나머지 것들을 꺼내며 “야 이름은 서진이래.”라고 하더니 나무젓가락 비닐을 벗기고 있었다.     


“그래! 너 아까 우리 봤지. 그때는 이름도 안 알려주데.”

운동화를 꺾어 신고 수더분하게 생긴 아저씨가 서운했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아깐 왜 그랬는데?” 짧은 머리에 각이 진 얼굴이 꼭 군인 같은 아저씨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반듯하게 쓸어 올린 깔끔한 아저씨가 “그만 물어봐. 얘 어리둥절하겠네.” 하더니 수와 하윤이를 도와주겠다고 다가가 과자만 하나 집어 먹었다.  

    

하숙생이 한 명 더 온 사람까지 여섯 명?     

     

인제 그만 물어보고 먹자는 수의 말에 침대에 놓인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군인 같은 아저씨가 비닐봉지에서 크라운 맥주와 소주가 꺼냈다.

“서진이는 술 마실 줄 알아?”

      

술?

대학 입학 학력고사가 끝나고 선배들이 축하한다며 주점이라는 곳에서 술을 사준다 해서 갔었다.

선배들이 어묵탕, 달걀말이, 닭똥집, 돼지고기 두루치기, 골뱅이 소면을 주문하고 소주 2병을 시켰다.

처음이니 맛을 보라며 소주잔에 삼분에 일 가량을 따라 줬다.


입에 소주잔을 살짝 대고 혓바닥으로 맛을 봤다.

어른들이 ‘캬~ 쓰다.’, ‘캬~ 달다.’ 하던데 나는 달다 쪽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의 아빠 엄마는 술을 못 마신다. 아빠는 소주 한잔이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꾸벅꾸벅 졸다가 쓰러져 자버렸다. 엄마가 술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일가친척 중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역시 나는 나의 베프인 외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고 신기해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소주 반 병을 마시고 얼굴이 벌건 해져 집에 들어갔다.

우리 집은 난리가 났었다.

조그만 지지배가 아빠 엄마도 마시지 않는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고 고지식하고 꽉 막힌 아빠가 선배 전화번호를 대라고 헤죽헤죽 웃다 꾸벅꾸벅 조는 날 고문했었다.  

     

“저 내일 아침에 아빠가 온다고 하는데요.”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다.

“그럼 다음에 한잔하자.”

“큰형은 안 내려 온대?”

“누나랑 데이트 나갔다는데.”

“그 언냐는 내 룸메.”   

       

이 사람들 말고 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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