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소중한 이야기를 안전하게 잠시 담아줄 ‘용기’이자
누군가가 무서워할 때, 한 발 나아갈 힘을 주는 ‘용기'였죠.
안녕하세요 ‘후드티 버스커' 영재의 인터뷰 버스킹이 돌아왔습니다. 사실 일주일마다 업로드하려고 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해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써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글로 찾아뵙고자 조금 늦게 찾아뵙게 되었네요. 이번 인터뷰이는 그동안 진저티를 잘 아시는 분들에겐 익숙한 얼굴일 텐데요. 바로 진저티의 현선님입니다. 진저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이사님이랍니다 :) 오늘은 현선님께 특별한 소식이 있다는데요. 어떤 소식일까요? 호기심과 함께 현선님의 인터뷰 버스킹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재: 현선님 안녕하세요! 먼저 시작은 가벼운 질문부터 해보려 해요. 여기저기 다니느라 가장 일이 많으신 거 같아요. 현선님은 여가 시간에 어떤 걸 하시나요? 취미는 무엇인가요?
현선: 질문이 시기적절하고 재밌네요. 제 성격이 워낙 외향적이고 활동적이어서 여가 시간도 활발하게 지낼 것 같다고 하시는데 사실 여가시간에는 집에 있거나 조용하게 지내요. 설거지하고 가족들 식사를 잘 차려주고, 집안 정리하고, 일기 쓰고, 남편과 산책하면서 조용히 보내죠. 이렇게 여가 시간을 조용히 보내는 습관은 진저티를 시작하고 생겼어요.
진저티에서 일하다 보면 워낙 다양한 경험과 자극을 받다 보니까, 여가 시간에는 조용히 에너지를 채우고 싶더라고요. 받은 자극을 잘 소화하고, 다가올 자극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영재: 너무 공감돼요. 저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에 인턴 할 때도, 저녁에 끝나자마자, 옷 갈아입고 집까지 달려가기도 하고, 밴드 합주하러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못 하겠더라고요. 주말에도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물론 여전히 약속이 가득 차 있지만… 이제는 좀 버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장 궁금한 건 청년 서현선의 모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나이, 27살의 서현선으로 잠깐 돌아가 보려고 해요. 현선님의 첫 커리어는 제가 알기로는 ‘아름다운재단’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셨어요?
현선: 27살은 제가 결혼을 한 해이자, ‘아름다운재단’에서의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결혼과 직장생활이 한꺼번에 시작되면서 ‘여기에서 나는 무슨 역할이지?’와 ‘나는 아직 쓸모가 없구나.’라는 두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초중고대, 대학원까지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까, 내가 아직은 조직에 그다지 쓸모가 있지 않은 상태라는 객관화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스스로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내가 조직에 도움이 될 시간이 올 것이다, 나 자신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자’라고 생각했어요. ‘첫해에는 배운다. 두 번째 해는 배우면서 일한다. 세 번째 해는 배우는 것보다는 일로써 기여를 해본다.’ 적어도 저한테 3년의 시간을 주기로 스스로 약속한 거죠.
영재: 지금까지 4달 동안 저는 어떤 영향을 끼치기엔 아직 무능하다는 것까지는 인지했는데, 저에게 시간을 주자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그런 상태가 싫고, 조급한 마음만 들었거든요. ‘매일 조금씩 훈련받다 보면 나도 무엇인가 될 텐데, 현선님과 완전히 똑같이 되지는 않을 거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상상하면 그려지지 않아서 불안한 것 같아요.
사회에서도 그런 말을 하잖아요. ‘남자가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저 또한 그런 기대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는 상황인가? 그랬을 때 나중에 나에게 돌아오는 책임은 무엇이지?’ 걱정이 섞인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 같아요. 저는 ‘공감'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진저티로 들어왔는데, 현선님은 어떤 마음으로 ‘아름다운재단’을 첫 커리어로 생각하셨나요? 커리어 선택 기준이 궁금합니다.
현선: 첫 커리어를 선택한 이유는 신념, 꿈 때문이 아니라 충격 때문이었어요. 대학원생 때, 당시 대학원장님이 저에게 워싱턴 DC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연결해 주셨어요. 덕분에 꽤 유명한 싱크탱크(Think Tank)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미국 사회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미국 행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일하는 장면을 볼 기회도 있고, 다양한 세미나나 행사들도 가볼 기회가 있었어요. 미드에 나오는 장면의 한 복판에 있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이 시기에 인턴 말고 다른 경험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대학원 선배가 운영하는 홈리스 센터에 연락해서 2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렇게 할렘가의 한 복판에 위치한 센터에서 2개월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경험이 너무나 생생했어요. 밖에서 노숙자들이 싸우는 소리도 들리고, 멀리서 총 쏘는 소리, 유리창 깨지는 소리도 듣곤 했죠. 저녁 7시 이후에는 외출하기도 안전하지 않은 곳이었어요. 그때 오전에는 출근하면 미국의 상층부를 접하고, 오후에는 노숙자들을 보는 생활을 하는 거예요.
항상 아침에 샤워하면서 ‘내가 이 사회의 양극단을 왜 보고 있는 거지?’ ‘난 또 여기에 왜 잘 적응하고 있지?’ 깊이 생각했어요. 그 시기 덕분에 각각의 비영리 기관의 시스템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연구지원 활동은 어떤 기관들이 하는지, 각각의 기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펀드레이징하는지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전체적인 비영리 시스템을 한국에 있는 사회복지관을 통해서 배운 게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서 확연하게 보고 온 거예요. 그러던 중 대학원에서 ‘아름다운재단’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내가 미국에서 느꼈던 경험의 이곳에서 이어질 수 있을까?’ 하고 들어가게 되었어요. 뭔가 의지가 있어서 들어가는 느낌보다는 ‘지금 내가 왜 이런 걸 경험하게 되었을까?’를 스스로 질문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진로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영재: 양극단에 있는 두 비영리기관에서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어요? 현선님이 각각의 기관에서 어떤 걸 보고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어요!
현선: 싱크탱크(Think Tank)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려운 사람을 돕습니다.’ 같은 형태의 비영리 조직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자나 엘리트들이 많이 모여 있는 비영리 조직이었어요. 정책을 만들고 연구하는 곳인 거죠. 이곳에서는 사회적 오피니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웠어요. 여기서는 정책 관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을 주고받는 포럼을 많이 진행해요. 그 활동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기도 하고, 사회적 부패지수와 같이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지표나 지수를 개발하기도 해요. 어떤 지표가 나오면 사람들의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되어서 사회가 움직여지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지식을 만드는 것의 힘을 느꼈어요. 또 미팅에서의 기록이나, 데이터화하는 과정도 굉장히 체계적이라는 것도 느꼈어요. 임팩트 있는 펀드레이징을 해준 사람들을 위한 기념 홀을 만들어 주는 등 다양한 이벤트 해주는 것을 보면서 인플루언서를 타깃으로 한 고급 펀드레이징 스킬도 보았어요.
홈리스 센터는 사회적 약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하는 형태의 비영리 조직이었어요. 그래서 펀드레이징하는 부분에서는 싱크탱크보다 훨씬 더 스토리텔링을 잘했어요. 지역 방송사에서 브로드 캐스팅해서 ‘홈리스 사람들은 지금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볼까요?’ 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소개하기도 하고 한여름에 탈수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워싱턴 DC 한복판에도 존재한다는 걸 알리면서 생수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많이 했죠. 다만 체계가 부족한 편이었어요. 효과적인 시스템으로서는 한계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에는 강점이 있었던 조직이었죠.
영재: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경험이 현선님의 활동, 혹은 진저티프로젝트의 활동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현선: 제 안에 그 두 경험이 모두 녹아있고, 진저티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현장 속 당사자들 삶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거시적으로 사회 문제를 바라보면서 연구도 하고. 일례로 요즘 저는 직접 보호 종료 아동들(자립 준비 청년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이야기를 듣는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큰 중간 지원조직의 대표님들과 만나서 요즘에 이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거시적인 이야기도 하죠. 저는 이 두 일이 별로 다른 활동이라고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이 활동이 필요한 순간도 있고, 저 활동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거죠. 저는 이 구분을 넘나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저티의 색깔이 묘해요. 좋게 말하면 전략적인 폭이 넓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쟤네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 거지?’ 헷갈릴 수도 있고요.
영재: 아 그래서 진저티가 크기와 분야에 상관없이 여러 조직과 일을 하는 거군요. 저도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왜 진저티가 이렇게 다양한 조직과 일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거든요.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
영재: 이제 사회초년생 서현선을 지나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볼게요! 다른 분들 생각해서 현선님의 경력 단절 구간에 느꼈던 것도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 당장 제가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려고 해요. 바로 진저티의 시작점으로 가보려 합니다. 진저티를 처음 만들 때, 세 분이 북 스터디하다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그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인가요?
현선: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티치 포 아메리카’라는 조직 이야기를 담은 웬디 콥의 ‘열혈교사 도전기'에요. ‘티치 포 아메리카’는 쉽게 말하면 미국의 무너진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어요. 미국의 할렘과 같은 낙후된 지역에는 훌륭한 교사들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교육의 질이 낮아지기 쉬워요. 티치 포 아메리카는 뛰어난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2년 정도 월급을 주면서 그 지역들에 공교육 교사로 보내는 프로젝트예요. 대학생들이 2년의 활동 이후에 거기 남아있지 않더라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낙후된 지역과, 저소득층 아이들과 교육의 문제를 보게 되면, 나중에 이 친구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이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가 있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인상적이었어요. 다 읽고 나서 제가 마치 웬디 콥을 인터뷰하는 것처럼 질문, 답, 질문, 답의 형식으로 그 책을 다시 재조합해서 정리했어요. ‘이 일을 왜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이런 식으로요. 이런 책들을 읽고 대화하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경험이 결국 진저티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어요.
영재: 현선님이 그 스터디 시간 덕분에 일에 대한 욕구를 인식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느 순간 ‘아 일하고 싶다!’라는 욕구를 발견한 건가요?
현선: ‘일하고 싶어!’라는 욕구를 딱 발견했다기보다는 ‘우리도 프로젝트를 한번 해볼까?’였어요. 마침, 전 ‘아름다운재단’ 동료가 북 스터디에 저희 세 명이 모여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언니들이면 뭐라도 하겠다’라며 프로젝트 기회를 제안해준 거예요. 그런데 그 프로젝트를 하려면 회사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사업자 등록증도 만들고… 그렇게 진저티프로젝트가 시작되었어요.
그 당시 프로젝트를 맡았던 팀장이 바로 현재 공동대표인 고운님이고, 그 교육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참여자가 또 다른 공동대표인 진향님이에요. 신기하죠?
영재: 아하 그렇게 고운님과 진향님까지… 진저티는 스토리가 탄탄하네요. 진저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이제 좀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요! 신입사원으로서 너무 흥미롭네요 :)
영재: 시간을 달려서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봅시다. 지금까지 현선님의 진저티 생활을 돌아보려고 해요. 8년 동안 현선님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감정적으로 가장 기뻤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은 언제인지 말씀해주세요. 저에게도 진저티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 같습니다!
현선: 기뻤던 순간이든 슬펐던 순간이든 다 사람들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동료가 퇴사했던 순간들은 감정적으로 슬픈 순간들이었죠. 상실감이나 스스로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거든요. 처음 대표가 되었을 때는 사람에 대한 의욕이 지나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힘을 빼는 걸 배운 것 같아요. 누군가가 스스로 배우도록 환경을 만들고, 좀 더 기다리고, 완벽하지 않음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내가 바꾸려 하기보다는 기다려주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의 전환이랄까. ‘내려놓음’을 배운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진저티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도 다 사람들과 관련된 순간들이에요. 한가지 떠오르는 장면은 안지혜 님과 테라로사에 간 순간이에요. 그 때 지혜 님이 처음으로 ‘저는 진저티로부터 어떤 희망을 보고 싶어요.’라는 내용의 솔직한 속마음을 말해주었는데 제 안에 어떤 의욕이 확 일어나더라고요. 제 마음을 제가 확인한 순간이랄까요. ‘진심으로 한 발 더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구나,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걸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구나.’ 영재님을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너무 신난다.’
영재: 현선님은 정말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진심이신 것 같아요. 사람의 성장을 위해 가장 애쓰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현선: 저는 제가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성장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 내면이 더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 그 잠재력을 더 키워줄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많죠.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못 보고 있는 부분을 다시 읽어주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메타 인지가 잘 안 되는 부분의 궤도를 전환해주는 역할이죠. 자신의 변화 가능성을 좀 더 믿고 나갈 수 있도록 유연한 사고를 도와주려 애쓰죠.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한테는 이런 것은 안 맞는 사람이야.’ 등의 생각이 너무 강하면 고정된 틀에 갇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탈 학습하는 과정을 돕는 거죠.
탈 학습 과정도 엄청나게 에너지 쓰여요.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면 예상 못 한 일들을 해내기 시작해요. 이전까지의 데이터에 없는 패턴이 나오는 거예요. 영재님만 봐도 느껴져요. 영재님은 그 과정을 견디는 것뿐 아니라 완벽하고 빠르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안 되니까 답답한 거죠. 그래서 쉽게 바꿀 수 있는 외모부터 바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보여요.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남의 이야기를 조금씩 더 길게, 오래 듣는 것 같아요.
영재: 맞아요. 진저티를 하면서 ‘내가 생각해온 내가 진짜 내가 아닐 수도 있다.’라는 마음에 조금 혼란스러워요. 저의 무능함을 느껴서일까요? 그래도 덕분에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명하는 저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재밌어요. 제 속마음에 귀 기울이니까 해보고 싶었던 패션들도 조금씩 해보는 것 같아요. 탈색도 해보고!
영재: 이제 현선님과 함께하는 인터뷰 버스킹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진저티플뿐 아니라, 업계에도 충격적일 수 있는 큰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6월까지만 일하고 진저티를 졸업하신다면서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또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상상해본 그림이 있는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현선: 저는 앞으로의 대한 상상을 많이 하지 않아요. 청사진을 세세하게 안 만드는 거죠. 저의 특징이기도 한데 일단 현재에 몰입하고 집중하고 그 단계를 마무리할 때까지 다음 계획을 미리 짜두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지금 진저티 졸업도 비슷한 것 같아요. ‘졸업하기 전까지 진저티에서 해야 할 일들, 중요한 의사결정과 업무들을 최대한 잘 마무리하겠다’라는 생각이고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 이후의 그림은 안 그려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상상이라기보단 시그널을 보는 걸 좋아해요. 미래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그널, 전조 징후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걸 좋아해요. 그 시그널은 내면의 시그널이 경우도 있고 외부의 사건이나 패턴이기도 한데요. 그런 걸 읽으면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요. 진저티에서 대표를 내려놓고 이사로 활동하면서는 외부 조직들을 더 깊게 도울 일들이 많았고 대학생이나 청년들을 만날 일들도 많았고, 지역에서의 활동들도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막연히 조금 더 느슨하고 유연하게 활동을 해야 할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었어요.
영재: 저도 한양대 학생일 때, 교수님으로서 현선님을 처음 만났잖아요. 그 때 대학생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받았고, 어떤 마음이 들었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그때의 저는 어땠나요?
현선: 하나의 시그널은 ‘애들이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말하지?’ 였어요. 영재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니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지?’ 과제로 내준 회고에서도 ‘뭐 이런 이야기까지?’의 순간이 이어졌어요. 오히려 더 깊은 이야기도 많이 접했죠. 충격적인 시그널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이 친구들에게는 어떤 걸 말해도 괜찮은 환경이 필요하구나.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자기들끼리는 못 하겠구나. 그래서 내가 필요하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네요. 지금도 그 친구들이 계속 놀러 와요. 저를 불러놓고, 옆에서 자기들끼리 놀아요.
영재님이 자주 말하듯, 영재님은 그때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었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참여하고, 배우려 하고. 전 영재님이 외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정받고 싶거나 영향을 주고 싶은 것도 한 편의 외로움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 같아요. 외롭고 허한 마음을 자극으로 채우려고 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만큼 에너지를 내고 있는데, 뭐가 돌아오는지를 느껴보고 싶다.’ 그 마음? 노력한 만큼 더 많은 자극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졸업 후에 어떤 것을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 수업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생각 했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불안과 외로움으로 허한 마음을 배움과 자극으로 채우려 했던 것 같아요. 시그널을 들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현선님과 한양대 친구들이 같이 있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상하게 이상하지 않아요. 현선님이 옆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안전한 대화를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화 속에 나오는 벽난로와 카펫이 있고,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거실을 제공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영재: 그럼 이제 외부에서 말고, 진저티 내부적으로도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그널이 있었나요?
현선: 조직 내부에서는 ‘현선님이 있으면 안전하긴 하지만, 현선님 없이 우리 스타일도 해보고 싶어요’라는 시그널도 읽은 것 같아요. 지혜 님만 봐도, ‘이제 현선님이 옆에 안 계실테니까, 혼자서 결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잖아요. 그 말이 내가 살기 위해서 취하는 태도라고는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자기 안에 끌어 쓸 수 있는 자원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거잖아요. 각자에게서 그런 시그널을 읽은 것 같아요. 나 없이 서고자 하는 욕구랄까. ‘이제 나 없이 스스로 해 볼 때가 된 것 같아.’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방식이 각자의 리더십을 키우는 방식이라고도 생각해요. 직접 알려주는 것도 메시지이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도 메시지잖아요. 떠나는 것도 메시지이자 레슨이라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저 자신을 위한 이유도 있어요. ‘진저티라는 울타리를 없앴을 때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서현선한테는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그게 좀 궁금해요. 궁금해서 섣불리 상상을 안 하고 잘 관찰해 보려고요.
영재: 궁금해서 상상을 안 한다는 말이 새롭게 들리네요. 순간에 집중한다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끝나면 진저티에서 현선님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서 하기 싫네요.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진저티에는 현선님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현선님이 생각하기에 진저티의 문화에 가장 크게 남긴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선: 앞으로도 자주 볼 거잖아요.ㅎㅎ 제가 남긴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눈에 안 보이는 걸 믿는 힘을 남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진저티플이 대화를 길게 할 수 있다는 건 ‘이 대화를 해도 이 사람이 나를 오해하지 않겠지.’ ‘이렇게 길게 대화해도 일을 안 하는 게 아니야.’ ‘결론이 나지 않아도 괜찮아, 필요한 대화야.’ 이런 신뢰가 있기 때문이잖아요. 이런 신뢰를 저버리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당장은 대화를 통해 명확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더라도 서로를 믿고 끝까지 대화해보는 것, 나와 공통점이 없어서 쉽게 이해되지 않아도 상대의 이야기를 길게 듣는 것, 뭔진 모르겠지만 끝까지 한번 들어보는 마음이죠.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신뢰를 지키려고 서로 노력하는 마음이에요.
영재: 진저티플 사이에 있는 따뜻한 연결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항상 생각했었는데, 신뢰였군요. 맞는 것 같아요. 서로를 향한 믿음. 어디에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유산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이상 인터뷰를 마칩니다! 현선님 감사해요! :)
버스킹 곡을 나누기에 앞서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저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인생은 혼자 힘으로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건 임시방편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의지하는 건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강해지려고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에 다다르지 못한 저 자신을 혼내며 살아왔습니다. 이 세상에 공감을 전하고 싶다면서, 정작 누구보다 외로운 저 자신에게조차 공감해주지 않았어요.
현선님은 처음으로 ‘기대어도 괜찮은 곳', 안전 기지가 되어주신 분이에요. 누군가에게 약함을 인정하고, 기대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바꾸어 주셨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는 제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좀 못하면 어때!’라는 메시지를 항상 말해줬어요. 내가 자랑했던 ‘진짜 나'를 가리고 있던 것들이 가짜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무서워 눈물 흘릴 때도 진심으로 공감해주셨죠. 아직은 ‘진짜 나’를 완전히 괜찮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어요. 다만 마주할 용기는 얻은 것 같아요.
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아요. 진저티 입사 전의 일이에요. 제가 2월에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에 현선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현선님, 제주도에서 차를 렌트할지 고민 중에요. 아직 운전은 고속도로 한 번 타보고, 한 달간 주말에 10분 정도 동네를 다녀본 게 전부예요. 그런데 차가 없으면 이동을 못하고…”
“뭐 영재님이 이미 마음속에 결론 내린 거 같은데요? 운전하고 싶은 거 아닐까요?”
“그렇죠…? 아무래도 해야겠죠? 다녀오겠습니다!”
현선님은 저에게, 진저티플에게, 그리고 진저티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용기'였어요.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소중한 이야기를 안전하게 잠시 담아줄 ‘용기’이자
누군가가 무서워할 때, 한 발 나아갈 힘을 주는 ‘용기'였죠.
진저티에겐 사실 이 단어 한마디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감사한 분이에요.
현선님의 모든 발자국이 우리 진저티플 마음에도 새겨져 있답니다. 앞으로도 새겨져 있을 거고요.
그래서 이번 버스킹 곡은 현선님의 졸업을 축하하기 전, 현선님과의 추억을 돌아볼 수 있는 곡을 준비했습니다. 예빛의 ‘사랑할거야'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5hvLFjj1Tc
“빙 둘러앉아 북적북적이며
알 수 없는 그 한마디에 울고 웃던
하염없이 날 불러주던
소리 없는 그 마음들을
먼지만 쌓인 그 모든 날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할거야 사랑할거야
사랑할거야 사랑할거야
사랑할거야”
이 곡은 옛 동네와 닮은 골목을 산책하던 어느 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가 없이 받았던 사랑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주어진 순간들을 사랑할 거라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쓴 곡이라고 해요. 저는 가사를 읽으면서 현선님과 함께 빙 둘러앉아서 ‘어떠셨어요?’를 묻는 진저티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또 알 수 없는 한마디에 울고 웃던, 현선님과의 소소한 대화들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그 순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보아요. 여러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질 거예요. 그 미소로 현선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을 함께 축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저티도 현선님과의 추억을 사랑으로 간직하며, 앞으로 있을 현선님과의 또 다른 만남을 사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