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Oct 05. 2021

너의 눈을 높여주마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최근 이틀에 한 번꼴로 사진과 문자를 보내는 친구가 있다. 

오늘은, 나에겐 더없이 고상한 색감이라 여겨지는 '문샤인'을 사진 찍어 보냈다. 


"외숙모~~~"

문자만으로도 콧소리 섞인 음성이 들린다. 


나의 문샤인을 보며 '너무 예쁘다' 쓰다듬던 게 불과 며칠 전인데, 못 참고 그만, 그만 "데려왔어요~~" 


조카에게 식덕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작은 '타라'를 샀던 길 건너 작은 꽃집을 침 흘리며 칭찬하길래 어떤 곳인지 가보자 했다. 작고 예쁜 화분이 많으며 꽃집 주인이 너무 설명을 잘해준다 했든가. 건물 한 귀퉁이 정말 작은 화원이었고 식물은 셀 수 있을 정도만 뜨문뜨문 놓여있었다. 동네 꽃집들을 매일 한 번씩은 순례하듯 도는 나는 이 새 화원이 발길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식물을 보면 주인이 식물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아진다. 가짓수도 많지 않은데 잎에 먼지가 쌓여 더께가 되었고 생동감은 없다? 그런 식물이 들어앉은 화분은 화려하다, 유행하는 식물들만 주로 판다? 


집 가까운 곳, 몇 달 전 아몬드 페페를 구입했던 화원이 있다. 동네 화원 중 가장 너저분~했던 이곳이 얼마 전 새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외관과 내부를 톤 다운된 핑크 페인트로 도색하길래 정리를 좀 하려나 보다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고 곧 실망했다. 색깔 바꾼 것 말고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다. 그전에 있었던 빈 박스며 플라스틱 빈 화분들, 온갖 잡동사니들이 원래 자리에 다시 쌓여 화원 한 벽을 막았고, 밖에 나와 있던 화분들도 뭐 하나 마음 쓴 테가 안 나게 던져진 채였다. 내가 그 집에서 아몬드 페페를 샀던 시점은 식물만 보이던 때,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때. 지금 조카가 그때의 나 같은 상태다.        


우리는 문밖에서부터 '이건 뭐네, 저건 뭐네' 하며 발치에 있는 식물들을 쪼그려 앉아 만져보고 이름도 묻고 가격도 묻고 수선을 피웠다. 대답을 해주기는 하는데 목소리에 흔쾌함은 없는 주인 아가씨, 만지면 안 돼요 할 때는? 이 주인은 식물도 모르고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도 모른다 싶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의 손길은 조심스럽다. 

식덕은 만질 수 있는 것을 만지고, 식물에 맞춰 손가락의 힘과 각도를 조절한다. 생명은 속속들이 알 수 없기에 식덕은 식물을 물건 취급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 조카 눈 좀 높여줘야겠다"

"정말요?"


추석 다음 날 양재 화훼시장에 데려갔다. 


쉬. 는. 날.  


돌아오는 길, 

길을 잘못 들어 2차선 왕복 도로에 화원이 죽 늘어서 있는 곳을 발견했다.


영. 업. 중.(예에~~!!)


차는 도로변에 세워두었고,

조카는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토끼처럼 이곳저곳을 깡충거리며 쑤시고 다녔다. 



작가의 이전글 포인세티아를 너무 띄엄띄엄 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