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Jul 12. 2023

쇼핑중독. 같이 가실래요? 6

다이어트 -19

주말에도 일하는 그녀.

그러니까….

두부는 한 달에 두 번의 주말만 쉴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  칼출칼퇴. 야근은 절대, 시간 외 근무 없다. 돼지농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그녀는 폐수처리장도 관리한다. 동물농장들 특성상, 사육장에선 매일 동물의 끼니와 오수 그리고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깨끗한 사육장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도 멈추지 않고 사육장에서 오수를 폐수처리장으로 흘려보낸다. 흘러간 오수를 처리하는 기계는 365일 멈추지 않고 돌아, 깨끗한 물로 정화를 시킨다. 이렇게 하루도 쉴 수 없는 폐수처리장 기계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고로 두부는 페수처리장 담당 기사와 주말교대 근무를 하는 중이다.

돼지가 ‘주말엔 내가 오줌똥을 참아줄게.’라고 맘을 먹기 전까진 동생은 주말근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주말 쇼핑을 두부와 내가 같이 쉬는 날로 맞추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데 이날은 모든 게 딱딱 맞는 날이었다.     


쇼핑 가기 전날     


“여보세요.” 두부가 조용히 전화를 받는다.

“두부야. 회사? 옆에 누구 있어?”

“아니, 차장님 하고 상무님은 일 있어서 나가셨어. 언니 수업 잘하고 왔어?”

“어. 수업은 잘하고 왔어. 마당에?” 이번엔 마당에 뗏장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많지? 아저씨가 안 그래도 많을 것 같다 하셨는데. 장당 20x20cm라고 해서 우리 잔디밭에 얼마나 들어가나 세어봤거든, 모자랄 줄 알았는데.” 많이 주문한 이유를 녀석이 숨도 안 쉬고 내뱉고 있다.

“두부양~ 뗏장 사이사이 떼어 심는 것도 계산한 거야?” 항상 여백의 미를 두어야 하는데 틈 없이 꽉꽉 채워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두부다.

“...... 언니, 잔디밭을 넓히자.”

우리 두부 손 너무 크다.     


아흐. 또 전 주인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우리, 두부와 나는 일할 땐 폭풍 같지만, 집에만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맛있는 거 만들어 먹고, 강아지랑 산책하고, 동네 할머니들과도 잘 어울려 잘 놀았다.

그. 러. 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리 집이 경매에 나온 것이었다.

전 주인은 우리에게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이라, 결국 우리가 경매를 받았다. 사연이 많았던 집이고, 주인에게 버려졌던 집이라 더 애착이 갔다. 그래서인지 집안팎의 리모델링 구역이 점점 커져갔다.


집은 깨끗해져 가는데 두부와 나, 서로의 말끝에 툭툭거림이 느껴졌다.

스. 트. 레. 스.

아니고, 한마디로 ‘너무 힘들다.’

그래서 우린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았다.


‘쇼핑’

 


땅을 고르고, 밥숟가락 들 힘도 없어 깨작거리며 푹 퍼져 앉아 있던 밤.

“언니 오늘이 며칠이지?” 동생이 뭔가 일을 벌이려 이것저것 찾는 것으로 보였다. 불안한데.

“5월 6일” 난 말할 기운도 없었다.

“장이 언제 서지?” 두부가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올렸다가 땡기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내일이 북창 장날이네.” 나도 핸드폰 화면을 켜고 캘린더를 눌러 확인을 했다.

“아침 일찍 갈까?” 두부는 콧바람이 필요한가 보다.

“그래. 얼른 자자.” 나도 가끔은 콧바람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럴 때 보면 우린 참 잘 맞는다.

난 X세대, 두부는 MZ세대의 두 간격을 서로 오며 가며 잘 뛰어넘는다.

솔직히 우리는 알파벳으로 설정된 세대에 별 관심이 없다.     


드디어 북창 장날이다.

두부가 나보다 일찍 일어났다.

“언니 쇼핑 가야지.” 목소리가 맑다.    


두부가 신이 났다.

오늘은 쇼핑 데이

리스트업을 한 종이 쪼가리를 들고 차에 올라 달렸다.      

“모자는 얼굴까지 가리는 걸로 사야겠어.”

“언니 우리 바지도 사야 되지?”

“난 됐고, 넌 두 개 정도 사야겠더라.”

“토시는?”

“가서 보고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사고 아니면 다음 읍장에 가서 사자.”

“난 장화를 하나 사야 하는데.”

“왜 작아?”

“아니 더워지는데 조금 짧은 걸로 살까 하고.”

“참! 잃어버리지 마. 앞치마도 사야 해.”

“일할 때 입을 거?”

“응.”     


장에 들어서자 화려한 복장을 한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보인다.

“두부야, 저 할머니 입은 바지 이쁘지 않냐? 고무신하고 잘 어울릴 것 같지?”

“언니 난 저게 더 마음에 드는데. 옆 솔기가 살짝 터 있어. 앉았다 일어날 때 좋을 것 같지.”

두부와 나는 취향이 전혀 다르다. 나는 실용적인 것을 동생은 스타일에도 신경을 쓴다.

“조금 있으면 모기 나온다.” 누가 나이 먹은 꼰대 아니랄까 봐, 나는 모기 물릴 것이 걱정이다.

"일단 풀빵 먹으면서 생각해 볼래?"

두부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풀빵 쪽으로 달려간다.


드디어 우리는 화려한 옷들이 펄럭이는 가판대 앞에 서 있었다.

초롱초롱한 두부의 작은 눈.

“언니! 저쪽엔 더 많아."

"언니! 저쪽 옷들이 더 화려한데.”

“두부야, 모자는 저쪽이 더 예쁘지 않냐? 종류도 많고. 어머, 이 바지 이쁘다. 천이 좋다. 두부야 이거 봐봐. 네 스타일이다.” 형형 색색의 무늬를 두른 텃밭 컬랙션이 진열된 휘황찬란한 가판 부티크에 눈을 뗄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소매가 시스루인 냉장고 셔츠, 하늘하늘 잠자리 날개 같은 몸빼바지,  꽃무늬뿐만 아니라 기하학적인 무늬까지 선보인 이번 컬렉션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앙증맞은 밝은 호피무늬 장화는 두부에게 어울 릴 것 같다.

두부와 나는 서로 어울릴 만한 옷들을 골라주고 고르며 음에 드는 텃밭 컬렉션에 눈도장을 박아 놓았다.

“여기. 여기. 앞치마 귀여워.” 이렇게 두부와 나는 종횡무진 달리듯 돌아다닌다. 풀빵이 식어버린 지 오래다.

이게 뭐라고.


두부는 밑단 옆선이 꽃잎이 포갠 것처럼 살랑거리는 몸빼를 하나 집어 들고 고민을 하고 있다. 아마도 논밭사이에서 튀어나올 모기가 걱정이 되나 보다. 난 조용히 까만 비닐봉지를 두부에게 건네어주고 웃었다. 내 동생은 멋진 꽃무늬 몸빼 두 개를 득템 하고, 나는 두부와 나눠 쓸, 얼굴까지 가림막이 있는 커플 꽃무늬 모자와 망사로 된 꽃무늬 앞치마를 까만 비닐봉지에 넣었다. 까만 비닐봉지 안이 화려하다.

  

“내친김에 목포 갈래? 순두부 먹고 오자.”

“아이고 언니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이러고.”

우리의 행색을 찬찬히 둘러보는 두부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다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그녀지만 도시 나들이엔 신경이 쓰이나 보다.

“뭐 어때. 남들은 우리 신경 안 써. 우리가 신경 쓰이는 거지. 깨끗한데 뭐.”

“그럼 이마트도 가?”

“그럴까?” 나의 대답에 녀석의 얼굴이 밝아진다.    


우린 77km를 달려 밥 먹으러 갔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 밥집에 무사히 안착했다. 남들에겐 평범할지 모르는 청국장 한상을 레스토랑 고급요리처럼 받아 들고 뚝배기 바닥 소리를 내며 비워냈다. 뜨끈하고 든든한 한 그릇이 두부의 피곤함을 풀어 줬다.


“언니 가는 길에 공구 마트도 들리자.” 두부의 목소리가 다시 우렁차졌다.

“철물점 갈 일은 없냐?” 나도 거기에 한 술을 더 얹었다.       

  

언제나 그렇듯 화려한 몸빼 하나에, 따끈한 음식 한 그릇에 마음이 풀린다.   

행복이 별거 있나 일상을 즐기면 행복이지.

 

두부야, 다음 읍장은 언제지?

장화컬렉션
이전 05화 커도 너무 큰, 두부 손 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