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귀촌인 부부, 나무를 가져가 주신 이 선생님 부부, 꼬맹이 학생들, 두부네 전. 현 직장 동료들, 다인회 회원들, 아마도 이사 와서 알게 된 모든 분 그리고 이 먼 시골까지 찾아와 주는 지인들, 두부네 식구들, 우리 식구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고마운 손님들을 맞는 것 같다.
고마운 마음에 180x90cm 식탁이 가득하도록, 새벽 버스 타고 온 연어 요리와 이탈리안 요리, 동남아 요리, 베지테리언 요리 그리고 한정식 등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요리로 채워 대접했다.
우린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두부와 싸우다가도 '이번엔 무슨 요리를 할까?' 하며 머리 맞대고 요리 리스트를 정리한다.
대부분이 두부가 먹고 싶어 하는 요리지만.
난 그 재미로 시골 생활에 적응해 나가지 않았을까?
잔디밭에서 몇 번의 밥을 차려야 하지?
먹물 빠에야
“두부야, 테이블 하고 의자를 좀 사야 되지 않겠냐?”
“언니 가운데 집에서 요리 준비 하려면 거기도 치워야 해.”
“에어컨도 하나 옮겨야지?”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얘기다.
큰 공사가 다 끝났다는 거지. 여기저기 남은 소소한 작업들이 널려있었다. 자질구레한 일이야 살면서 해결하면 되지만, 우선 '태양광 패널'이 문제였다. 고장이 났다. 아니 고장 난 걸 받았다. 어떻게 고장이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패널이 지붕 위에 있어서, 살펴볼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올라가겠다는 두부를 여러 날을 말리고 말렸다.
텃밭 일을 마무리할 즘, 우리에게 읍에 있는 모든 업체의 인포메이션을 알려주는 공구마트를 찾아갔다.
“사장님 혹시 태양광 패널 보시는 분 아시나요?”
언제나 친절한 사장님, 역시나 인상 좋은 태양광 사장님을 소개해줬다.
태양광 사장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고장 났다는 거죠?” 알 수가 없다 설명을 해드렸는데도 또 물어보신다.
“그런 것 같아요. 날은 좋은데 계량기 그래프가 안 움직이네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전기에 대해선 일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일단 돌아가 계세요. 연락하고 들를게요.” 언제 온다는 말도 없이 기다리라는 사장님이 이상했지만 우린 기다리기로 했다.
텃밭에서 건강하게 자라주는 채소들을 한참 갈무리하고 있을 때, 태양광 사장님이 오셨다. 며칠 뒤 오실 줄 알았는데 바로 오셨다. 사장님이 몰고 온 트럭에는 사다리 같은 게 달려있었다. 신기했다.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온 사장님은 전선 교체만 하면 끝날 것 같다며, 걱정 말라하신다.
이틀 후에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다.
이틀 후
사장님이 오신다는 시간보다 더 이른 아침에 오셨다. 아침 일정이 취소되어 일찍 올 수 있었다며, 아침에 일어난 사건들을 풀어놓기 시작하신다.
“아. 아. 예예, 아. 아. 예예.” 영혼 없는 내 대답. 아! 무슨 노래에 후렴구 같은데…. 서태지?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일단 시원한 거 드릴까요?” 언제나 그렇듯 일단 시원한 음료 한잔.
“아무거나 주세요.” 아무거나? 사장님은 제일 어려운 주문을 하셨다.
“커피? 과일 차도 있는데? 생강차 좋아하세요?” 나는 집에 있는 모든 차종류를 말씀드렸다.
“과일 차 주세요.” 이 사장님은 몸에 좋은 걸 선호하시는 느낌이 든다.
담아 놓았던 빨간 피자두 에이드를 시원하게 타드리고, 난 집안에서 학생들의 계획서를 보고 있었다.
‘똑. 똑’ “저기요?” 사장님이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나를 부른다.
“네?” 난 총알같이 나가 보았다.
“일찍 안 끝날 것 같은데?” 예상밖이라는 표정으로 난감해하시는 사장님.
“고칠 수 없나요?” 나도 걱정이 된다.
“지붕 위에 있는 전선이 너무 꼬여서 다시 정리해야겠는데.” 사장님이 설명은 해주시는데 내가 뭘 알아야지. 답답하다.
“그럼 전기 보시는 분을 먼저 부르고 사장님은 다음에 오셔야 하나요?” 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생각한 다음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전기 하는 사람인디?” 갑자기 사장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오신다.
‘아! 태양광도 전기지.’ 이런 무식한 서진.
“그럼 어떻게? 지불을 따로 해야 하나요?” 금액이 문제여서 사장님이 나를 부른 거였다.
“내가 알아서 하요?” 사장님, 금액 말씀을 안 하신다.
“해야 하면 해야죠.” 설마 바가지는 아니겠지라며 난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어떻게 됐어?”
“일이 커진 듯, 지붕 위 전선들이 엉망인가 봐. 그것도 손봐야 패널이 작동할 것 같은데.” 사장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동생에게 전했다.
“그럼 전기 아저씨를 불러야 해?” 두부도 나랑 똑같다.
“태양광도 전기잖아.” 나, 잘난 척 한번 해봤다.
“그러네. 언니 똑똑해.”
‘그럼. 그럼’
“두부야 점심시간에 잠깐 나올 수 있어? 집에서 점심 먹을 수 있겠어? 사장님 집에서 밥을 해드리는 건 그렇고, 보리밥집에 전화해서 버섯전골 작은 거랑 보리밥 주문해 놔.”
“OK~”
시원한 네온 에이드 한잔 드리고 싶네.
“사장님 열 좀 식히고 식사하러 가시죠? 너무 덥네요.” 난 오랫동안 땡볕 아래에서 일하고 계셨던 사장님을 집안으로 모셨다.
“들어가도 돼요?” 사장님은 여자 둘이 사는 집이라 어려운지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그럼요. 보리밥 좋아하세요? 버섯전골도 시켰는데.” 사장님 취향을 몰라 여러 가지를 시켰다는 말씀을 드렸다.
“난 소고기 안 먹어요.” 전혀 음식을 가리는 분같이 안 보였는데, 의외였다. 이래서 먼저 사장님께 여쭤봤어야 하는데 내 불찰이다.
두부에게 문자를 넣었다.
서진: 전골에 소고기 빼달라고 해.
두부: 왜?
서진: 소고기 안 드신대.
두부: 왜?
서진: 나도 몰라.
두부: 내가 먹으면 되지.
서진: 소고기 국물이잖아?
두부: 아까운데. 고기...
두부가 집에 도착하고 다시 사장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향했다.
“많이 드세요.” 사장님 그래야 일하죠...
“저 다이어트 중이라 많이 안 먹어요.” 아까 얘기를 하시지 주문한 요리 나열했을 땐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뒷북을 친다. 어쨌든 이 사장님 재미있는 분이다.
“사장님 나이에 그 정도면 배가 안 나온 편이죠. 날씬하신데요.” 난 입술에 침은 바르고 얘기를 했다.
“이 나이 되면 배 나와서 관리해야 해요.” 아. 아. 그래서 사장님이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었구나.
난 두부를 바라보았다. “난 밥이 맛있어.”라며 나의 시선을 외면하는 두부
‘다이어트 얘기는 언제 꺼내지?’
두부는 시멘트 개고, 땅 파고, 모래를 펴고, 뗏장을 나르는 힘든 두 달을 보내고도 살이 안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