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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26. 2021

책상 위에 웬 흙이

1.5평 방구석식덕 생활


책상의 흰 상판 위에 작은 흙 알갱이들이 흩뿌려져 있다.

무슨 일인가, 내 방은 2층이다. 여기까지 어떻게들 올라온 것인가.

책상 위가 이렇다면 방바닥이 무사할 리 없다. 그랬다. 일단 책상 위를 닦고 바닥을 쓸었다.


근 며칠 제법 강한 바람이 시원했다. 덕분에 하늘은 청명했고 구름은 일직선의 하늘길을 내었다. 해 질 녘 거리엔 서쪽을 향해 멈춰 서 시뻘건 노을을 사진 찍는 젊은 애들이 많았다.


그거였다. 모두 가을 태풍 '찬투'가 벌인 일이다.


사방에 들어찬 건물을 비집고 이른 아침 잠깐 딸 방을 비추던 햇살이 사라졌다. 대신 오후가 되면 내 방 깊숙이 해가 든다. 대한민국 서울의 지표면과 태양 사이의 거리, 각도가 달라졌다. 그리하여 바람과 햇빛 자리, 이 가장 좋은 자리를 식물들에게 내준 터.


잎이 촘촘하게 붙어 나는' 칼라데아 오나타'에겐 바람이 필요하다. 새 순이 나왔으나 아직 위태위태한 '레몬트리' 묘목 네 개에게 햇빛은 소중하다. 분갈이를 하고 너무 물을 많이 줬나 싶어 걱정되는 '필로덴드론 미칸'과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은 눈앞에 두고 돌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 둘 작고 약한 것들이 내 방 창문 가를 차지했다. 바람과 햇빛을 따라다닌다. 24시간 열려있는 창으로 찬투의 여파를 알차게 즐기는 식물들.


창문을 마주보고 앉은 책상 위로 흙 알갱이들을 옮겨온 것은 태양과 지구와 찬투와 작은 화분 속 흙들. 과거에, 지금처럼 식물을 띄엄띄엄 보지 않았을 때, 지금보다 건강하고 젊었을 때의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식물을 키우면 집이 더러워진다고. 걸레질을 자주 해줘야 한다고.


걸레를 적시고 꼭 짜 화분 옆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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