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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Oct 06. 2023

소설을 책 디자인으로 해석한 책을 읽고

배수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과 이기준 디자이너

일 년 만에 독특한 책을 열어보았다. 작년 와우북페스티벌에서 구입한 배수아 작가님의 소설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비닐 커버에 쌓여있던 책을 뜯어 책장에 고이 모셔뒀다가 올해의 와우북페스티벌에 갈 아침나절에 읽었다. ‘테오리아’라는 출판사 부스에서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이라는 앤솔로지와 함께 샀더랬다. 나로서는 에세이를 펼치기가 훨씬 쉬워 음악에 관련한 작가님들의 수필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소설은 한번 펼쳐 들면 그 세계에 빠져야 해서인지 읽기 시작하는 데에 주저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 시작만 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게 소설의 매력이다.

오늘 읽은 배수아 작가님 소설은, 그답게 묘하고도 매력적이었다. 책을 고른 것은 작가님 이름과 너무 새까맣기만 한 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열자 책의 앞뒤에 있는 면지부터 달랐다. 일반적으로 한두 장의 면지가 들어갈 텐데, 쨍한 하늘색 빳빳한 종이와 그보다 두꺼운 크래프트지, 불투명한 트레이싱지(나 같은 옛날 사람에게는 미농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훨씬 두툼했다.)도 있었고 얇은 책갈피 크기의 글이 하나 꽂혀 있었다. 책 디자인에 대한 글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기준 디자이너님의 것. 그걸 먼저 읽으면서 서체에 대해 이해를 했는데, 책을 다 읽고서 다시 그 쪽지를 읽으니 책 전체의 디자인이 수긍이 되면서 책 전체의 만듦새와 이 책을 위한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소설집에는 소설 세 편이 담겼다. 표제작을 읽으며 시적인 영화를 만드는, 천재이자 은둔자로 불리는 인물 ‘험윤’의 일상과 그 틈을 벌리는 여성과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소설이 끝나고 뒷부분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다음 소설로 넘어가려는데 새로운 경험을 했다. 빈 페이지들을 만난 것. 뭐지? 뒤로 넘기다가 그다음 소설 뒤에도 또 이런 빈 페이지가 나오는 걸 알고 의도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두 번째 소설인 <영국식 뒷마당>에는 비어있는 페이지로 가득한 책과 관련한 ‘경희’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의 독서처럼 나도 빈 페이지들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타인과의 교류가 아닌, 나 자신과 혹은 단 한 사람과의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마지막 소설은 <부엉이에게 울음을>이라는 소설로 앞의 두 편보다 더 무엇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혹은 꿈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에 꼼짝없이 붙들릴 수밖에 없었고, 다 읽었을 때에는 크래프트지를 어루만지며 그 거침과 오래된 책이 주는 그윽함 혹은 먼지 냄새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대학 도서관의 서가에 들어앉아 온종일 책을 읽거나 아니면 그저 책등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루를 지내고 싶어졌으며, 그럴 수만 있다면 밖에 어둠이 깔리고서야 그곳을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좋은 책이란 무얼까. 어떤 이야기이든 내 삶과 같이 진동할 수 있다면 잊힌 등단작이든, 몇 구절 안 되는 시이든, 혹은 그저 들려오는 문장들이어도 좋을 것이다. 오늘도 나를 사로잡을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이 단지 글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시각적 번역물이 되길 바랐다. 글에 등장하는 배경, 물건, 현상 등을 표지에 끌어와 구체성을 지우고 책의 물리적 요소로 치환해 켜켜로 포갰다. “

                                                                                                              - 디자이너 이기준


이런 마음을 담은 책이라면 내 마음을 온통 다 빼앗겨도 좋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앞둔 마음을 책에 대한 그리움과 설렘을 담아 썼다. 서울 나들이를 해야 하므로 오늘의 글은 짧게. 오늘 만날 이다혜 기자님, 정혜윤 피디님의 이야기에 우선은 마음을 빼앗겨 보겠다.

오늘의 독서는 자습하는 교실에서, 시험보는 복도에서

@ 배수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테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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