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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04. 2024

순대와 첫날밤

서울

“니는 왜 순대 안 먹는데?”

깨작깨작 떡볶이 떡 두 개, 어묵 한 개를 먹고 과자부스러기만 쓱쓱 모아 조금 입에 넣고 있는 나에게 나의 룸메가 물어봤다.


“우리 집식구들이 순대 안 먹어봐서.”

“친구들하고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 무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먹을만하다.”라며 떡볶이 국물을 찍은 순대를 수가 들이밀었다.

떡볶이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순대를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봤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빠와 동생 셋과는 다르게 난 엄마를 닮았다.

섬에서 태어난 엄마는 어려서 잔칫날 소·돼지를 죽이는 걸 보고 난 후, 고기는 입에도 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잔칫날이나 먹는 육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많이 먹고 자란 탓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나까지 싫어할 일은 아니지만, 쌍둥이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섬에서 할배와 할매랑 많은 시간을 물괴기와 산나물을 많이 먹고  덕인지도 모른다.   

  

“진짜? 순대를 안 먹어봤나?”라며 하윤이가 순대를 얼른 먹어보라며 손을 팔랑거렸다.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순대가 이런 거구나.’라며 질긴 껍질을 씹어  삼키려 이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떡볶이 국물이 목구멍으로 사라지고 본연의 순대 맛이 입천장을 뚫고 콧구멍에 들어찼다.

“엄마가 냄새난다고  사 .”

콧구멍에 가득 찬 순대 냄새를 훙 훙 후우웅 후우웅 내뿜었다.

진짜 이상한 냄새가 콧구멍으로 입안 전체로 돌아다니며 ‘내가 순대여. 몰랐지.’라며 놀리는 듯했다.


희한타. 친구들하고 먹지 않나?”

순대를 안 먹어 본 게 이렇게 이상할 일인가?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도 떡볶이, 쫄면, 만두, 우동, 라면 같은 분식은 먹으러 갔어도 순대를 시켜 먹어본 기억이 없다.     


사투리도 아니고 표준말도 아닌 우리의 대화가 재미있는지 술을 한 잔씩 하며 나와 수 그리고 하윤이에게 고개만 왔다 갔다 하던 뺀질해 보이는 대학생 아저씨가 “다음엔 시장통 분식집에 갈까? 족발은 먹어봤어?” 하며 손가락을 모아 팔목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사투리가 안 썩인 말투를 보니 경기도에서 왔나 보다.     


“오빠! 순대도 못 먹어본 아가 족발을 먹어봤겠나!” 하며 룸메 수가 내 편을 들어주는 듯했다.

“야 꼬 주말에 건대역 갈카줘야 하는데 그날 가까?”라며 하윤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금요일 저녁에 형님이 모이라는디. 옥상서 고기 꿔 먹자고.”라고 하더니 수더분한 아저씨 (이하 수더분)가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금요일에 새로운 아이가 왔으니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자고 전하래.’라는 정확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것이, 이 사람은 충청도 사람이다.  

   

“오빠! 우린 토요일 얘기를 하고 있거덩요.”

그런겨.”라며 수더분이 맥주를 들이켰다.     


똑. 똑. 똑.

누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문 안 여나?” 여자 목소리였다.

“언니가.”


긴 파마머리에 하늘하늘한 긴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은 예쁜 언니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녀가 우리를 쭉 훑어보더니 “야가 가가?”

“언니 내 룸메.”

아무래도 조그마해 가닐 가닐 하지만 씩씩하고 예쁜 언니가 대빵인 것 같았다.  

   

“아 온 첫날부터 이게 무슨 짓이고? 얼른 싸가꼬 올라가 마시라.”

“네 누님.” 하더니 군인 머리와 수더분이 늘어져 있던 안주와 술을 주섬주섬 봉투에 담아내고 있었다.

“이제 왔어. 애들하고 인사하는 거야. 까칠하기는.” 경기도 아저씨가 친구?

“얘 내일 학원 가야 한다는데. 맞지? 아주머니가 너거들 데려오라 해서 내려온 거야. ”라며 날 바라보았다.

“네.”


“음료수랑 과자는 놓고 가라.”라더니 언니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니 이름이 뭐야?”

“언니, 서진이요. 우리랑 동갑.” 수와 하윤이가 싱글싱글 웃었다.

“넌 전공이 뭔데? 너도 예체능이라며?”

요? 디자인이요.”

“글나. 우리 셋 다 한국무용. 얘기 안 했어?”

“언니야, 틈도 없었다. 언니는 세종대 무용과 그리고 00 무용단, 하윤이는 서울예전 무용과. 난 재수.”

와- 00 무용단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모두 무용을 해서 가냘팠구나.    


음료수를 한잔 따라 마시던 언니가 “밤에 먹으면 살찌는데.”라며 과자도 집어 먹었다.

“긴 이야기는 주말에 하고. 니들 학원 빼먹지 말고 가라. 잘 자. 하윤아, 올라가자.”

하윤이가 아무 말 없이 졸졸 따라나서며 “내일 저녁에 봐.”라더니 생끗 웃었다.     


예쁜 언니와 하윤이가 나가고 정적이 흐르듯 조용해졌다.

“언니 예쁘지? 금요일에 고기 꿔 먹자는 큰오빠야랑 연인 사이. 오빠는 졸업하고 은행 다닌다.”     

""그려."


수와 나는 침대에 누웠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뻑적지근해 온몸을 흔들고 쭉쭉 펴대도 몸이 찌뿌둥했다.

 

하윤이가 내가 오는 바람에 언니와 방을 같이 쓰게 됐다고 얘기해 줬다.

안 그랬으면 나와 같이 썼을 거란다.


수가 간단한 하숙집 아침 준비 이야기를 해줬다.

아침 일찍 가장 먼저 씻어야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다는 것. 안 그러면 한참을 기다리거나 찬물에 가까운 뜨뜻미지근한 물을 써야 한다고 했다.


“위층 머스마가 제일 일찍 인난다. 가는 이과. 우리랑 달라.”

그 머스마라는 놈이 가장 먼저 씻으면 수와 내가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를 꼭꼭 집어줬다.

어차피 하윤이를 비롯한 대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맞춰 집을 나가기 때문에 아침엔 볼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맞다. 하숙집 언니야도 있는데. 아침에 보겠네.”

수가 연신 하숙집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털어놓더니 하품을 했다.

“내가 도와주께. 고마 자자.”     

"고마워어"


아- 큰오빠랑 전라도 머스마는 아직 못 봤고. 주인집 언니도 내일 보겠구나.

잠이  안 온다.

잠이 오것어...


첫날밤, 잠이 올려나 싶었는데 쿨쿨 잘 자고 아침에 눈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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