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고생하신 태양광 사장님, 추가 전기 공사 비용을 안 받으시겠단다.
“다음 주에 다시 와서 확인할 겁니다. 잘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돼요.”
고마운 사장님을 위해 피자두 청 한 병과 텃밭에서 딴 쌈채를 한 봉지 안겨 드렸다.
그날 밤
“너 아까 사장님 말 들었지?”
“뭐?” 두부는 딴청을 피우며 강아지랑 놀고 있다.
“몸매 관리한다고.”
녀석이 나의 말을 외면하고 있다.
“대단하신 거 같아, 그 연세에도 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거 보면 말이야.”
난 두부를 흔들었다.
“너 언니 수업할 때 봐봐. 농사짓는 분들도 손톱에 예쁘게 물들이고 화장도 곱게 하고 오지?”
“그~러~니~까. 난 못해 못해.” 항상 끼니를 끊는 다이어트를 하던 두부는 다이어트가 두려울만하다.
...
두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 그녀를 이 동네 토박이로 본다.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가 그녀의 패션,
그런 두부가 화장? 하겠어?
거기다 사투리도 잘한다.
할머니들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 동네 손녀 같다.
이젠 할머니들도 살이 더 오르면 안 되겠다고, 지금이 딱 보기 좋다고 말씀해 주신다.
쟤를 어쩌지?
“두부야? 언제 쉬지?”
“이번 주 쉬는데.”
“서울 갈까? 테이블도 사야 하고, 쇼핑도 하고. 너 부모님 뵌 지도 꽤 됐잖아.”
“그럴까?”
두부와 나는 오랜만에 도시 나들이를 계획한다.
주말 아침 06시 우리는 서울 두부 본가로 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텃밭에서 딴 오이, 가지, 호박, 모닝글로리 등 가지고 갈 수 있는 채소는 모두 실었다.
“이태원 수제 햄버거집 어때?”
“냉면은 꼭 먹어야겠다.”
“난 부대찌개”
“광장시장 들러 칼국수 먹자.”
차 안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가 온통 서울 가서 먹을 음식 이야기뿐이다.
출발한 지 1시간, 우리가 서울 갈 때마다 들리는 휴게소에 도착을 했다. 아마도 이 휴게소가 전국에서 가장 맛이 있는 유부 가락국수를 파는 것 같다. 내가 먹었던 휴게소 유부가락국수 중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와 두부는 개운하게 한 사발 뚝딱하고 다시 출발. 그러고도 또 먹는 얘기다.
우리가 장을 보러 서울에 가는 건지 먹으러 가는 건지. 하긴 먹는 얘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우리다.
그렇지 두부야?
우리가 서울집에 도착하자마자, 뛰어나오신 두부 어머님은 딸을 보고 반갑다는 인사대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딸을 쳐다본다. 그리곤 폭풍 같은 잔소리가 쏟아진다.
“두부야! 너 더 찐 거니?” 두부 어머님 눈이 동그래지면서 반갑다는 잔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전 같으면
“서진 씨 오셨어요. 먼 길 힘드셨죠?”라고 먼저 말씀하셨을 텐데.
두부 엄마와 나는 어렵고도 가까운 사이다.
설명하자면
나와 두부는 17살 차이, 나와 두부 엄마와는 8살 차이.
내가 두부를 한국에서 처음 만났었더라면, 아마 내가 두부 엄마를 ‘언니’라고 불렀을 거다.
그럼 두부는 날 ‘셰프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같이 살 일도 없었겠지.
두부 엄마는 나에게 딸을 맡겨놓은 기분인가 보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하신다.
그런 두부 엄마와 자주 통화하고 두부가 모르는 비밀도 가끔 만든다.
“언니 엄마가 뭐라고 해? 왜 자꾸 전화하는 거야.”
“딸 걱정돼서 하는 거지. 그리고 애들은 몰라도 돼.”
이런 두부 엄마가 나에게 인사도 안 하고 딸 몸매를 두루두루 살펴보셨다.
아버지 “너 술 많이 마시냐?” 끌끌끌 혀를 차는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아니야. 언니가 자꾸 먹여서 그래.”
“내가 언제?”
아. 또 삐졌다. 두부는 자기 부모님과 내가 한편이 되는 게 싫다.
두부를 서울에 데려오길 잘했다.
퇴근한 두부 동생 “언니,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니? 더 쪘어?” 애인이 생겨 예뻐진 두부 동생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퇴근한 남동생 “어쩌려고 그래?” 참. 참. 참. 소리만 연거푸 내뱉는다.
“너도 아저씨 몸매 됐거든. 돼지네 돼지.” 두부가 계속 퉁퉁거리며 삐죽거린다.
“난 피곤 하기라도 하지. 나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거든.” 남동생이 한심하다는 듯 두부의 몸매를 훑어보며 연신 쯧쯧쯧하고 혀를 차기 시작했다.
“나도 피곤해.” 두부가 소리를 지른다.
“얼른 이불 깔고 자. 그런데 너 어쩌냐?” 두부 엄마 말끝에 두부가 담겨있다.
“너 내일 어디 갈 거야?” 엄마가 갑자기 부드러워지셨다. 두부와 나에게 원하는 게 있으신듯했다.
“왜?” 두부가 퉁명스럽게 물어본다.
“오랜만에 아빠랑 청국장 먹으러 가자. 서진 씨도 괜찮죠?”
“그럼요.” 오랜만에 청국장을 먹는다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부 엄마의 화색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어머님도 먹는 거 참 좋아한다. 하하하
서울 나들이 이틀째, 아침을 대충 챙기고 파주 헤이리 마을로 향했다.
빡빡한 도시에 사시는 부모님이 시골에서 온 딸을 위해 푸르른 서울 외곽 드라이브를 준비하셨다.
‘헤이리’ 아주 오래전에 가봤다.
난 요리를 하기 전 잠시 미술 쪽 일을 해본 경험으로 알게 된 작가분들이 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첫해, 헤이리라는 예술마을로 몇몇 작가분들이 이주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헤이리에 사는 분들에게 초대를 받아, 한지 공예 작가님과 도예가 선생님들을 모시고 헤이리를 방문해, 오랜만에 수다스러운 얘기들을 했었다.
그리고 도자기 몇 점을 기분 좋게 들고 온, 한적하고 여유로웠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들르게 된 헤이리는 전과는 아주 달랐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던 시간은... 없다.
내가 알던 공방들도 사라졌다. 건물들만 남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사람이 너무 많다. 많아도 정말 많다.
겨우 꽃들이 만발한 카페를 찾아 한자리를 잡았다.
살 이야기, 비만 이야기, 건강 이야기, 다이어트 성공과 실패. 다이어트 식단, 온통 두부가 살을 뺐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두부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어머님 너무 잘하고 계셔요. 아무래도 너 엄마한테 ‘살 뺄게.’라고 해야 할 것 같다.’라는 주문을 난 두부에게 계속 걸어주었다.
지금까지 했던 다이어트 얘기가 무색하게 우리는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 아버진 청국장, 엄마와 두부 그리고 나는 수육을 너무도 맛있게 먹고 왔다.
먹을 땐, 누구도 다이어트 이야기를 안 꺼냈다.
맛있으니까.
갈 때마다 챙겨주시는 두부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