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Oct 25. 2021

물주는 사랑도, 꺾어내는 사랑도

1.5평 방구석 식덕 생활

플라워 박스를 만들었다. 

내 식덕 생활을 남편에게 들은 한 꽃집 사장님이 화훼장식 클래스에 참여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오며 가며 바깥에서만 구경했던 꽃집은 내가 본 곳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천고가 2층 높이로 시원하게 뚫렸고 같은 높이의 외벽 전체는 슬라이드 유리 문이다. 날씨가 좋을 땐 모든 유리 문이 활짝 열어 젖혀져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게 되는 꽃집. 꽃집이라는 말이 너무 작게 느껴지는 곳. 처음 들어가 보았다. 사실 구경하겠다고 무턱대고 들어가기에는 좀 위압적인 면이 있는 외관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나는 꽃을 가성비 떨어지는 장식품 정도로 생각했다. 꽃 아니라 뭐라도 장식을 목적으로 하는 물건을 사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뭘 하게 될지도 모른 채, 일단 식물을 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관엽식물들에게 눈길이 먼저 갔으나 종류가 많지 않았고 상태도 그리 좋지 못했다. 물을 너무 못 먹어서 배배 말라가는 식물도 많았다. 실망했다기 보다 의아한 기분이라고 할까. 사장님 서껀 직원들은 뭔가 많이 바빠 보였고 한눈에 식물들에게 물 줄 시간도 없나 보다 알겠기에. 그러나 식물에게 물 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꽃집을 한다?



클래스 시작, 색감을 정하고 꽃을 고르라 하시곤 조금도 아끼지 않고 꽃을 내어 주신다. 꽃들 사이사이 빈자리를 메워 꽃 장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재료로 관엽 식물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나의 애착 식물들은 거기서 그렇게 사용되고 있었다. 실내와 바깥 화단에 심어놓은 관엽식물들을 사장님은 가위로 똑똑 잘라 왔고, 다양한 모양과 색감을 가진 잎들은 화려한 꽃무더기를 차분하게 혹은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 주었다. 



절에 가서 고기를 찾은 꼴이랄까. 식물과 관계 맺는 법이 꼭 나와 같은 법만 있는 건 아닌데, 절화와 절엽(?)으로 장식을 업으로 하는 곳에 가서 왜 식물에 신경을 안 쓰는가, 왜 식물을 그리 쉽게 자르는가 하여 그들 나름의 식물에 대한 마음을 의심했으니. 



'니 사랑만 사랑이냐!(혼잣말)'



절화, 가지째 꺾은 꽃을 수집하는 일부터가 플라워디자인의 시작이다. 식물이 있는 현장에 가서 ······ 설계한 디자인에 어울리는 꽃을 정해진 예산에 맞게 준비하는 것은 플라워디자인의 중요한 관문이다. 플로리스트들 가운데는 취향에 맞는 식물을 얻기 위해 직접 육묘장을 만들어 재배하는 이들도 있다. ······ 꽃다발은 식물의 색과 형태를 치밀하게 계산해 꽃을 조합하는 하나의 작품이다.(이소영, <식물과 나> p.98)



나무로 조각하는 예술가에게 왜 나무를 훼손하느냐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플로리스트에게 다른 잣대를 갖다 대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꼭 예술이고 작품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어차피 모든 생명체는 한 번은 죽을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모든 관계 맺음들이 손익으로 따지자면 거기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사랑에 단 하나의 방식만 있지 않다. 돌보고 키워내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자르고 꺾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 돌보고 키우는 손길이나 꺾고 자르는 손길이나 식물을 대상화하기는 매한가지다. 대상과 하나임을 경험하는 사랑은 지상의 손익 계산 같은 것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식물을 사용하는 방식 갖고는 이제 왈가왈부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죽음은 '선고'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