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만 먹어도 살고 싶다는 서울, 나에겐 너무 복잡해
서울
눈을 떠 옆을 보니 수가 꼼지락대고 있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인 것 같은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다리도 쭉 뻗어 올려 기지개를 켰다.
팔을 들었다 놨다,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팔다리가 왔다 갔다 하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날 바라보고 씩 웃고, 다시 상체를 다리 쪽으로 쭉 뻗어 몸을 접었다.
다시 몸을 펴고 날 보더니 “인났나? 잘 자데. 니도 해봐라. 시원타.”라며 몸을 뒤집어 허리를 뒤로 젖히고 접힐 듯 내려갔다.
수가 서커스에서나 나올 법한 몸동작을 나에게 가르쳐 주겠다며 일어나라고 했다.
“생각보다 유연하네. 이렇게 해 바라.”
아침부터 몸을 쭉 뻗었다 접었다 내렸다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몸을 꽈배기처럼 비틀던 수가 “가자.”며 손을 이끌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2층으로 통하는 문쪽으로 걸어갔다.
“애들 왜 안 올라온다니. 내려가봐.”
“엄마! 알아서 올라오겠지.”
“아줌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학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남자애 목소리가 들리더니 키가 큰 머시마가 나온다.
얘가 그 남원에서 왔다는 머시마다.
우리와 힐끔 눈이 마주치고 흠칫 놀라며 눈을 아래로 깔고 고개를 숙여 내려가고, 우리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학원 가?”
“응.”
간단한 대화 같지 않은 물음과 대답이 오가더니 조용해졌다.
“저 머시마가 그 머시마.”
이 층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더분과 군인머리가 밥을 먹으며 오물거리던 음식을 꿀꺽 삼키더니 의자를 꺼내주며 앉으라고 했다.
밖에서 슬리퍼 소리가 나더니 양복 입은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
“너야? 새로 온 애가. 서진이라고. 반갑다. 금요일에 보자.”라고 인사하더니 아주머니에게 회사 다녀오겠다며 문을 열고 다시 나갔다.
밥을 먹던 수더분이 “우리 선배. 은행 다녀.”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좋겠다 시끼야. 좋은 선배 둬서.” 군인머리가 수더분을 툭 친다.
둘이 동갑이구나.
“서진아, 밥 먹어. 수는 밥 먹을 거야?”
“씻고요.”
“서진이는 조금 늦게 씻어도 되지. 먼저 밥부터 먹자.”
엄마 옆에서 아침상을 도와주던 사람이 이 집 딸인가 보다. 달걀부침을 하며 힐끗힐끗 쳐다보고 몸을 살짝살짝 돌리더니 나에게 달걀부침을 가져다줬다.
“너는 수하고 하윤이랑 동갑이라며? 내가 언니네. 3살 많아.”
예쁜 언니가 머리를 곱게 틀어 올려 똥머리를 하고 문을 열고 상체만 들이밀더니 “나 연습 있어서 일찍 가요. 수야 하윤이 깨워서 학교 보내라.”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씻고 나온 수가 “나 밥도.”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오지기 정신 사납제. 욕보네. 일주일 지나면 괴안타. 맞지요. 아줌마.”
“쟤들도 그랬어.”
“수야 사투리가 안 고쳐지니. 하윤이는 많이 좋아졌던데.” 엄마 닮아 짤막하고 통통한 주인 언니가 거드는 건지 핀잔을 주는 건지 모를 말을 한다.
“언니, 저도 많이 좋. 아. 졌. 는. 걸. 요. 언니 요. 즘. 도. 운. 동. 다. 니. 세. 요?”
“얘는 살 안 빠져. 평생 저러고 살았는데 살이 빠지겠어.”라고 아주머니가 딸의 어깨를 톡톡 치자 입술을 삐죽거렸다.
“서진아, 나 학원 갔다 오께 저녁에 보자.”
어느새 수더분과 군인머리도 사라졌고, 주인 언니도 방으로 들어가고, 아주머니는 설거지하고 있고 나 혼자 식탁에 덜렁 남아있었다.
귓속에 위이이잉 튜닝 포크를 해머로 계속 치는 듯한 소리가 남아있어 손바닥을 두 귀에 가져다 대고 꼭 누르고 있었다.
손을 뗐다가 꼭 붙였다가 폭폭 소리를 내며 여러 번 반복하니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먹먹해졌다.
참! 밥.
두어 숟가락 떠먹고 남은 밥이 앞에 놓여있고 남은 반찬이 들어있는 종지들이 보였다.
치워줘야 아주머니가 설거지를 마칠 텐데.
그런데... 정말 맛없었다.
아주머니를 슬쩍 보고 남은 밥과 달걀부침을 입에 욱여넣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나에게 “엄마랑 아빠 오신다는데. 준비하고 있어.”하고 아주머니는 남은 반찬을 모아 식사를 하셨다.
“네가 새로 온 애구나?” 진짜 아저씨 목소리다.
신문을 보며 식사하던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주인아저씨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어여 내려가 준비하고 있어라.”라는 아주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빠 차를 타고 고속도로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대로로 들어갔다.
서울이라 차가 많구나.
도로는 넓은데 거북이처럼 기어서 무슨 다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강을 건너갔다.
차가 천천히 달리고 거북이처럼 기어가서인지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다. 넓은 도로에 커다란 건물들이 많은 번화가로 들어섰다.
“서진아, 저기 보이지 저기. 저기로 내려가서 전철을 타는 거야.”
나 전철 타고 여기까지 와야 하나 보다. 도대체 얼마나 걸려서 와야 하는 거지.
차를 주차하고 높은 빌딩을 둘러봤다. 대전에 있는 건물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한 건물들이 빼곡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학원으로 올라갔다. 원장실 그리고 교무실 같은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이 있고, 상담실 그 옆으로 또 그 옆으로 문이 보였다. 학원이 아니라 무슨 학교 같았다.
선생님 면담과 간단한 테스트 등을 거치고 월요일부터 A반으로 오면 된다고 상담실 선생님이 친절히 말씀해 주셨다.
“전철역이 어딘지 알려줄게. 가자.”
아빠가 앞장서서 걸었다.
“엄마도 전철 타고 다녀봤어?”
“몇 번. 서율은 아빠랑 오니까. 별거 아닌게 걱정하지 마.”
“여가 강남역이야. 강남역에서 내리는 거야. 타는 건 건대 입구에서 타야혀.”
아빠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여기 전철 지도 보이지? 여기가 강남역. 저기가 건대 입구.”
아빠는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안 갈아 타도돼. 2호선 한번 타면 오는겨. 2호선 알았지!”
아빠는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전철표 사는 방법과 타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주말에 친구들이 같이 와준다 했으니까 그때 잘 배우고.”
그러더니 아빠는 나의 팔을 끌더니 뒤돌아 전철역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차를 타고 우리는 다시 도로를 달렸다.
서울 도로는 참 넓었다. 그런데 달리지를 못했다. 신호등도 참 많았다.
아빠 차가 쭉쭉 뻗은 아파트 사이를 돌고 돌더니 우아하고 멋진 건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아~ 세상에 이런 데가 다 있었어!’
아까만 해도 서울에 못 살겠다고 우울했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