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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04. 2021

억지로 잡은 책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다

컨디션이 저조하다. 목이 칼칼해서 아기들 쓰는 순면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잤다. 오전 중엔 위장이(아마 위장일 거다) 쓰려서 커피 한 잔도 건너뛰었다. 나가기 전에 빨아먹는 위장약을 위장 벽에 발라주어선 지 좀 나았는데.. 세미나 하는 중에는 간간이 어지럼증이... 이석증일까... 


오늘은 뭘 써야 하나... 뭘 쓰지?... 쓰기 싫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보면 마음이 바뀔까, 다른 책을 뒤적이다 보면 쓸 마음이 생길까...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 보니 뭔가 떠오르고 지나간다. 이들 중 하나를 붙잡아서... 시작해볼까... 생각하기 싫다. 얼른 침대에 널브러지고 싶다.


집히는 책 한 권을 펼쳤다.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이다. 베르그송을 좀 이해해 보려는 목적으로 샀는데 올리버 색스라는 인간이 이미 넘치게 흥미롭고 존경스럽다. 잠깐의 세미나 방학 동안 한 동료는 윌리엄 제임스를 파겠다고 했고 나는 올리버 색스를 생각했다.


일단 서문이라도...


놀랍다. <의식의 강>은  올리버 색스의 생전 마지막 책인데,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인 2015년 8월 어느 날, 이 책의 출판 일정을 잡았단다. 


어찌 이리도 나는 이런 작가들의 책만 마치 계획한 것처럼 찾아 읽게 되는지. 아니 어떻게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사과나무를 심다'가 가는가 말이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촉매제가 한 토론회였는데 거기서 저명한 과학자들과 '생명의 기원, 진화의 의미, 의식의 본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베르그송에게서도 계속 문제시되었던 주제들이다. 


서문을 쓴 출판사 동료에 의하면 올리버 색스는 다윈이나 프로이트처럼 "인간의 불가사의한 행동을 이해하는 데 이끌렸다.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다루는 시간, 기억, 창의력에 관한 주제가 이론적으로 기울어질 경우에도 경험의 특이성(specificity)에 주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눈에 띄는 단어는 '경험'이다. '경험의 특이성'. 이론은 논리를 끌고 가는 강력한 힘이 있어 거기에 빠지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경험을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험에 주목하려면 연구자는 이론 편향성을 의도적으로 반대쪽으로 밀어내야 한다. 


경험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실, 평균화할 수 없고 일반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각각의 특이한 사례가 이론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다윈과 프로이트가 대단한 관찰자들이었듯이 올리버 색스 역시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환자들을 마음 깊이 관찰했다. 


맞다, 베르그송은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로부터 연구를 시작했었지.


올리버 색스(1933-2015) 
알리 베르그송(185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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