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마음에 시 심기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국어 수업-시로 소통하기

by 조이아

시로 소통하기 활동을 한 달 동안 진행했다. 시를 고른 이유를 말하고, 시를 낭송하고, 자신이 파악한 주제를 풀이하고, 시와 자신의 경험 혹은 세상일을 연결해 생각을 보탠다. 원격 수업과 대면 수업에 맞추어 활동 안내와 시를 고르는 시간은 원격으로, 발표 내용을 마련하고 발표하는 시간은 대면으로, 자기 평가 및 활동 평가는 원격으로 계획했다. (5월의 휴일들과 갑작스러운 원격수업으로 인해 계획대로 다 되지는 않았다.) 아홉 반- 서른 두세 명씩의 학생들 발표를 듣느라 나는 신경이 바짝 쓰였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발표를 들으면서, 그의 시에 대해 메모하고, 나의 감상과 평가를 작성했다. 글씨는 괴발개발이었고 나는 또 공책의 절반 이상을 썼지만 꼭 필요했다. 이제 내일부터 대면으로 만날 학생들의 공책을 또 검사해야 하므로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발표를 마치고 나니 조금 숨이 쉬어진다.


점수로 평가해야 하는 일이 서글픈 것과는 별개로 한 달 동안 학생들 덕분에 시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내게도 시란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학생들과 같이 시를 감상하면서 다시금 전율하고 감동한 시간들이 마냥 좋았다. 이런 시들로 같이 소통하자고, 첫 시간에 활동 방법을 안내하면서 나는 스물두 편의 시를 예로 들었다. 시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눈으로, 입으로 시를 읽었다. 나누어준 시를 골라도 좋고, 그 외에도 탐색해서 다른 시를 골라오라고 했다. 너무 짧지 않은 것으로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할 경우에는 종이에 쓰인 시인들의 이름을 토대로 검색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시집으로 찾을 것을 권했다. 한 시인이 쓴 시집을 훑어보는 것도 좋고, 다양한 시인들의 시가 묶여있는 시집을 보아도 좋겠다고. 김용택 시인이나 신경림 시인이 묶어둔 시집이라면 많이 어렵지 않게 우리가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더불어 만화와 함께 쓰인 시집도 있다고, 싱고 작가의 <詩누이>나 <청소년 마음 시툰>이라는 책도 소개해주었다. 이 책들은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책이었는데, 만화와 함께 시를 감상할 수 있어서 시를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중학생들에게도 딱 맞춤이라는 생각에- 정말 좋았다. 마침 <시누이>를 대출중이었는데 주말 동안 학생들이 찾아볼 수도 있어서 얼른 반납하고 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과 나는 같은 지역 도서관 생활권이다. + 싱고 작가는 신미나 시인님이라는 것을, 책읽아웃 '어떤, 책임'을 듣다가 알았다. 작가 소개에 있었어도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마침 내가 갖고 있던 싱고 작가 얘기에 반가워 더 귀 기울여 들었다. 덕분에 얼른 반납하는 마음과 더불어 신미나 시인의 신간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도 바삐 주문해 손에 넣었다.)


학생들이 골라온 시는 대체로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한 반에서 같은 시를 다룬 학생들도 여럿 있었는데 가장 인기 있는 시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또 많은 선택을 받은 시는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과 박노해 시인의 <너의 하늘을 보아>였다. 이들이 고른 시를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매우 흔들리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자꾸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자꾸 쓰러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학생들이 저런 시와 더불어 소개한 자신의 경험은 대체로 시험 성적과 관련이 있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나락이나 실패는 곧 점수였다. 허어. 듣는 입장에서 비슷한 경험들에 조금 질리기도 했지만, 어쩔 것인가. 열여섯 해를 사는 동안 점수가 가장 중했던 것을. 보조자료와 더불어 시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면서 어떤 학생은 1학년 때의 수학 성적표 일부를 캡처까지 해서, 자기 고백을 통해 지금까지 이뤄낸 성취를 이야기한 친구도 있었고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 대체로는 과목까지만 알려주었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로 시작하는 첫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정현종 시인의 시에서는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이라는 구절과 마지막 연인 '옳지 최선의 꼴/지금의 네 모습처럼/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를 마음에 든다고 하는 발표가 많았다. 아이들의 발표를 통해서 나도 시의 구절들을 다시 보게 되고, 과연 위안을 주는 시가 맞다고 다시 공감한다.

시인의 이름도 받아 적게 했는데 박노해 시인의 이름을 다시 묻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래서 반마다 '노동 해방'의 줄임에서 '노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설명했는데, 한 학생이 시인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를 해와서 새롭게 알았다. 시인의 이름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란다. 시인의 <너의 하늘을 보아>는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로 시작한다.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인의 말은 얼마나 다정한지. 이런 시들을 고른 학생들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말들을 골라 읽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자기 안에 새긴 것처럼 느껴진다.


남학생들의 윤동주 시인 사랑도 눈에 띄었다. 이 경우에는 <서시>, <새로운 길>을 많이 골랐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해석하는 아이들이 자꾸 일제강점기 어쩌고 하는 것을 나는 좀 인상을 쓰며 들었는데, 조사를 통해 시를 시 자체로 보지 않고 사상으로 보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시를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자신의 논리로 풀이했으면 했다. <자화상>을 택한 학생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그 아이와 계속 대화하고 싶어 졌는데, 자기 계발서를 자꾸 찾아 읽는 자신의 모습 같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앗, 이 신선한 생각은 무엇이지?' 하면서 귀 기울여 들었던 아이의 발표는 이러했다. 우물 속의 자신을 자꾸만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다듬어가는 과정 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자신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자꾸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는데, 읽을 때에는 이것만 읽으면 더 나은 내가 될 것만 같다가도 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을 때가 많단다. 그러다가 또 다른 책들 찾아 붙들게 되고 하는 그 반복이, 자꾸 우물 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의 화자 같다는 거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니, '맞아, 진짜 바라는 나의 모습을 밖에서만 찾을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이 아이와 계속 이야기 나누고 싶어 졌다. 평가하는 중이라 한 명 한 명에 대한 코멘트는 삼가는 편이었는데,

"땡땡이의 발표를 들으니까, 더 나은 나를 만나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네요."

라는 말로 근질거리는 내 입을 막고 공책에다가 별표를 그려뒀다.

'시로 소통하기'를 제목으로 한 활동은 평가하기에 적절하지는 않다. 제대로 하려면, 시 하나에 담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이야기를 건네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들으면서 아이의 내용을 메모하고, 채점 기준이 되는 요소를 갖추었는지를 따져가며 듣는 것에 그쳤다. 말하기라는 것은 금세 휘발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발표를 하기에 앞서 글로 내용을 써두었지만(또 나는 다 받아 읽어봤지만), 그걸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 같은 게 목소리에는 담긴다. 그 순간마다 학생에게 공감하고 위로하고 같이 웃고 하는 과정들이 너무 약했던 것 같다. 학급 친구들의 모든 발표를 마치고 '이번 활동이 내게 남긴 것은'으로 시작하는 자기 평가를 써보자고 했다. 그러고는 더 궁금했던 학생들 몇 명에게 발표를 시켜 보고, 같이 이야기 나눠보자고는 했지만 부족했다. 아홉 반 서른세 명씩의 공책을 모두 걷어서 다 나의 코멘트를 달고 싶다. 대다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지'하는 아쉬운 얘기가 많을 테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그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마무리 시간에는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읽고,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일부를 감상하며 학생들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했다.(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데 올해에도 시간마다 그래서 곤란했다.) 시가 이토록 깊은 감정의 울림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이번 활동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의미를 열심히 이야기했다. 이번처럼 시를 우리 삶이나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생활 속에서 감상할 수 있으면 한다는 바람이 그것이다.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생긴, 진짜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은 다음과 같다. 지금껏 우리 아이들이 겪은 시련은 고작 시험 성적 정도였이지만,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좌절을 마주할 때, 이번 활동을 통해 마음속에 심은 시의 씨앗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으면 좋겠다는 것! 우리가 여러 차례 반복 감상해서 거의 외울 뻔했던 '흔들리며 피는 꽃'이,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이 그들 안에 숨죽여 있다가 그들에게 지금 흔들리는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한 거라고, 누구나 흔들리며 꽃을 피운다고, 지금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더 높이 오르기 위함이라고 말을 건넸으면 한다고 말이다. 이런 말들을 힘주어 전할 때 아이들의 얼굴은 꽃처럼 환해졌다.(실시간 쌍방향 수업이라 입매까지 볼 수 있었다!) '시로 소통하기'는 어쩌면 내가 하려던 이 말을 몇 주에 걸쳐서 겨우 건넨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내 뜨거운 마음이 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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