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늘 같은 날엔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셔야지.” 두부가 어제 나들이로 기분이 좋다.
“그럴까?”
커피를 갈고 내리는 사이 날이 밝아졌다. 롱 머그잔에 아아를 만들어 빨대를 꽂았다.
창문이 점점 어두운 색에서 푸르른 색으로 바뀌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린 빨래 건조대 앞으로 갔다.
“언니는 무슨 색?”
“난 초록색.”
“그럼 난 빨간색.”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풀 장착'
난 초록색 체크무늬 몸빼와 주황색 얼마니 후드를 입고 목까지 지퍼를 올렸다. 그리고 살색 양말 안에 바지를 집어넣어 깔끔하게 마무리. 오늘에 픽, 빨간 목장갑 선택, 하늘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챙 넓은 모자로 세팅 끝.
두부는 옆 트임이 살짝 들어간 빨간색 꽃무늬 몸빼와 하얀 반팔티에 하얀색 위에 빨강, 파랑, 초록, 노랑 하트가 들어간 토시로 뽐냈다. 노랑 양말로 마무리하고 오렌지 목장갑과 초록색 꽃모자를 픽.
서로 마주 보고 엄지손가락을 올려주었다.
“언니 선크림은 발랐어?”
“아니.”
모자를 벗어 선크림을 바른 다음, 아아를 들고 장화 앞에 섰다.
새로 산 장화가 날 반겨주고 있다.
'오늘은 완벽한 날이야.'
고추방석에 앉아 아아를 한 모금 쪼오옥 땡기고, 먼저 서로의 패션에 대해 칭찬을 해주었다. 두부가 나의 옷을 보고, 색이 정말 잘 맞는다며 자기도 다음엔 같은 톤으로 입어 봐야겠다며 부러워했다. 두부는 귀여운 스타일로 색 조합과 위아래 매치를 잘했고 살쪄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평가에 만족스러워했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아진 두부가 잔디를 다 심을 수 있을 것 같다.
난 오늘 일을 두부에게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일단 밭을 한번 뒤집자. 난 나무를 때고 있을게”
우린 쌓여있는 나무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난 두부를 다시 째려보았다.
그녀가 갑자기 풀을 뽑기 시작했다.
난 다시 쌓여있는 모래 산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눈이 힐끔힐끔거렸다.
'대략 난감'
“그런데 두부야. 골재상 아저씨가 우리 시멘트 많이 샀다고 모래를 더 퍼주신 거지?”
“한차씩 판다고 하셔서…. 덤도 있는 것 같아.” 무덤덤히 이야기하던 두부.
“마당에 다 깔아 버릴까? 언니 걱정하지 마! 내가 깔게.” 그러면서 힘자랑을 한다.
“그래도 남을 것 같아.” 난 두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 두부는 손이 크다.
지금도 남아있는 모래
난 머그컵을 내려놓고 토치와 톱 그리고 도끼를 들었다.
“흙을 확실히 엎어놔야 해?” 성질 급한 동생이 얼른 일을 마치려 할까 걱정이다.
“내가 그런 건 잘하지 언니.” 두부가 장담은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쌓여 있는 나무 중 작은 것을 골라 톱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화목난로에 넣어 태웠다. 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화르륵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나무가 타닥타닥 거리며 잘 탔다. 이래서 화목난로가 좋은가 보다. 나는 서둘러 굵은 나무를 골라 톱질을 시작했다.
“언니 못 안 빼고 태워?” 두부가 고새 옆에 와있다.
“다했어?” 난 잔디를 심을 마당을 둘러보았다.
“금방 한다니까. 못 안 빼냐고?”
“못은 안타.” 그리고 난 부두에게 자석으로 못을 건져 올리는 걸 보여줬다.
몇 주 열심히 땠다고 멀리서 보면 줄어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까이 가면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전구도 못 갈던 내가 도끼질에 톱질까지 할 수 있다니. 그나저나 팔이 너무 아프다.
그래도 새로 산 옷이 맘에 들어 기분 좋게 일을 하려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 검색을 시작했다.
이분은 아니고, 이분도 집 안에 있고, 여기는 실어다 줘야 하니 안되고.
찾았다!
“선생님, 황토방 아궁이에 잡목도 때시나요?”
“~”
“아 그래요. 우리 집에 많이 있어서요. 혹시 필요하시면 드리려고요?”
“~”
“큰 나무가 많아요. 집 부수고 나온 거라.”
“~”
“지금 오시려고요? 네 천천히 오세요.”
“두부야! 나무. 이 선생님이 가져가신 데.”
오마나!
선생님이 전기톱을 가져오셨다. '아. 아. 아. 일찍 전화해 볼걸.'
그래도 난 또 하나의 스킬이 늘었으니 후회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톱질, 노루발 망치질, 불 때기’
두부가 밝은 얼굴로 아이스 홍차를 선생님께 드렸다.
“시원하게 드시고 하세요.”
“둘이서 이 힘든걸 다 하는 거야?” 선생님이 집을 쭈~욱 둘러보셨다.
“어머 선생님, 수돗가랑 바닥 미장도 저희가 다했어요.” 내 목소리, 몹시도 친절하다.
“대단들 해.” 칭찬인 것 같은 말씀을 하시더니, 순식간에 나무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있던 톱이 부끄러웠다. 아니 저 전기톱이 부러웠다. 나무를 자르고 차에 싣는데 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셔요~”
선생님은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며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떠나셨다.
나무가 쌓여 있던 자리가 어찌나 깔끔해 보이는지 마당이 더 넓어진 기분이다. 더불어 나의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생님 진짜.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큰일을 하나 끝냈다는 생각에, 갑자기 내 몸에서 빠져나갔던 에너지가 다시 팍 하고 들어왔다. 두부를 바라보며 "그럼 이제 잔디인가?"
“두부야 이리 와봐.” 동생과 나는 흙을 평평히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논을 메꿔 지은 집이라 그런지 비가 오면 질척이고, 물기가 없으면 흙이 너무 단단했다.
“흙을 걷어내, 그리고 모래를 깔아, 그 위에 상토를 올려 그런 다음에 잔디를 올려주는 거야.”
“그렇게 복잡해?” 비가 오면 질척이는 흙이라 손을 좀 봐줘야 할 것 같다는 설명을 해주자 녀석이 투덜거리질 않는다.
“언니 카페에 가서 아아 마시고 올까? 옷도 새로 샀는데.”
“그럴까.” 새 옷을 입었으니 잠깐이라도 나들이를 해야지.
“점심은?” 두부 쉬고 싶은가 보다.
“짜장 먹고 올까?” 면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중화요리를 선택해 봤다.
“그래. 탕수육도 먹자.” 두부가 흙 묻은 장화를 물로 털어내기 시작했다.
오늘도 다 끝내기는 글렀군.
맛집은 아니지만 시원한 식당에 앉아 두부는 짜장을, 나는 짬뽕을 그리고 탕수육까지 먹어 치웠다. 역시 힘들게 일을 한 뒤엔 잘 들어간다. 집 근처 커피숍에서 아아도 하나씩 들고 집에 와 처마 밑에 돗자리를 깔았다. 내가 미장한 바닥이 울퉁불퉁하지 않은 것이 만족스럽다. 시원하고 좋다. 잠에 들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다. 잠이 들까 싶다가 정신이 번쩍 났다. 난 벌떡 일어나 두부를 흔들었다. 녀석이 부스스 일어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시간이 없어 바로 각자의 일로 투입 됐다. 두부는 잔디 심기를 시작했고, 난 텃밭 구역정리를 끝내고 포트 쳐놨던, 상추, 쑥갓, 치커리, 바질, 청경채를 심었다. 밭에 뿌릴 시금치, 와일드 루꼴라, 딜, 파슬리, 공심채 씨를 살펴보고 있는데, 어라! 잔디가 이상했다.
“두부야 너 흙 안 걷어냈지?”
“표시나?” 동생이 잔디를 툭툭 친다.
나는 울고 싶었다. 집 보다 높은 마당이 더 높아질 것 같다...
“물은 잘 내려가겠네.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데.” 두부가 너무 힘이 들어서 대충 끝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고 투덜거리다, 멀리서 자기가 심은 잔디 보더니 “그럼 지금부터 흙 걷어낼까?”라고 한다.
“언덕 만들라고?”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
두부, 머리가 좋은 녀석이다. 서울에서 대학 나온 뇨자다. 심지어 장학금 받고 다녔다. 센스도 타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