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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ul 11. 2023

커도 너무 큰, 두부 손 5

다이어트 -20

눈이 번쩍 뜨였다. 뜨였다는 건, 일어나고 싶어 일어난 게 아니라는 거겠지?


이놈에 몸이 그냥 누워있어도 되겠구먼, 벌떡 일으켜 커피포트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억. 헉. 아. 끄응 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 나온다.

혹시, 일찍 잠든 나를 두부가…. 몽둥이로 나를…. 설마.   

  

나는 커피 한잔 들고 기지개도 필 겸, 미장한 바닥에 물도 한번 뿌려 줄 겸 나왔다.

'야! 정신 차려.' 내 몸이 삐그덕 거리며 말을 안 는다. 팔도 들어보고, 다리도 털어보며 내 몸을 풀어보려 움직여 본다.

움직인 내 몸이 고새 잡초를 뽑고 있었다. 한 손엔 호미를 들고 커다란 바구니까지 들고 왔다.

‘병 걸렸나. 강박증.’

아무래도 텃밭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지 이러다 쓰러질 것 같다.

‘음…. 잔디도 알아보러 가야 하는구나. 두부를 깨워…. 죽일라고 할 텐데.’

벌써 두 양동이째.

정신이 들었을 때 얼른 뿔뿌리를 버리고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구웠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일 시키려면 잘 먹여야 한다고.

치즈 올리고, 샐러드 올리고, 달걀 프라이 올리고, 마요+케첩+간장+핫소스+깨소금 섞어서 올리고.

“두부님 일어나세요~ 길동아, 산책하러 가자.”

“오늘은 일요일인데….” 

“너 내일 출근하잖아? 언니도 학교에 가 봐야 해. 일어나. 커피 끓여놨어.”

“두부야. 빵 먹을래.”

...

“일어나~~~~ 아!

...

...

“길동아, 라면 먹을까?”

“무슨 라면?” 라면 귀신 두부가 일어났다.

“점심에.” 난 길동이를 쓰다듬으며 모른 척했다.

난 안 봐도 알 수 있다. 동생이 가만히 서서 또 째려본다. 눈을 크게 뜨고 째려야 무섭지.     


“아가씨, 커피 드시어요~”     

한 모금 마시고 있는 두부에게 브리핑에 들어갔다.

오늘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잔디 주문하러 가야 한다.
수돗가 쪽 텃밭 고르기는 얼추 끝이 났으니, 철부지가 두부 회사에서 퇴비를 퍼 와야 한다. (두부는 동물농장에서 일을 한다,)
넌 마당에 있는 풀뿌리를 깨라, 난 텃밭을 정리하겠다.
저녁에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사다 먹을까?     


“언니 점심은?”

“너 좋아하는 떡 라면?”    

“두부야 언니는 이빨만 닦고 나갈 건데?”

“나도.”

우리 둘 다 세수할 힘도 없다.   

  

먼저 꽃을 파는 화원에 갔다. 사장님이 잔디는 심을 때가 지나, 재고가 없다며 석재상에 가보란다.

‘석재상에서 왜 잔디를 팔아?’ 돌과 잔디의 상간관계에 대해 두부와 여러 의견을 나눴지만 결론이 안 난 채 석재상에 도착했다.

음…. 이 사장님도 우리를 다른 사장님들과 같은 표정으로 보고 있다. 이젠 기분 나쁘지도, 놀랍지도 않다.


“잔디는 심어보셨어요.” 사장님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우리를 보신다.

“아는 집에서 조금 퍼다가 심어봤는데 잘 자라네요.” 얼마 전 지인 마당에서 잔디 한 두어줄 를 얻어, 우리 집 마당에 땅을 파고 모래 넣고 심어봤는데 지금 잘 자라고 있다.

“몇 평 심으실 건데요? 판으로 심으실 거예요. 나눠서 심으실 거예요.” 사장님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신 건지.

“두부야 우리 몇 평 정도 되냐?”

“나는 모르지.”     

사장님이 가만히 답답하다는 듯 , 우리를 보고 있다.

사장님 우리도 알아요. 할 말 없으시죠. 저희도 미치겠어요.     


사장님이 하얀 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셨다. 뗏장(잔디를 적당한 크기로 옮겨심기 좋게 잘라놓은 것)의 종류와 심는 방법 등.

그제야 알았다. 여기서 365일 잔디 주문을 받는지.

석재상 주 업무 중 하나가 묘지 잔디 관리였다.

오후에 집으로 와주신다니 고마우신 분이다. 이제 단골집이 하나 더 생겼다.     

 

난 볼 일이 있어 읍에 잠시. 아주 잠깐 나갔다 왔다.

돌아온 나에게, 석재상 사장님이 오셨다 가셨으며, 잘 얘기했고 주문도 잘했다며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두부가 날 바라보고 있다.

“잘했네.” 정말 잘했을까?

“진짜 설명 잘했어! 언니. 다음 주에 오신대.”     

그때까진 풀뿌리를 다 뽑을 수 있겠지.


남 집에서 퍼다, 미리 심어본 잔디

계속 되뇌게 되는 전 주인, 풀들에게 너무 자비로운 분이셨다. 더덕만큼  뿌리와  얇은 새끼줄 타래 같은 뿌리들이 엉켜 땅 깊숙이 박혀있게 놔두었다.

그런 덕에. 우린 나쁜 사람이 되었다.

'미안하다. 난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할 것 같다. 풀들아 너도 살아야지만, 나도 살아야지.'

우린 땅을 파고 또 열심히 파서 더덕 같은 뿌리를 캐냈다.

  

텃밭은 정리가 거의 끝나간다. 퇴비만 가져오면 다.

“두부야, 철부지 언제 오나 전화해 봐.”

“출발했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겠네.”

“언니, 철부지랑 퇴비 정리해서 트럭에 싣고 집으로 올게.”라더니 후다닥 재빠르게 호미와 양동이를 정리하고 차를 타고 나가버렸다.

‘쟤가 저렇게 빠른 애였나.’  


드디어  1톤 트럭 포터가 들어오는데, 많이도 실어왔다.

난 트럭에 실린 퇴비의 양을 보자마자, 영양과다로 식물이 까맣게 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가져다 놓을 순 없으니, 다 써야지 뭐.

“철부지 안녕. 셋째는 잘 있지?” 두부보다 어린데 애가 셋이다.

“누님 안녕하세요. 근디 뭐 할라고 이렇게 많이 가져왔다요?”

“두부가 손이 커.”

다시 잔디 생각이 났다. 정말 잘 주문했을까?

“여그다 푸면 되제? 텃밭도 쬐끄만 하고만.”

전자동 시스템이 설비된 우사를 하는 철부지네 텃밭에 비하면, 우리 집 텃밭은 손바닥 반 토막 같다 했다.

“잔소리 말고 빨리 퍼.”

트럭에 실린 퇴비가 퍼도퍼도 줄어들질 않는다.    

“내일 출근해야 된께, 오늘은 기냥 가요이. 누나 알제?”

“오기 전에 전화해?”

“전에 손만두 맛있더만.”

“다음엔 더 맛있는 거 해줄게.”

“수고혀. 난 가요.”   

  

이걸 언제 다 펴나... 난 걱정이었는데.    

.

.

.

“언니 다 폈어. 씻고 치킨 사러 가자.” 이 녀석 힘도 좋고 빠르다.

“그래, 너도 내일 출근해야지.”     


하루가 이렇게 짧았나?


아~ 내일부터 틈나는 대로 땅을 다시 뒤집어야 하는구나.     


일단 밥부터 먹자.

아니 치킨 먹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잖아.


"언니! 내일 해 뜨지 말라고 해!"


하하하

그래도 많이 정리가 되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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