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Life, 올드타운(1), 성십자가성당, 올드타운(2)
# Romantic Life; Chopin, Scheffer, Delacroix, Sand
쇼팽 콩쿠르 기간을 맞아 Musée de la Vie Romantique(Paris Musées)에서 바르샤바에 출장을 온 60점이 넘는 컬렉션 특별 전시는 쇼팽의 서프라이즈 선물 같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콩쿠르 티켓 전투, 피아노살롱 관람, 쇼팽박물관 상설전시 관람에 이은 특별전시 관람이어서 슬슬 에너지가 달리는 시점이었지만 쇼팽과 그를 둘러싼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셰퍼, 들라크루아, 상드는 쇼팽의 삶과 음악을 살펴볼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사실 상드는 쇼팽의 팜므파탈(!) 연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읽은 책과 이 특별전시를 통해 상드는 쇼팽의 삶에 입체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점을 다시 알게 되었다. 또한 셰퍼와 들라크루아는 파리의 낭만주의 예술가들로, 쇼팽이 파리에서 음악으로 전성기를 누릴 때 쇼팽과 깊게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특히, 쇼팽의 초상화와 쇼팽과 상드를 함께 그린 중요한 작품들을 그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쇼팽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쇼팽의 삶 전반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후에는 소양을 더 많이 쌓고 이런 좋은 전시를 다시 보러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별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아준 강렬한 초상화 두 점은 역시 쇼팽과 상드의 것이었다. 뚜렷한 인상이 강렬한 느낌을 주는 상드의 초상화가 더 먼저 눈에 들어왔고, 다소 유약함이 엿보이는 쇼팽의 초상화는 그 크기부터도 상드의 초상화와 대비되면서 쇼팽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드의 핵심 인물로 전시에 초대된 것 같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전시품 중 첫 번째는 단연 쇼팽의 손 석고 주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에서도, 현대에도 잘 접해보지 못했던 문화인데, 1800년대 중반에 신체의 일부를 석고로 떠내는 작업을 했고¹, 그 결과물인 쇼팽의 손 주형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 모두가 놀라웠다. 그 덕분에 현대의 바르샤바에서 살아있는 쇼팽의 손을 보는 것과 같이 생생한 느낌으로 관람을 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작업을 하고자 했던 발상과 결과물이 놀라웠다. 원래 전시되어 있던 Musée de la Vie Romantique(Paris Musées)에서는 몇 장의 러브레터, 펜과 쇼팽과 상드의 손 주형이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인이었던 그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시 기획이었을 것이다.
손 주형뿐만 아니라, 보존되고 있는 쇼팽과 상드의 머리카락도 볼 수 있었다 - 신체의 일부를 보존한다는 발상 또한 놀라웠다. 그들을 추모하고 영원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소중한 것이지만,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넘어서서 신체의 일부까지도 보존하고자 했던 시도가 현대의 방식과는 분명히 다른 것 같아서 신기했다.
¹상드의 딸과 결혼한 상드의 사위, Auguste Clésinger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체의 일부를 석고 등의 재료로 그대로 떠내는 주형(Cast)은 프랑스 낭만주의 사조에서의 상징적인 기념물이었다고 한다.
# 바르샤바 올드타운(1)
유럽 방문 기회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몇 번의 경험에서 제일 흥미롭게 즐겼던 곳은 역시 도시의 구시가지, 올드타운이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도 올드타운은 낯선 여행자들을 도시의 옛 시간과 공간으로 순식간에 데려다주는 신비롭고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바르샤바에서는 코페르니쿠스 동상으로부터 올드타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주류의 사조를 뒤집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를 기념하는 동상답게 손에 태양계를 쥐고 있었다. 마리 퀴리의 나라이기도 한 폴란드에 국민들이 추앙하고 세계사와 과학계에서 깊은 족적을 남긴 과학자가 많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다. 위대한 과학 영웅들이 만들어낸 역사와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억하는 국가 전반의 정서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며 과학 강국을 목표로 하는 현대 폴란드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르샤바가 관광객들이 몰리는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는 아니지만 올드타운에 들어서니 우리처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바르샤바 대학교가 있어서인지 활기찬 걸음으로 거리를 오가는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신시가지와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 근처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는데, '바르샤바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진 곳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바르샤바가 더 좋아졌다. 카페와 베이커리도 있었고, 작은 서점과 중고서점도 있었다. 일정이 더 길다면 한 곳씩 들러보면서 구시가지의 분위기를 천천히 느껴보고 싶었다. 일정 막바지에 여유 시간을 보면서 다시 둘러보기로 하고 우리는 성 십자가 성당으로 향했다.
# 성 십자가 성당(Holy Cross Church; Bazylika Świętego Krzyża)
종교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지역에 방문하면 그리 특별하지 않게 지역의 사찰에 들러보듯이, 바르샤바 구시가지에는 작고 큰 성당이 여럿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성당을 들렀다. 작은 성당에서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각자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원하는 만큼 기원하고 위안을 얻어 나설 수 있도록 정돈된 분위기를 만들어놓은 정성을 느꼈다.
우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온 목적은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 직관이었고, 성 십자가 성당은 쇼팽이라는 망자 덕질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정 중에 꼭 들러보고 싶었다. 지나친 문학적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짧고 강렬한 인생을 마감하며 남긴 쇼팽의 뜻으로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가면, 그의 음악을 즐겨 듣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좇는 이들의 가슴에 쇼팽의 영혼이 와닿을 것 같았다².
성 십자가 성당 내부에 들어섰다. 화려한 장식과 함께 후면의 기품 있는 파이프 오르간이 눈길을 끌었다. 성당 벽을 따라 차분히 이동하며 많은 분들의 명판도 살펴보았다. 중앙 쪽으로 이동하자 드디어 쇼팽의 심장을 모신 곳이라는 표지와 쇼팽의 명판이 있었다.
쇼팽의 명판 앞에서 손을 모으고 인사를 드렸다.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를 만들어 주시고 남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인사를 하고 잠시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쇼팽 명판 옆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성 십자가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었다. 우리는 말없이 그저 오르간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쇼팽 콩쿠르 직관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아왔지만 처음 방문한 낯선 땅에 발을 붙이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여서 꽤 고단해졌던 우리에게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순간은 그 자체로 평화였고 안식이었다. 이후 우리는 성 십자가 성당에서 들었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정말 좋았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 또한 쇼팽의 서프라이즈 선물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면 상상을 넘어선 망상인 걸까.
매년 쇼팽의 기일(1849년 10월 17일), 쇼팽을 기리며 성 십자가 성당에서는 쇼팽 추모 미사가 열린다. 쇼팽의 뜻에 따라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된다고 한다. 올해에는 피아노 솔로로 편곡된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라이브 영상으로 송출되지는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혹시, 다음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 직관도 가능하게 된다면, 쇼팽 추모 미사에도 꼭 참여해보고 싶다.
²예전에 체코 프라하 비셰흐라드에 방문했을 때, 비셰흐라드 묘지를 방문했었다. 방문하기 전에는 다른 좋은 장소들도 많은데 사람들은 왜 굳이 묘지를 방문하는지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묘지 안의 드보르자크, 스메타나의 비석 앞에서 차곡차곡 쌓여있는 꽃다발을 마주하니, 실존하지 않는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라는 위엄과 존경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 바르샤바 올드타운(2)
다음 날 쇼팽 콩쿠르 본선 2회차 직관 후 올드타운을 본격적으로 둘러보았다. 조금 흐리지만 바람이 많이 불지는 않아 감사한 날씨였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출근 준비를 하며 BGM처럼 틀어두는 프로그램이다. 폴란드 편이 몇 번이나 재방되는 동안 쇼팽 작품이 흘러나오는 쇼팽 벤치를 몇 번이고 보면서 바르샤바의 쇼팽 사랑에 매번 감탄했었는데, 짝꿍이 대법원 옆 크라신스키 광장의 쇼팽 벤치를 찾아주어 드디어 직접 앉아보고, 쇼팽 작품도 들어볼 수 있었다. TV에서 보기만 하다가 소원을 이뤘다!
바르샤바 올드타운을 본격적으로 둘러본다는 건 지그문트 3세 바사 기둥(Kolumna Zygmunta III Wazy) 지점부터의 탐색을 의미할 것이다. 바르샤바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모든 곳을 샅샅이 탐색하지는 못했지만, 골목을 걸으며 가게들에서 파는 물건들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창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았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기념품 가게에서도 특이한 인형과 재미있는 포스터를 보며 웃을 수 있었고, 사지는 않았지만 폴란드 특산품이라는 호박 제품들을 구경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먹거나 사지 않아도 걷는 것 자체로도 좋았던 올드타운에서의 기분이 아직까지는 선명하게 떠오른다. 바르샤바에 다시 가게 된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들여서 올드타운을 더 천천히 그리고 깊이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