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Sep 28. 2021

마음이 없어
콘셉트마저도 유지되지 않는 곳

1.5평 방구석식덕생활


삐죽이 돌출되어 있는 정사각형 간판에 몬스테라 잎으로 추정되는 초록 잎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번화한 거리 뒤편 좁은 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Sikmulhak’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두 번을 그냥 지나쳤다. ‘식물학’이라니. 아카데믹한 이름에 선뜻 발이 옮겨지지 않았고 밖에서 보이는 내부의 분위기도 의심스러웠다. 식물 카페인가 식물학 연구공간인가.


그곳은 그냥 카페였다. 알맹이에 비해 이름이 너무 거창한 곳. 연휴 기간에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가 보았다. 안쪽 공간은 제법 넓었다. 곳곳에 듬성듬성 화분이 놓여있고, 한쪽 벽에는 식물 엽서들이 줄 맞춰 붙어있었다. 그리고 식물 책 몇 권. 주문하는 테이블 아래쪽에 개중 화분이 제일 많았는데, 모두 '몬스테라'였고, 모두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물을 너무 못 먹었거나, 에어컨 바람에 살짝 얼었거나. 애처로운 몬스테라들이었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왜 ‘식물학’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갈 때 직원에게 물어봐야지 마음먹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식물 책이 한 권 보인다. 넘겨보니 뒷부분에 이 카페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식물 콘셉트의 카페이며, 다른 카페와 달리 단일 식물 그러니까 몬스테라만으로 실내를 꾸민 카페라는 이야기였다. 웃음이 났다. 이럴 때 터지는 웃음을 실소(失笑)라 했던가? 맞다, 어처구니없어 터지고야 마는 그 웃음.


커피가 썼다. 쓰기만 했다.


마음은 없고 콘셉트만 있는 카페. 마음이 없어서 콘셉트마저도 유지할 수 없는 카페.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콘셉트는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 콘셉트는 포장이지만 단순한 포장을 넘어선다, 내용물의 질이 뒷받침될 때라면. 식물에 대한 관심도 없고 관심을 가져볼 마음의 준비도 없이 식물로 포장을 감행한 그 마음의 가벼움이 아쉽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식물 카페를 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꼭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만 식물 카페를 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좋아하지 않아도 일로서 제대로 해낼 수는 있으니 말이다. 이 식물 카페는 식물에도, 카페 일에도 무관심이다. 기발한 콘셉트에 따라오는 일의 성공이란 오래가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상 위에 웬 흙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