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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09. 2024

제대로 된 요리가 뭘까?

1. 너만 답답혀? 나도 답답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벗꽃이 조금씩 하얀 듯 연하디 연한 분홍색 꽃잎을 날리던 날, 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읍에서 출발해 빼곡히 피어있는 벗꽃길을 굽이굽이 지나고, 재에서 맑은 날에만 보인다는 바다와 너른 논과 들로 펼쳐져 확 트인 마을을 바라보며 들어가고 있다.

재넘이와 함께 내려가며 바라본 마을의 풍경은 그지없다.      

재넘이에 스쳐 날려오는 벗꽃잎을 맞으며 난 또 이 마을을 찾았다.


눈처럼 날리는 벗꽃에 정신이 팔려 윤산 중학교 교문을 지나칠 뻔했다.

1년 만에 찾은 학교는 여전하구나.   

  

주차하고 학교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누군지 모르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어보더니 방문록에 인적 사항을 적어달라 요청한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바라지 않지만 의심스러운 눈으로 다짜고짜 방문록 작성이라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민할 때로 예민해진 학교는 관계자 외에 사람들이 방문에 꺼리는 상황이라 이해하고 넘어갔다.  

    

조심스럽게 “수학 선생님과 약속이 있습니다.”하고 말하자 얼굴이 곰새 공손하게 바뀐다.

안내해 주는 선생님을 따라 탕비실로 들어가기 전 교무실에 있는 윤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웃으며 눈인사를 주고받고, 난 교무실을 지나쳐 탕비실로 들어갔다.    

 

‘오호! 커피머신이 바뀌었는데, 좋아 좋아.’라며 커피를 한잔 뽑으려 두리번거리는데 봉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 왔어요? 들어오기 전에 전화하지.”

“와서 찾으면 되지 뭘 전화까지. 이 기계는 어떻게 쓰는겨?”

“이건 안 써 봤는 갑네. 내가 맛나게 타 줄게요. 지금도 아아?”

“응, 난 시원한 거.”   

  

“나범이하고 얘기는 잘 혔어요?”

“그때 봉쌤하고 얘기한 내용이 단디.”    

 

내가 윤산중학교에 온 이유는 이 학교 3학년 학생의 연락 때문이었다.

이 녀석의 말은 ‘제대로 된 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라는 취지의 요리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요리는 무엇이고?,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어 학교를 찾았다.   

  

“서진쌤 연락처는 누가 알려줬데요?”

“작년 진로담당 선생님.”

“어떻게 알고?”

“봉쌤 바보여. 작년에 애들하고 수제 햄버거 만들 때, 내 작업실에 왔었잖아.”

“맞네. 그랬네.”

“그날 햄버거 소스 열심히 저어놓고 딴소리데.”

“아, 윤선생님이 나범이한테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준 거구나.”


“애들 많이 컸지?”     

윤산중 아이들은 1년 동안 견과류 쿠키, 바게트 샌드위치, 수제 빵도 만들고 과일로 잼도 만들며 몇 차례 나에게 요리를 배운 적이 있었고, 작년엔 내 작업실에서 요리 수업을 받았었다.      

“디엔이 알죠? 키가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얼마나 컸는데?”

“나중에 보면 알아. 나보다 커.”     


윤선생님이 탕비실로 들어와 찻잔에 커피를 한잔 내려 자리에 앉았다.


종소리가 울린다. 이제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고 올 시간이다.

‘똑똑’

“그냥 들어와.”라고 봉쌤이 소리치자 나범이가 쭈뼛거리며 혼자 들어온다.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범이 많이 컸구나. 더 멋있어지고. 잘 지냈지?”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 수 없는 봉쌤, 말을 아끼는 윤 선생님, 신중한 나범이, 내용을 몰라서 할 말이 없는 나, 이렇게 네 사람이 앉아서 멀뚱멀뚱 찻잔만 바라봤다.   

  

“나범아, 뭘 만들고 싶다고? 요리동아리?”

“네.”

“학생 교육원에서 지원하는 동아리 지원프로젝트에 계획서를 내고 싶다는 얘기지?”

“네. 먼저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프레젠테이션까지 마쳐야 해요.”

“그렇구나. 요리동아리를 만들고 싶은 이유가 뭔데.”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서 만들고 싶어서요.”     


난 선생님들을 둘러봤다.

“선생님 아이들이 얘기하는 제대로 된 요리가 뭘까요?”   

  

잠시 탕비실에 들어온 덩치가 커다란 선생님이 정적을 깼다.

“애들이 좋아하는 요리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애들이 뭘 해.”


“넌 무슨 요리를 배우고 싶어?”

“처음엔 아이들이 짜장면이나 탕수육을 만드는 중국요리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우와~ 그거 어려운 짜장면을.”

“선생님 짜장면 만들려면 어려워요?”     

“어렵지. 짜장면 달인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그런데 어쩌냐. 선생님은 중화요리는 전공이 아니라. 선생님이 알아봐 줄까?”

“그래서 아이들과 이야기가 해봤는데, 중국요리는 포기하고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하자고.”

“그럼 아직 아무 계획도 없는 거야?”

“네.”


결론은 요리동아리를 만들자는 생각은 있었는데, 제대로 만드는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선생님이나 아이들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요리가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언제까지인데?”

“마감까지 10일 정도 남았어요.”

세상에나 저 상에나 10일 동안 동아리 활동 계획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세 사람 모두 날 바라보고 있다.


“나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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