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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14. 2021

죽음은 '선고'된다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한 여름에

거주지를 옮기고 이사 스트레스에 병날까 일주일을 분갈이도 않고 물 주기도 절제하며 기다렸다. 다른 집들 거실 벽을 타고 부드러운 타원형의 잎을 간격 맞춰 늘어뜨리고 있던 '마다가스카르 자스민'을 드디어 나도 펼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설렜었다.


통통하고 실하게 잘 큰 잎들은 아무 일 없어 보였다. 며칠 지나 뿌리와 가장 멀리 있는 새 순이 노랗게 되어 떨어졌지만 그뿐, 그 후 한 달 이상 괜찮았다. 괜찮을 때는 식물에게 해 줄 게 없다. 과습만 조심하면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 들어 물만은 좀 인색하게 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실내 원예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근본적으로 반자연적이다. 바깥에서 살아야 할 생명체를 실내로 들여왔으니 이미 자연스러움과는 멀다.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관찰하고 관찰하여 물 흡수하는 주기를 알아내고 인공 빛이라도 쬐주고 알맞은 비료도 적당한 시기에 줘야 한다. 식물이 건강할 때 반려인이 할 일은 많지 않다. 뭔가 이상 신호가 오면 그제야 허둥지둥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급해지는 데 결과적으로 그 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


나의 마다가스카르 자스민은 흙에 가까운 잎이 노래지기가 무섭게 중간 잎들도 색깔이 변하더니 이삼일 안에 팍삭 쪼그라들었다. 벽에 군데군데 고리를 붙여놓고 줄기를 걸었는데 고리가 받쳐주니 잎이 힘없이 쳐지는 것도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내려서 처음 데려왔던 모양으로 감아봤더니 풍성함이 삼분의 일로 줄어있다.


정말 마다가스카르 자스민은 나에게만 어려운 식물이었던 걸까? 병들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다는 정보가 다른 식물에 비해 많지 않다. 과습이나 물 마름 때문에 상한 뿌리를 수경으로 살리는 경우도 있다 해서 흙을 털어내고 뿌리를 물로 씻어보았다. 2미터쯤 되는 줄기와 그 무성한 잎들을 지탱해 주던 뿌리가 내 손바닥 크기도 안 되었다. 녹아내렸을 뿌리를 감안하여도 뿌리를 왕성하게 뻗는 식물은 아니다.


'죽어가는 마다가스카르 자스민 살리는 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자주 찾아보는 호접란 키우기 고수님의 방법으로 즉, '죽어가는 호접란 살리기 방법'으로 처치를 시도했다. '약해진 뿌리와 잎을 통째로 2시간 동안 물에 담근다. 잎의 상태를 보고 여전히 팽압(수분을 머금어 잎이 팽팽해지는 정도)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크기가 다른 용기 두 개를 사용해서, 뿌리는 작은 용기의 물에 반만 담그고 잎들은 큰 용기 물에 담가 비닐봉지를 씌워 놓는다.' 이틀을 그렇게 두었다. 중간에 숨 쉬라고 비닐을 잠깐 벗겨놓기도 하면서. 아이 열감기 들었을 때 밤새 자다 깨다 하면서 물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아주고 다시 적셔서 닦아주고 했던 것처럼.


살아날 기미는 없었다. 없다고 믿었다.

송장처럼 수분이 다 빠져나가 바싹 말랐다. 아니다. 늘어지긴 하였으나 아직 초록이 바래지 않은 잎들이 중간중간 있었다.

둘둘 말아 쓰레기통 속에 집어넣었다. 겨우 한 줌이었다.

다른 생명체를 네가 어떻게 컨트롤한단 말이냐, 들은 말로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정말 죽었을까?

내가 죽었다고 결정한 건 아닐까?


작년에 시아버님 돌아가실 때, 의사는 우리 눈앞에서 빨간 스위치를 그야말로 '똑'하고 껐다. 모니터의 줄이 파동을 멈췄다. 그리고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어쩌면 모든 죽음은 그 누구도 죽음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선고될 수밖에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산 자에 의해 죽음이 선고된다.


나의 마다가스카르 자스민은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몰라서, 어디까지가 산 것이고 어디까지가 죽은 것인지 몰라서 살아있는 내가, 반려인으로서 그의 '죽음'을 결정했다. 그래서 정말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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