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 읽는 시간
올해 중학교 2학년 도서관 수업은 '우리들의 시 읽는 시간'으로 채웠다. 시험 진도나 수행평가에 치이지 않고 온전히 읽을 수 있는 시간, 마침 시의 화자에 대해 학습하고 시를 읽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시집 읽어본 적 있는 사람?"하고 물으니 몇 명 없다. 나에게도 시집을 읽는 것은 쉽지가 않다는 고백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시집은 내가 텍스트를 모두 읽었다고 해도 다 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그래서 일단 우리가 배운 '귀뚜라미'의 나희덕 시인의 시 두 편을 따로 준비했다. 함께 읽고 시적 상황을 파악하고, 화자의 처지를 살펴보는 연습을 하고 나서 시집을 읽어보자고 했다. 내가 준비한 시는 '배추의 마음'과 '천장호에서'였다. 화자는 배추일까, 사람일까 같은 쉬운 질문을 던지며 아이들이 시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천장호에서'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아이가 반에 꼭 있어서 친구들의 이해를 도왔다.
두 편의 시를 함께 읽고, 시집에서 시 두 편을 골라 읽도록 했다. 도서관 책상 위에 시집을 종류별로 놓아두었다. 출판사마다 디자인과 판형이 다른 것을 살펴보도록 했고, 감성을 건드리는 제목을 읽어주며 아이들을 자극했다. 문학과지성사 시집에는 시인의 캐리커쳐가 있으니 그림도 보도록 했고, 문학동네 시집은 색깔과 뒤표지 디자인이 다르니 색감을 느껴보라 했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 봐',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같은 문학동네의 시집 제목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입 속의 검은 잎',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와 같은 문학과지성사 시집 제목을 내가 먼저 감탄하면서 읽어주었더니 아이들은 과연 혹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쉽게도 창비 시집은 학교도서관에 많지 않았는데 대신에 창비청소년 시집이 많아서 알록달록한 개성을 보여주었고 아이들의 손이 가장 많이 갔다.
마음에 드는 시집을 골라 시를 읽되, 고른 시의 경우는 화자와 시적 상황을 기록하고 감상도 쓰게 했다. 그리고는 한 편의 시를 필사하도록 했는데, 필사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시집을 들춰본 아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시가 왜 이리 길어요?"
가 가장 많은 반응이었고
"뭐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도 있었지만
"시가 이래도 돼요?"
하며 킥킥대는 아이들도 반마다 있었다. 가까이 가서 시를 들여다보면 정치인 이름을 가리키며 웃는다. 비속어가 쓰인 것에 대해서도 자꾸만 내게 보여주며 고발하고 싶어 했다. 또 하나 그보다 많은 비율로 야한 부분을 금세 찾아내, 이번에는 내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돌려보느라 바빴다. 시 읽는 모습을 보는 게 대체로는 무척 흐뭇했는데, 마음고생을 한 반도 있었다. 반의 분위기가 어쩌면 그렇게 고스란히 시 읽는 시간에도 드러나는지. 교실에서 어수선한 반은 도서관에 와서도 어떤 흥분감이 감돌았고, 교실에서 차분한 반은 도서관에서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독 야릇한 시를 잘 찾아내는 반에서는 이 시집들을 감춰두어야 하나 고민하게도 만들었다. 시의 매력을 안 셈이겠지 하다가도, 내가 선별해서 시집을 두었어야 했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들 공책을 걷어서 그 시간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어떤 시를 읽었나, 감상은 뭐라고 썼을까 궁금했다. 필사한 시는 대체로 짧아서 골랐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시를 읽어내려고 애쓴 감상이 적혀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이날의 수업일기에는 도서관에서 시를 읽었던 경험에 대한 저마다의 소감이 있었다. 내 우려처럼 시가 너무 야했다는 소감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보면 아이들은 진지하게 시를 읽어 나간 듯 싶다. ‘고요한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시가 재미있었다, 집중할 수 있었다, 다음에도 시집을 읽어보아야겠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읽고 '좋아해요'가 적힌 도장을 콩 찍었다. 공부보다는 친구에게 관심이 많은 아이가 있다. 외모도 눈에 띄는 편인데 수업 태도가 예쁜 것은 아니어서 칭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가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시에 담긴 마음을 콕콕 짚어내는 거다. 두 번이나 아이에게 "솔이야, 솔이는 시를 참 잘 읽는다." 칭찬했다. 아이가 쓴 수업 일기에는 '나는 시랑 통하는 것 같다'라 적혀 있어서 뿌듯했다. 도서관에서 시 읽던 시간이 그리워져 그 문장들에 고운 색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그 시간을 기억했으면 하고.
시를 왜 읽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 말이다. 그동안에도 시집은 사 왔지만 요새 시집을 골라 들면서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머리로 읽어내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이 사람의 시가 좋다고 해서 읽지 말고 내게 와닿는 시를 읽고 싶다. 읽으면서는 내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시가 주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러고 보면 중학생 아이들이 시를 읽으며 큭큭 댄 것도 시를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잘 감각한 건데 나는 편견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바라본 것 같다. 도서관에서 시를 읽는 한 시간, 아이들에게는 짧은 경험이었겠지만, 짧은 시 속에 오래 머물며 값진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올봄 손목시가에서 시집을 한 권 샀는데, 손목서가 도장이 찍힌 책갈피를 끼워주셨다. 시인과 화가인, 아내와 남편이 나란히 섰는 그림이다.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가 내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으면 한다. 시인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