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불안한 내 마음을 붙잡는다. 나의 애정을 믿으면서.
2월은 어째서 28일까지인가. 3월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내일이 벌써 2월의 마지막 날이다. 대한민국 교사의 2월은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는 달이다. 그럼에도 2월이 후딱 지나기를 바라지는 않고 3월은 더디 왔으면 좋겠다. 3월은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무조건 소진될 것이므로.
이상하게도 올해 2월에는 나의 불안 그 옆에 바짝 여유가 붙어있다. 나의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직 수행평가 계획도 못 세웠고 새로운 학년의 교과서도 뜯어보질 못했다(대충은 봤지만 부족하다). 그저 하나씩 생각나는 걸 처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탁에 붙여둘 학생들 자리 배치표, 책상마다 붙여줄 이름과 시간표, 사물함 이름표, 첫 수업 자료 등. 오늘 안내된 3월 2일 시간표를 확인하고는 1교시는 담임이 들어가는 청소시간, 2교시는 담임시간인데 수업이 3, 4, 5, 6이라니 너무 했다고 투덜댔다. 물 한 통을 들고 다니며 수분을 보충해야 하고(수업 안 하다가 오랜만에 교탁 앞에서 얘기하다 보면 간혹 사레가 들리고 목소리가 떨린다), 걸핏하면 충혈되는 왼쪽 눈을 위해 안약도 챙겨가야겠다. 다행히 두통은 없다. 아직일 수도 있지만.
작년에는 7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올해에는 해본 일이라서 그런가 마음에 여유가 들어설 작은 빈틈이 생긴다. 3월 2일 아침에는 발을 동동거리며 교무실과 교실을 왔다 갔다 할 것이 분명하지만, 첫날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나를 안심시킨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내가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했는가, 그 마음만 기억하고 새 학년을 시작하려고 한다. 졸업을 시키고서도 한동안 나는 우리 반 꿈을 꿨다. 작년에 쓰던 한글 파일을 열어서 새로 맞이할 아이들 이름으로 수정하는데, 그 아이들 이름마다 얼굴이 생각나고 그들을 내가 얼마나 예뻐했는지 마음 한쪽이 이상했다. 다시 그 아이들이 우리 반이 된다면, 분명 우리 사이에는 실망과 분노 같은 감정이 자리할 테지만 그런 감정들보다 더 크고 진한 정이 자리 잡았다는 걸 확신한다. 우리가 많이 편안해졌는데 헤어졌구나, 헤어지고 나서야 우리 사이의 정을 느꼈다. 왜 그 아이들이 예뻤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이거 하나다. 우리 반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또 만날 우리 반을 예뻐할 수 있을 거다.
작년 우리 반 급훈이었던 문구를 3월 첫 만남 때에도, 졸업식 때에도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강조했다. 내 입으로 말하고, 교실 게시판에 내 손으로 써붙였지만 그 의미를 나는 일 년이 지나고 2월에야 마음으로 깨달았다. "모든 사랑은 나에게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 이건 담임인 나의 말이었다. 내게서 사랑이 출발했구나. 그리고 나도 아이들로부터 그 사랑을 돌려받았다. 졸업식 날 부반장이 뭔가 커다란 종이를 꺼낼 때, 나는 속으로 '자기 짐은 다 가져가라고 했는데 우리 슬기가 왜 저런 걸 갖고 있을까'했다. 표정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부끄러워해서 왜 그럴까 의아해하면서. 아이들이 준비한 롤링페이퍼라는 걸 알고는 허둥대며 끝맺음 없는 말을 두서없이 해댔다. "이런 걸 언제 썼어. 언제 준비했어. 내가 정말 오랜만에 담임했는데. 고마워." 좀처럼 단합하기 어려웠던 우리 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걸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눈물이 삐져나올 것 같아서 서둘러 다른 얘기를 했는데 두고두고 고마운 마음이 솟았다.
불안을 잠재우고 안심하기 위해 <<선생님을 위한 비폭력대화>>를 읽는다. 몇 쪽 읽지 않아도 부족한 내 모습이 자꾸 나온다. 마음이 여유로운 담임으로 아이들 옆에 서고 싶다. 예측할 수 없는 어른 말고 상냥하고 미더운 어른이면 좋겠다. 성인군자가 아니므로 내 마음은 날뛰고 내 표현 또한 들쭉날쭉하겠지만 노력해야지. 나의 3월은 여유로 시작한다. 내가 만날 아이들을 향한 나의 애정을 믿는다. 비록 누구나 무서워하는 중2일지라도. 올해 우리 반 급훈은 "공감이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로 정했다. 중2니까.
@ '모든 사랑은 나에게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 _김현, 창비, 2021,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중에서
@ 임이랑, 수오서재, 2022,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 급훈은 이 책 제목을 변형했다.
@ 김미경, 우리학교, 2022, <<선생님을 위한 비폭력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