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우주>를 받아들이기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질투가 났다.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만큼 제목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 만난 학생들과의 첫 국어시간, ‘국어B’ 시간을 ‘우주국어’로 이름 붙이며, 여러분 한 명 한 명은 모두 우주라는 생각으로 대하고 싶다 했다. 일주일에 두 시간, 만날 때마다 내가 보는 중학생들의 모습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국어 책을 읽거나, 자기 생각을 쓰거나, 옆 친구와 말하기 듣기를 하는 모습뿐일 것이다. 가끔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할 수도 있고, 친구들을 웃길 수도 있겠지. 때로는 무언가에 감동할 때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내가 볼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이 학생들은 노래를 정말 잘 부르거나 땀을 흘리며 체력을 단련하거나 어떠한 탐구 또는 실험을 진지하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며 어쩌면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드는 신공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앞에 있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국어시간에 다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보는 이 모습이 다라고 착각하며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이 생각을 지지해 주는 분이 계시다며 준비해 간 PPT화면에 저 책을 띄웠다. 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었던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황영미 작가님의 에세이 표지를 보이며 제목을 읽어보자고 했다. 제목이 무려 <<사춘기라는 우주>>인 것이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사춘기를 '우주'로 칭하며 그 신비와 무한함을 한없이 긍정하는 글이 아니겠느냐면서.
책은 아이들의 흥미를 끈다기보다는 나처럼 학생들과 지내거나,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사춘기를 지나온 자녀들과의 경험이나 독자와의 만남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이야기, 무엇보다도 작가님이 그려내는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글을 읽는 내내, 그들을 존중하자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사춘기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 같다. '중2병'이란 단어는 그 존재 자체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지 않던가. 실제로 사춘기는 자신과 만나고 성장하는 시기인데 그 과정에서 가장 분투하는 건 자신일 터. 나도 모르던 내 감정을 발견하고,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생기고,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자기 세상을 넓혀 나가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을지. 그들보다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어른들이 충분히 허용적인 분위기 속에 자신을 긍정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 나도 그런 어른이고 싶고.
새 학년을 맡은 올봄에도 여전히 이런 말을 들었다. "3월엔 웃지 마. 애들 잡아야 돼." 자기표현이 강한 학년이고 어수선한 이때 기강을 확립하면 좋아서 하는 말씀이라 이해는 간다. 하지만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면서 이젠 새 학년 아이들의 불안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교사도 낯선 학생들과 생활의 방식을 맞춰나가느라 힘들지만 아이들 입장도 생각해 본다. 과목마다 다른 교사가 저마다의 방식을 안내하는 3월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수많은 교사들 중 친절한 교사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서는 납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처럼 그들도 입체적인 사람들이다. 중3이 된 큰아들의 손톱 옆 맨살이 빨갛게 드러났다. 작은아들은 두피와 이마에 오돌토돌 올라온 뾰루지에 저녁 내내 손을 댄다. 자꾸만 긁고 떼어내는 그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다. 다들 저마다의 불안을 감당하며 살고 있다. 그 애씀을 알아봐 주고, 불안을 줄여주려고 노력하는 것, 거기에서 더 나아가 서로를 우주라 여기고 경이로워하며 지낼 순 없을까.
@ 황영미, <<사춘기라는 우주>>, 허밍버드,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