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일 수 있도록

나를 잃지 않도록 지켜봐준 나의 단봉에게

by 조이아


마지막 편지에 우리 이제 호칭을 바꾸자 내가 제안했었지? 일 년간의 해외살이에서 일곱 살이던 둘째 친구가 ‘조이아!‘하며 나를 부르고 같이 보드게임을 했던 기억 때문이었을 거야. 오일 파스텔이랑 책 한 꾸러미를 보내면서 넣었던 편지였을 텐데,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배편으로 가는 시간 동안 난 그 일을 까맣게 잊고 말았나 봐. 후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네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내 안의 꼰대가 놀랐단다. '선생님'을 바꾸자고? 분명히 내가 건넨 질문인데 어쩜 그렇게 까맣게 잊었을까.

또다시 몇 년이 흐르고 이제야 다시금 우리 사이를 돌아본다. 내 사랑스러운 단비! 중학교 3학년 학생과 국어 선생님으로 만나 거의 이십 년째 이어오는 인연. 자꾸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만나고 수학여행 때엔 거푸 나란히 걷게 되었던 우리, 우리 반 학생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지. 학교에서보다 학교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구나. 같이 미술관엘 가고 내가 출사 갈 때 따라나서기도 했던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를 만들어 청소년 영화제에 출품했을 때 나는 담임도 아니면서 담당교사로서 단봉이의 시간들을 지켜볼 수 있어서 신이 났단다. 영상학과로 진학해서 내 결혼식과 첫째 돌잔치의 영상을 준비해주기도 한 단봉이는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마다 함께 했구나. 파리에서 일 년간 지내기로 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날아온 단봉이는 선물 같았단다. 2주를 우리 집에서 지내며 파리의 거리를 쏘다니고, 남부 여행을 갔던 기억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 소중해. 남편은 일하러 나가고, 방학인 아이 둘과 지내던 내게 해외생활 선배인 단봉이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던지. 귀국했을 때마다 나를 보러 대전에도 내려와 주고, 몇 달에 한 번씩 안부전화를 걸어주어 나는 단봉이의 성장소식을 반겨 듣는다.

이렇게 돌아보니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틀린 것만 같다. 이 마음을 지난번 통화하고 강하게 느꼈어. 드디어 공부가 끝나고 쉴 틈이 나 연락을 했다는 전화였지. 그동안 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영어 시험도 잘 보아서 더 이상은 영어 공부를 그만해도 되며, 일할 곳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기쁜 소식이었어. 서로의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를 나누고 나는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최근에 느낀 것을 토로했지.

방학하고 만난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어. 첫 번째로는 아들 친구 엄마들과의 만남이었는데, 음악회에 가기 위해 만남을 계획하고 음악 감상을 충만하게 하고 나서 카페로 자리를 옮겼지. 나는 나로 사는 게 중요한 사람인데,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 하면 바로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였지. 이 언니들이 소개해준 학원을 아직도 다니고 있느냐는 타박을 들었어. 과학고 입시를 위해 여기저기 학원을 옮기고 라이딩을 하고 학원에서 오래도록 공부시켜서 저녁은 밖에서 먹게 한다는, 밤늦게 아들을 데리러 간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기운이 빠졌어. 다들 정보를 알아보고 바쁘게 몸을 놀려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아닐까. 엄마로서의 자괴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즐거우려고 만난 자리에서 우울감을 데려온 것 같았어.

며칠 안 되어 이번에는 제자 아이를 만났지. 대학 후배가 된 이 아이는 제2의 단봉이 같다고 했던 학생이야. 2주 간의 파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신나는 여행담을 풀어놓았어.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을 보자마자 내가 생각났다며, 내가 사다 준 거기 에코백의 2023년 한정판을 들고 나타나서는 파리의 이곳저곳과 스트라스부르 이야기를 들려줬어. 내가 일 년을 지낸 파리 얘기니 어찌 흥미롭지 않았겠어.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엔 나도 다녀온 터라서 둘이 신나게 이야기를 했지. 그러고는 내게 질문을 하는 거야.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하고. 파리 이야기에 비해 내가 할 얘기라고는 "나는 중3 담임을 했고, 올해에도 아마 담임을 하겠지? 우리 애들은 벌써 나보다 커서 잘 지내고 있고." 그다음에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가 없더라고. 여전히 프랑스어를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얘기 조금이랑(이 아이는 프랑스어 전공이야) 그저 글쓰기를 조금씩 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흐지부지 내 이야기를 둘러대면서 내 모습이 흐릿하게 느껴졌달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단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야기야. 중3 때 담임선생님을 친구랑 셋이서 찾아뵈었는데, 맛있는 밥을 먹고 헤어질 때 선생님께서 그러시는 거야. 앞으로는 오지 말라고. 나는 속으로 너무 놀라서 우리가 가서 안 좋으셨나 싶었지.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니들은 앞으로 더 자라고 멋있어질 텐데 나는 늙기밖에 더 하겠니. "

그때는 그저 서운할 뿐이었는데, 그 대학생 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꼭 그 선생님처럼 느껴졌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넓은 세계를 누비는 아이에 비해 내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아이의 세계보다 훨씬 좁은 학교에서의 내 모습뿐인 걸까 하고.

그 두 번의 만남에 대해 단봉이에게 이야기하면서, 내가 엄마로서도 잘 못 살고 있는 것 같고 나 자체로도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고 털어놓았지. 단봉이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잘하고 있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어. 그래, 우리 단봉이가 나를 위로해 주는 거 있지.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단봉이에게 위로를 받았다는 것과 또 내가 먼저 이런 위로를 구하려고 단봉이에게 투정을 부렸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단다. 제2의 단봉이하고 단봉이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고 말이야.

십 년 터울의 선생님과 제자. 예전에는 나를 잘 따르고 잘 웃는 꼬맹이 단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엿한 직업인으로서 외국에서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는 단봉은 이미 어른이로구나. 이제와 돌이켜보니 단봉이는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있어주고 나의 세월을 함께해 주었다는 거 알고 있니? 나는 나 사느라 바빠서 먼저 연락도 못 하는데 늘 먼저 전화해 주고 소식 전해주는 것도 새삼스럽게 고맙다. 치사랑이 있다는 걸 이렇게 단봉이가 알려주는구나. 내리사랑도 나는 너무 소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부끄럽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단봉이는 내게 든든한 의지가 되어 준다. 이십 대 교사였을 때에도 내 서툰 모습을 지켜봐 주었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게 힘을 주었지. 삼십 대 아기 엄마였던 나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때에도 내 옆에서 말없는 지지를 보여주었어. 아기를 보느라 어쩔 줄을 몰라할 때에도 단봉이 눈빛 속의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그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었거든. 그건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야. 두 아들을 데리고 낯선 곳에서 적응하려고 분투할 때, 삶을 향유하는 나를 잃지 않도록 내 원래의 모습을 이야기해 줬으니까. 단봉이 덕분에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

지금은 나를 위로하는 단봉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씩 서로를 향해 웃어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관계로 이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까. ‘선생님’이 아니어도 좋아. 단봉이가 선생님이라 불렀던 지금 너의 남편이 나보다도 나이가 많으신데 내가 뭐라고 여전히 선생님인지. 인생의 선배와 후배로, 외국생활 선배처럼 때로는 단봉이가 선배일 때도 있을 거야. 언니와 동생으로,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언니로서 좀 더 단봉이 생각을 많이 할게.

내년에는 꼭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가고 싶다. 두 아들을 달고 가더라도 환영해 줄 단봉이를 아니까.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퀸즐랜드 자매로드>를 읽고 퀸즐랜드 여행이 꼭 가고 싶었는데, 우리 단봉이가 있는 곳이니 나는 마음 놓고 자매로드를 한 편 살아내고 싶다. 햇살처럼 나를 맞이해 줄 거지?

2023년 2월 퀸즐랜드 자매도시 대전에서 조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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