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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28. 2021

시인에 대해 물으면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다

김혜리의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에서 ‘작가 한강’의 인터뷰를 듣다가...



시인은 이 세계 사람이 아닌 게 확실하다. 한국, 미국...  시인과 그의 국적 사이에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큰 거리가 있다. 어느 국적도 시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라는 경계에 시인은 포섭되지 않는다.


시인이 사는 곳은 어디일까...

 

시인은 꿈에서 가락이 들렸다고 했다. 그래서 입으로 외웠다가 앞으로 늘이고 뒤로 늘여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시어도 그렇게 온다고 했다. 그렇게 온 시어를 앞에서 늘이고 뒤에서 늘여서 하나의 시를 완성한다고.


시인의 편두통은 십 대 중반에 시작해 이십 대 중반부터 본격적이 되었다. 예술가에게 천부적 재능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꿈과 편두통일 것이다.


시인은 책을 아름다운 사물이라 불렀다.

시인은 언어를 사랑하고 언어로 쓴 책을 사랑한다. 

시인은 언어를 귀하게 어루만진다. 

시인의 목소리는 울리기보다 떨린다. 말할까 말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일렁임 끝에 가까스로 단어 하나를 소중하게 내어놓는다. 그렇게 내려놓은 말들은 닿을락 말락 닿아있고, 그 틈새로 지나가는 공기는 파르르 떨리며 공명을 만든다. 혹여 자신에게서 나온 소리가 방향을 바꿔 자신을 치지 않도록, 자신을 크게 울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절대 무르지 않지만 딱딱하지 않고 방향이 있지만 한 방향만은 아니고, 듣는 자를 때리지 않지만 어느새 그의 떨림에 동참하게 만드는.


누구든지 시인에 대해 물으면 이제부터 나는 시인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해야겠다.


시인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진 않지만 저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몇 명 더 알고 있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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