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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6. 2021

변심한 애인처럼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식물등을 사고야 말았다.

식물등이 들어왔다는 건 반려 식물과 함께 하는 생활이 이전과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2층이라도 우리 집은 해가 잘 안 든다. 비좁지만 베란다가 있어 그나마 식물 늘일 욕심을 부려보았으나 욕심이 베란다 크기보다 커진 것이다. 내 방 창가 자리에 화분 받침대를 하나 더 놓았다. 그 바람에 책상이 뒤로 밀려났다. 지난 10년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사건이다. 


집 안의 가구배치를 종종 했다. 그때마다 좋은 자리 1순위는 언제나 책상과 책장이었다. 독서용 스탠드에는 기존의 전구를 빼고 식물등이 들어갔다. 이제 이 스탠드의 빛을 받을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식물이다. 책이 밀려나고 있다. 동시에 내 일과도 바뀌고 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유난스럽지도 않다. 아니 이상해 보일 것이다. 유난스럽다 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보는 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협곡이 자리한다. 통상적인 지성으로는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다. 


사랑하는 대상은 살면서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나는 단 하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새로운 애인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자꾸 뒤돌아 옛 애인을 쳐다보는 나쁜 여자가 된 듯이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식물등을 갈아 끼우면서 나는 지금 건너지 말았어야 할 강을 건너고야 만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빛이 닿는 자리면 하나라도 더 화분을 끼워 넣으려고 책을 한 쪽으로 치우고, 책등이 가려져 제목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도 못 본척한다. 


헌책방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쪼그려 앉아 있던 내 앞에 지금은 초록 식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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