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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09. 2024

먼저 너의 주위를 둘러봐

2.지천으로 널린 게 요리재료야 2

“나라면 말이야. 주위를 먼저 돌아보겠어.”   

  

그렇다.

이 학교, 아니 아이들이 사는 이 작은 시골 마을은 낙지와 굴, 바지락, 전복, 생선 등 각종 해산물이 집집에 있는 냉장실에 보관이 될 정도로 많이 나오는 곳이다.


학교 교문을 나와 길을 건너면 보이는 논이며 밭에서 나오는 쌀, 귀리, 보리, 강낭콩, 팥, 검은콩, 대두, 배추, 고구마, 감자, 밤 호박, 애호박, 늙은 호박, 마늘, 고추, 가지, 토마토, 양파, 부추, 무, 당근, 쪽파, 대파, 시금치, 갓 등 셀 수 없는 곡식과 채소 그리고 구황작물이 지천에 또는 저장고에 쌓여있다.


심지어 학교 담벼락 안에 서 있는 대나무 숲엔 죽순이 한창이었다.

말 그대로 키우는 소나 돼지만 죽여서 상시 먹거리로 쓰지 못할 뿐 온갖 음식 재료들이 지천에 넘쳐난다.

    

“이 지역에서 재배하는 농산물과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해보는 건 어때?”

갑자기 나범이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더니 나를 바라보고 웃었다.

봉쌤이 “맞네. 그런 걸 해야지. 우리 주변에 채소며 해산물이 널렸네.”라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린다.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조용히 있던 윤 선생님도 근심이 사라진 듯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지역에서 열리는 음식 축제에 참여하는 거야.”

“아이들을 받아 줄까요?”

“두드려 보는 거지. 최선을 다해 설득해 보고 안 되면 다음에 또 두드리고 될 때까지 두드리지 뭐.”     


우리가 사는 지역엔 2019년에 시작된 지역만의 차별화된 맛과 멋을 담은 대표 먹거리 축제라는 프레임으로 음식 문화축제 열렸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가수들을 불러 홍보하고 화려하게 개막을 알렸었다.

알려지지 않은 축제여서 그런지 군민들의 친목회 같은 분위기로 음식관에서는 한몫을 잡아보고자 각각의 부스는 열기로 각축전을 벌였고, 다양하고 새로운 음식보다는 부녀회에서 장만해 온 음식 같은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부스 앞 테이블에는 얼큰하게 달아오른 아버님들과 많은 관계자가 술 한잔 기울이는 어른들의 잔치 같았다.


이후 코로나 펜데믹으로 온라인과 오프나인이 병합된 스마트 축제를 기획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담은  도시락을 밥차에 싣고 전국 방방고곡을 달렸다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껴들어 놀 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지역 음식 축제에, 지역민이자 미래에 지역을 이끌어가야 할 아이들이 참여가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난, 진심을 보여줬다.  

   

“선생님, 우리가 어른들만 모이는 곳에 참여할 수가 있나요?”

“음식 축제에 요리대회가 있거든 거기 보면 참가 자격이 쓰여 있다. 뭐라고 쓰여 있는 줄 알아?”

나범이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선생님들도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지역 주민 누구나. 너희도 지역 주민인데. 왜 안돼!”     


아이들이 참가하면 유명 연예인을 불러 술 마시고 노는 흥청망청 축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는 축제로 거듭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았다.


“누가 아니! 몇 달 동안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요리대회에 나갈 수 있는 실력으로 성장할지.”

“저희요?”

“응. 미래는 아무도 몰라. 더군다나 너희처럼 커가는 아이들의 힘은 누구도 알 수 없거든.”

“에이, 요리대회는 너무 갔다.” 봉쌤이 깔깔깔 웃어댄다.

그렇다고.

“그래도 요리대회는….”이라며 고민하는 윤선생님.

“아니 누가 나가래.”     


나범이가 웃는 것도 아니고 무표정도 아닌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데 눈동자가 왔다 갔다 마구 흔들리는 것이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나범아, 너희에게 요리대회 나가라는 말은 아니야.”

“그런데 선생님 제대로 배우면 요리대회도 나갈 수 있어요?”

“제대로 가 뭔데? 요리도 베이직이 있어. 개인과 조리실 위생 그리고 나와 동료의 안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침. 예를 들면 조리실 안에서 행동 방식, 옷차림, 개인과 주방 청결 같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먼저 배우는 거야. 칼을 잡는 법, 칼 같은 위험한 조리도구를 가지고 갈 때 옆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를 배우고, 서로 협동하는 것도 배우는 거지. 그렇게 열심히 배우다 보면 선생님처럼 되어있겠지.”

나범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칼도 안 잡아보고 뭔 소리야.”

“그래도 저는 선생님에게 배워봤잖아요.”     

두 선생님이 나범이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상태가 수상하다.

희한한 건, 나범이는 나름 이 학교 모범생으로 책임감이 강하고, 잘생기고, 착하다고 정평이 나있어 모든 선생님이 이 녀석에게는 쓴소리든 잔소리든 한마디도 안 한다. 칭찬만 듣고 살던 아이다.

선생님들이 아닌 나범이를 위해 이야기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 다음, 너희 마을에 채소만큼 많은 게 있어. 뭘까?”

“그러게요.”

“생각해야지.”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고개를 들고 “농부.”라고 대답한다.

“맞다. 농부. 그리고 어르신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참 많아. 시골엔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지. 안 그래?”

“네 맞아요.”

지금까지 이 동네를 살피고 지켜준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 농수산물로 노인식을 연구하고 개발해 보는 거야. 1.2학기 방학 전에 리 단위 노인정에 노인식을 전달하거나 해드리는 거지. 보람되겠지?”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난 되도록 지속 가능한 계획과 아이들에게 성취감 그리고 주변인을 생각하는 요리를 만들고, 그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취약계층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가 음식을 전하거나, 불러서 같이 먹는 것도 좋고. 열심히 배운 요리실력을 장애인 복지시설 같은 곳을 찾아가 음식을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선생님 우리가 이 일을 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다 못해. 하지만 동아리를 같이 만들고 싶은 친구들과 상의해서 할 수 있는 일만 고르고 너희 생각을 덧붙여서 계획서를 만들어봐.”

    

“정리하자면

지역농수산물을 이용한 요리.

지역 음식 축제 참가.

지역농수산물을 이용해 건강한 노인식 연구 개발.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 요리를 만들어 전달.

복지시설 요리 봉사.

같은 것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럼 요리대회는 안 나가나요?”

큰일이다. 이 녀석 요리대회에 꽂혔다. 그렇다고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고...


“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 중 ‘정말 할 수가 있는 것!’을 정리해서 계획서를 쓰고 선생님에게 보여줘야 해?”

“네.”

어라 이 녀석 대답에 힘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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