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노력도 타고나는 거라고 했다.
노력의 정도가 나에게 10이라도 상대에겐 3의 수준일 수 있고,
상대에겐 10이라도 나에겐 3일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너도 노력했구나.
내가 퇴사기를 길게 적은 이유가 있다.
무작정이란 것도 어느 정도일까?
어느 정도여야 결정을 할 수 있나?
이렇게 하면 '실패해요'의 본보기일 수도 있고
이렇게만 해도 '성공해요'라고
기록하고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고들 말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을 할 때에도 눈으로만 하는 공부는 잠만 오지 나에겐 효율이 없었다.
실제 내 손으로 또닥또닥 키보드 두드려가며 구현했을 때
'아~그렇구나.' 할 수 있었다.
데여봐야 아냐고 한다면
지금 상황은 어찌 피해 간다 손 치더라도,
매번
누군가의 허락이나 동조가 있어야 내 결정에 확신이 생긴다면,
차라리 데이고서
제 나름의 방어진을 치고,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편이
나를 더 신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남들처럼'이라는 말의
남들처럼의 기준도
내가 만든 범주이라면,
지금의 내 결정들도
남들처럼 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