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계급, 여성 그리고 주체성

조앤 라모스의 <베이비 팜>을 읽고

by 조이아


창비 스위치 필라멘트 북클럽 - 강렬한 여성 서사 읽기 모임을 마쳤다. 3개월 간 3권의 소설 <피버 드림>, <밀크맨>, <베이비 팜>을 읽는 모임으로 '책읽아웃' 캘리 님이 진행했다. 등장 인물의 서사를 따라 읽다 보면 여성으로 살아가는 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번 책 <베이비 팜>도 그랬다.

민트색 바탕에 흰색 건물 안 창가에는 임신한 여성의 실루엣이 금박으로 그려져 있는 이 고급스럽고 예쁜 표지 안에는 여성의 임신을 사업으로 일구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겼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도 다양해서 인물들 내에서 인종과 계급이 다 다른 여성들이 이야기를 굴린다. 사업을 기획하고 꾸려나가는 중국계 미국인 메이, 필리핀에서 이주해 와 미국인 남편과 헤어지고 갓 태어난 아기를 홀로 키우려 전전긍긍하는 제인, 그런 제인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는 부유한 가정의 신생아 보모로 일해온 아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거 말고 자신이 직접 자기 삶을 일구고 싶어 대리모가 된 레이건 등. 이들이 '골든 오크스'라는 대리모 사업 안에서 저마다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전개도 빠르고 저마다의 사연을 통해 이 인물 행동의 당위성을 부여해 누구 하나를 비난하기란 어렵다. 제인의 경우 돌도 안 된 아기를 두고 골든 오크스로 가게 되는데, 초보 엄마의 초조함에 공감했다. 예순일곱의 아테는 또 어떠한가. 필리핀에 있는 자폐가 있는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돈 벌 궁리를 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을 부치는 그 모성애는 눈물겹다. 자폐에 음악치료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좋은 헤드폰을 구하러 다니고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해 좀 나아졌나를 살피는 아테는, 주변 사람들 특히 고용주들의 눈치를 기가 막히게 보지만 정작 자신의 몸에 이상에는 관심이 없다. 백인 여성 레이건은 부와 학력, 외모 무엇 하나 빠질 게 없는데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대리모 일에 뛰어들었다. 권력과 명예를 향한 아버지의 욕망의 반대편에 선 레이건은 골든 오크스에서 그 나름대로 사회의 진실을 접한다. 골든 오스크를 운영하는 메이의 경우에는 초반에는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지만 결말에 다다를수록 어쩌면 메이 같은 여성상이 오늘날 일하는 여성들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 조앤 라모스는 필리핀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미국으로 와서 공부하고 기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하던 작가는 자기 친구들을 위해 일하는 보모나 유모, 가정부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 아찔한 격차를 양쪽 세계에서 겪은 작가가 써낸 이 소설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예리하게 아우른다.

결말이 너무 헐리우드적인가 싶기도 했지만 메이만이 할 수 있는 선의가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큰 지지 기반이 될 것임이 당연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 애는 판이한 존재 방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강한 여성과 건강한 결혼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 날마다 보게 될 것이다.'

메이의 서술처럼 그는 당차고 자신 있어 보이는 강한 여성이 맞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이 모두 자기 삶을 스스로 일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인한 여성들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콕 박힌 부분은 이 대화의 마지막 문장이다.

"넌 일을 하잖아. 나도 그래. 설사 아이가 있어도 그런 식으로 일 없이 집에 있지는 못할걸. 너라면 그렇게 네 독립을 포기할 수 있겠니? 남편에게 말 그대로 모든 걸, 그러니까 단지 돈만이 아니라 네 모든 주체성까지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주체성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내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메이만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골든 오스크를 택한 제인도 레이건도 리사도 나름의 선택을 딛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여정에 있는 것이라고. 다만 그 출발선이 같아지게 하는 데에 우리는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조앤 라모스, <베이비 팜(The Farm)>,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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