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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30. 2021

포인세티아를 너무 띄엄띄엄 봤나

1.5평 방구석식덕생활


포인세티아 화분을 바꿔줬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건물 주인이 선물로 준 건데 얇고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크고 있었다. 화분 때문에 못 크는 것은 아닐 텐데 비실비실하니 화분이라도 바꿔주면 좀 나을까 해서 해봤다. 잎들이 마르고 자꾸 떨어져서 앙상해지고 있었지만 줄기는 아직 색을 잃지 않아서, 죽었다 치고 버리기에는 내키지 않았다. 


원인을 찾아보니 과습이 원인이란다.

잎은 버석버석 마르는데 과습이라니 이상하다. 우린 피부가 건조하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는데 식물들의 생태는 다른가. 근데 사실 물을 더 마셔서 피부 건조함이 사라진 적은 내 경우 없었다. 어쩌면 물이 부족해서 피부가 마른다는 논리가 낭설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어쨌든 잎이 마르고 표면의 흙이 부석부석할 정도로 말라가는데도 포인세티아의 병명은 과습으로 진단되었다.


언제부터 식물을 키웠다고 그렇게....

염려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보기 싫게 말라가는 화분을 눈앞에서 치우는 쪽보다 좀 더 두고 보리란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운 정도다. 자꾸 눈에 띄니 해결책을 찾아 검색창을 두드리는 일이 잦았다는 정도도. 문제는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줄까 하는 물을 얼마큼 더 있다 줘야 과습을 면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 답답할 노릇이었다. 다른 세 화분, 미옥이 동옥이 상옥이는 내 손가락 한마디를 흙 속에 넣어봐서 흙이 말라있으면 물을 흠뻑 주었고 그렇게 지난 6개월 이상을 아주 튼튼하게(? 아니, 보기에 별문제 없이) 자라고 있다. 걔들에 비하면 포인세티아는 목말라 안 죽을 만큼만 주었던 건데 말이다. 손가락 한 마디가 척도가 소용 안 되는 얘는 도대체 어떤 주기로 물을 줘야 할까.


며칠 전 지금 것보다 아주 약간 큰 화분을 사다 놨다. 갑자기 큰 화분으로 옮기면 스트레스받는다고 나와서. 흙도 사다 놨다. 그리고 분갈이를 감행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다.


플라스틱 화분 모양 그대로 나온 흙을 보니 위의 반은 말라있고 아래 반은 축축한 기가 있었다. 흙 색깔로도 확연히 구분됐다. 축축한 부분이 더 검은색. 아래쪽까지 다 말라야 과습이 안 되는 건가.


얘는 손가락 한 마디까지의 흙 상태로 물 주기를 결정하면 안 된다, 아래 흙까지 마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려면 열흘이 아니라 20일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화분이 좀 더 커지고 흙도 더 많아졌으니 한 번에 들어가는 물의 양이 많아질 거고 그럼 20일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쯤이나 물을 줘야 할 것 같다. 이게 내가 포인세티아에게 내린 처방이다.


다른 세 식물들 종류가 각각이다. 각각인데 똑같이 물을 줬고 그런데도 잘 자라서 포인세티아도 그럴 줄 알았다. 포인세티아의 속도는 다른 애들과 달랐다. 물에 대해 더 민감했다. 다른 애들은 며칠 지나면 쑥 키가 커있는데 얘는 자라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람의 눈은 1초당 24개의 사진이 지나가는 것과 같은 속도에 부합하는 것만 볼 수 있단다. 사람의 시각능력에 비해 식물의 생체 과정은 너무 느긋하다. 내 지각 속도에 캐치되지 않았을 뿐.


포인세티아를 너무 띄엄띄엄 봤다. 다른 식물들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되었다.

세상에 똑같은 생명체는 진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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