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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ul 14. 2023

자연과 함께하는 고행. 8

다이어트 -17

이제 거의 끝이 보인다.


왜 이런 고행의 길을 선택했을까? 많이도 후회했다.     


10대, 밴드부, 걸스카우트, 합창부에 학원까지 다녔어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20대,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큰 가방 두 개 들고 이사 다닐 때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30대, 절에 들어가 100일 동안 15만 배를 하며 기도드렸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40대, 불 앞에서 기미가 얼굴을 덮이도록 고기 굽고, 프라이팬 돌려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50대, 자연을 가꾼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고행인 줄 몰랐다.     


허리를 숙이고 힘에 부쳐, 무릎 꿇어 땅 위를 기어 다녀도 바지에 묻은 흙이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끝내고 일어날 거야!

외치며 발버둥 치는 내 몸뚱이가 가여웠다.

얼마나 돌보지 않았으면, 근육들이 다 쪼그라들었나 보다.  

   

집에 앉아 끙끙거리는 나를 보는 동생의 눈엔 내가 얼마나 하찮게 보일까?

         

“언니 내가 공구리 치자고 했지.”

두부는 내가 OK를 외치면 지금이라도 온 마당을 시멘트로 발라버릴지도 모른다.

“넌 내 오이 따 먹지 마.” 난 언제나 먹는 걸로 유세를 다.

“난 원래 풀색 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동생은 녹색이 나는 음식은 맛이 좋지 않다고 잘 먹지 않는다.

“언니 이제 나이도 생각해야지.” 이젠 내 나이를 들먹였다.

“나가면 아직도 40대로 봐.” 내가 봐도 그렇지는 않지만.

“언니가 무서워서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는 거야.”     

두고 봐라. 내가 꼭 다 심고 병원에 갈 거다. 내가 찐으로 힘이든지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사 먹으면 되지 왜 그렇게 텃밭에 집착하고 그래?” 두부는 내가 안쓰러워하는 말이었다.

“너 갓 딴 상추 먹어봤어? 오이 먹어 봤어? 당근은? 사 오는 파슬리 맛도 약하지? 루꼴라도, 고수도, 바질도 키워 먹으면 향이 진해, 맛도 진하고, 기분도 진하고.” 나의 요리에 대한 개똥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음식은 기분으로도 먹는 거야.” 이것은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다.

“너 생각해 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이것 좀 드셔봐. 시골에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쌈채여.’ 하며 건네면 더 달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 몸에 좋은 건 맛이 없어도 먹는다.

“호박 짜글이 파는 집에 ‘호박을 어머님 텃밭에서 키웁니다.’라고 쓰여있으면 맛이 밍밍해도 찾게 된다고.”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밥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 너에게 밥을 해주면 얼마나 맛나겠어. 안 그래?”

“호박 짜글이 먹고 싶다. 호박 언제 심지?” 두부가 또 딴소리다.

“언니 내일 반 차 내고 올까? 월말 결산 끝나서 시간이 있는데.” 내 말이 두부를 움직였을까?

“내일 읍에서 만날까?” 더 늦기 전에 호박, 고추, 토마토 그리고 가지 모종을 사 와 심어야겠다.   

 

우린 텃밭 도면을 다시 그려봤다. 두부가 요런 건 좋아한다.

“여기는 오이, 여기는 호박, 고추는 따로 심고 가지랑 토마토는 나란히 심어야겠어.”

“호박은 조선호박 심어? 언니 라벤더도 심어 주라. 그리고 하얀 꽃.” 텃밭에 공구리치고 싶다던 두부가 꽃은 심고 싶은가 보다.

“그래. 언니가 마가렛을 쫘~악 심어 줄게.”

이쪽은 다 허브, 뒤쪽으로 로즈마리랑 타임, 민트, 코리엔더. 중간엔 호박이랑 그린빈, 공심채. 어디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심각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다 그린 도면이 나왔다...

종류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둘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양을 줄여 심지 뭐.


“두부야 빼고 싶은 게 있어?”

“음..... 없어. 다 먹을 거야.”     


일찍 자자.

“언니 9신데?”

“그러니까 자야지.”

나 원래 밤잠이 없는데, 요즘 베개에 머리만 대면 생각이 안 난다.

  

텃밭 도면

아침 일찍 호미를 들었다.

열무, 시금치, 공심채, 딜, 차이브, 루꼴라, 파슬리, 오레가노, 세이지 씨를 뿌렸다.

그리고 읍에 나가기 위해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래봐야 내 패션이라고는 멜빵바지에 고무신이지만, 오늘은 나름 머리를 풀어헤쳐 머리핀까지 꽂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농.약.상’  새로운 단골집을 만들 계획이었다.

   

역시, 바쁜 농사철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우리를 반기는 곳이 없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내가 사봐야.

모종: 고추 2개, 가지 2개, 토마토 2개, 호박 2개, 고수 5개
기타: 유박(거름), 상토, 고추. 가지. 토마토 지지대     


“두부야, 저기 육회 비빔밥 먹고 다시 돌아다닐까?” 여기 오일장엔 육회비빔밥이 유명한 곳이 있다.

“갈비탕도 먹어?” 두부는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 갈비탕, 육회비빔밥 하나씩 시켜 먹자.”  

우리는 식당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탁자 옆에 생선구이 냄새가 났다. 고등어가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식당 식구들 식사로 주인아주머니가 올려놓으셨나 보다.

그런데 냄새가... ‘타겠는데.’ 뒤집어 드렸다. 그리고 불을 껐다. 아주머니가 한번 쓱 보시더니 말없이 생선 한 토막을 턱 하고 주셨다. ‘고맙다는 거지?’ 나도 고개를 끄떡여 답례했다. 아주머니도 고개를 끄떡여주셨다. 한우집에서 생선을 먹어서인가, 아까 받았던 박대에 대한 서러움은 사라지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엔 다른 농약상을 찾았다. 보통 시골에선 농약상 채소 씨앗을 팔아서인지 모종도 같이 판다.

“이모, 모종 2개씩도 팔아요?”

“2개 사서 어따 쓸라고?” 할머님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바라본다.

“둘이 먹으니까 하나씩 2개씩 사려고요.” 난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대답을 했다.

할머니님이 딱 보면 알아라는 듯 “이사 왔다요?”

“네.” 이렇게 말하면 바가지 씌우려나?

“어떻게 심는지는 알고?” 할머니 멘트가 다른 단골 사장님들과 똑같다.

“심어 본 적 있어요.”  우와 비슷한 대답.  

우린 할머니께 단골이 되겠다 약속드렸다. 그리고 농약상 사장님이 포트를 종류별로 하나씩 주셨다.

좋은 단골집이 생긴 것 같다. 우린 복도 많다.


사실 우리가 가는 단골 가게, 사장님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 상대해 봐야 이득이 없다.

단지 우리가 박카스 한 상자 들고 가 떠드는 수다가 그분들의 잔잔한 시골 생활에 조약돌이라도 돼주니 반겨 주시는 거다.

고추 2개 사고, 자석 한 개 사겠다고 20분을 스무고개 하는 우리를 반겨 주는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와~ 다 심었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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