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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02. 2024

화 나서 화내도, 해달라 해서 해줘도 찝찝해

못난 글

노랑집에 만두를 가져다 드렸다.

여사님이 전에 드렸던 라쟈냐 그릇에 블랙 올리브를 잔뜩 담아 주셨다.    

 

냉장고에 올리브를 넣어두고 한참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언니 나왔어.”라고 하더니 길동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요즘 따라 동생 기운이 너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하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 불만이 있는 건지, 오락가락하는 동생의 기분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쌓인 하얀 눈이 참 아름다웠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눌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

혹시 다가오는 생일 때문에 그러나?

해가 바뀌면 한 살 더 먹었다고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올해엔 동생에게도 그것이 찾아왔나?     


산책에서 돌아온 동생은 식탁에 반찬을 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정리하며 별소리 없이 식탁에 앉았다.

두부 요리를 식탁 가운데 두고 식사하며 별 이야기 없이 지나갔다.   

  

“아 참! 노랑집에서 블랙 올리브를 잔뜩 주셨네. 내일은 파스타 해서 먹을까?”

“언니, 블랙 올리브 다져서 빵에 발라먹는 거 있잖아. 그거 만들어주면 안 돼? 피자치즈도 올려서 오븐에 구워 먹자.”

“우리 집에 케이퍼가 있나?”

“뭐가 더 필요해? 케이퍼를 같이 다져서 넣어주거든. 그럼 내일 식빵하고 사 오면 되겠다.”

“그냥 올리브만 다져서 올리면 안 돼?”라며 짜증을 낸다.     


눈이 쌓인 멋진 풍경을 같이 볼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고 눈 쌓이고 미끄러운 길을 운전하기 힘들었나 보다.

그날 그렇게 둘이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다.     


다음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올리브 스프레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리브를 두어 움큼 집어 곱게 다졌다.

작년에 저장해 둔 파란 토마토와 매운 고추를 꺼내 다졌다.

양파와 마늘을 다지고 다져놓은 파란 토마토를 팬에 같이 넣어 볶아 식혀놓았다.

볼에 다진 올리브와 매운 고추 그리고 볶아 식혀둔 양파, 마늘, 파란 토마토를 볼에 넣었다.

양파와 마늘을 빼면 모두 짭짤하게 저장되어 있던 재료라 소금은 넣지 않고, 후추와 요거트, 엑스트라 올리브오일 그리고 기름을 뺀 참치를 넣어 잘 비벼주었다.  

   

월남쌈 페이퍼를 찬물에 적셔 남아있던 만두소를 넣고 돌돌 말아주었다.  

   

동생이 들어왔다.

올리브 스프레드를 만들어놨다고 하니 “난 그런 거 안 먹어봐서 몰라. 난 안 먹는다니까!”라며 짜증을 냈다.

“먹는다며? 그래서 월남쌈도 만들어 놨는데.”

“내가 언제 먹는다고 했어.”라며 화를 냈다.

부글부글 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힘들었다.

“네가 먹고 싶은 거 해 먹어.”라고 말하고 식탁에 조용히 앉았다.


차를 한잔 마시며 가라앉아라. 가라앉아라. 주문을 외워도 통하지 않았다.     


동생이 프라이팬에 월남쌈을 올리고 갑자기 냉장고에서 시금치를 꺼내고 다듬더니 시금칫국을 끓였다.

슬쩍 그 모습을 보다가 “육수 없는데.”라고 톡 쏘자 “냉장고에 있던데.”라며 되받았다.

아차 며칠 전에 끓여 두었던 것이 있었구나.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노트북을 켜고 드라마를 클릭해 보고 있었다.


바글바글 시금칫국 끓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안 먹는다.”

동생이 혼자서 달그락거리더니 냉장고에 쪄둔 만두와 시금칫국 그리고 프라이팬에 구운 월남쌈을 가져왔다.

내 앞에 월남쌈 두 개를 쓰윽 들이민다. 그런데 월남쌈이... 튀겨진 상태가?

노르스름한 부분이 반 정도 그 뒷면은 허옜다.   

   

저걸 먹어야 해? 말아야 해? 저거라도 안 먹으면 배고프겠지.     

식탁이 치워지고 난 내 할 일을 하고 동생은 이불에 들러붙어 조용한 밤을 지냈다.

    


다음날

빵에 올리브 스프레드를 올리고 모짜렐라 치즈를 올려 구워 먹었다.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는다는 거야! 나 혼자 다 먹는다.”라고 외치고 진짜 혼자 모두 먹어 치웠다.

     


그 후 이틀 동안 서로 대충대충 알아서 끼니를 챙겨 먹었었다.

화가 나서 밥 차리기 싫었다. 그런데 나는 찝찝했다.     


이틀째 저녁.

“내가 내일 부장님 온다고 말했나?”

“아니, 경태 온데.”

“응.”

“모자라는 재료는 너희가 장 봐서 와.”

“알았어.”


아이들이 먹을 만두전골을 만들며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식탁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하지만 묘한 기분이 드는 분위기였지만 경태도 동생도 잘 먹고 있었다.

그런데

“나 혼자 있고 싶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에 경태와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동생을 바라봤다.  

    

동생의 말을 들어주는 우리는 그래 3년 직장생활 힘들 때지, 처음 3개월 그다음 6개월 그리고 1년이 고비이고 3년이면 뛰쳐나가고 싶지.


기분이 좋아지려면 뭘 원하는지 물어봤다.

돌아오는 생일에 생일상 안 차려줘도 되니 동생의 반려견 길동이 저녁 산책을 시켜 달란다.

알았다고 흔쾌히 승낙하고 남은 전골과 다시 끓인 전골 두 냄비를 두 녀석이 다 먹었다.    

 

동생의 생일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고 싶다는 말 때문에.


어제도 산책은 내가 시켰는데. 그래 뭐 약속이니까. 길동이 산책 준비를 했다.

그런데 길동이는 저녁에 산책을 6시 그리고 자기 전 10에 두 번 한다.

분명 동생은 10시 산책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냥 두 번 다 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기특한 길동이 녀석이 쉬야를 한꺼번에 다 하더니 들어가잖다. ‘비가 와서 그러나?’ 살살 달래고 얼러도 안 가겠단다.


동생이 생일이라고 일찍 끝내줬다며 30분 일찍 퇴근하고 왔다.

“길동이 산책했다.”

“진짜? 내가 말한 건 밤 산책인데.”

“밤이면 두 번 아니었어? 그럼 난 산책 다녀왔다.”

“아니야. 밤이면 두 번이지.”라며 기분이 한결 업그레이드된 목소리로 우겨대고 있다.

“알았어. 내가 한 번 더 해준다.”     


차리지 말랬다고 케이크도 미역국도 안 차려진 식탁이 덩그런 해 기분이 이상하다.

“그럼 쉬어.”라고 말한 뒤 난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해달라는 걸 해주자.’     


잠시 후 누워서 뒹굴뒹굴하던 녀석이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그래 최고의 만찬이 별거냐.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길동이 마지막 산책 시간이 됐다.

하네스와 목줄을 연결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동생이 잘 갔다 오라며 방긋방긋 웃고 있다.

하하하 동생도 나오라고 길동이가 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야, 너도 나오래.”

“이 시끼 나 오늘은 쉬는 줄 알았는데.”라며 투덜투덜 외투를 걸쳐 입고 동생이 나온다.

조금 걷더니 오줌을 찍 갈기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간다.

그냥 하하하 웃음만 나왔다.  

   

식탁에 물컵을 들고 동생이 앉아있었다.

안쓰러웠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난 텀블러에 뜨거운 보이차를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아. 아. 오롯이 혼자 있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 피해주려 했는데.


난 왜 이리 찝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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