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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Oct 07. 2023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끔 고백을 받을 수 있어서 나는 또

네이버 쪽지를 보내다가, 받은 지 두 달이 넘은 쪽지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으로 시작하는 쪽지는 옛날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름을 밝혔어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는데, 꽤 긴 글을 읽다 보니 어렴풋하게 그 시절이 생각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그마치 두 번째 근무한 학교에서의 인연. 사진 동아리를 만들어서 예쁜 학생들이랑 출사도 가고, ‘홀가’라는 토이카메라도 들고 다니던 때였다. 우리 큰애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그때 태어난 땡땡이는 잘 있는지 안부를 묻는 제자라니. 요즘 누구나 MBTI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데, 그때의 내가 처음 인사할 때 나를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했었다고,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난다고. 벌써 그때 내 나이가 되었다는 이 친구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준 것이 너무 신기하고 고마웠다. 나도 잊고 있던 한때를 생각나게 하고,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다니. 쪽지의 마지막 문장도 너무 예뻤다.

“선생님의 하루가 제가 이렇게 갑자기 남긴 쪽지를 보고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

너무 기분이 좋아 마음이 일렁였다. 쪽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다시 읽어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웠다. 마음을 담아 답장을 썼는데, 그 친구도 언젠가 확인하고 빙그레 미소 짓는다면 되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출근길에 졸업한 고등학생들의 등굣길과 겹쳐서 정든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마스크를 썼다가 안 쓰니 얼굴이 가물가물하지만 다 아는 얼굴들이다. 반가운 인연도 있고, 심드렁한 관계도 있다. 걸어서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저 아이를 알겠는데 인사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많다.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이면 진짜 반갑게 인사하고,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라고 활짝 웃으며 지나간다. 그런데 그저 수업했던 학생의 경우, 내가 먼저 인사하기도 그렇고 저 아이는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같아 마음이 쪼그라든다. 이런 내 마음이 참 마음에 안 들고 이상해서 내 성격 참 소심하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깨달았다.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 <일 년>, 문학동네

나는 수업마다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증오하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수업마다 진심을 내보였거든. 문학 등 내가 좋아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고 사춘기의 마음을 향해 표현했거든. 그게 마치 서른 명 앞에서 짝사랑하던 내 모습을 들킨 것만 같아서 이제와 민망하다. 그런데 또 아주 가끔, 내 그 마음을 알아봐 주고 좋았다고 표현해 주는 고백이 있어서 나는 즐겁게 또 진심을 내보일 수 있다.


오늘은 무려 7년 동안 적을 두었던 학교 선생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반가운 선생님들을 만난 것은 물론이고, 대전에 왔던 첫해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쁜 사람들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줘서 깜짝 놀랐는데, 제자들이었다니! 스물세 살의 그들은 중학생의 앳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빛나고 있었다. 저녁 무렵에 우리 반이었던 예쁜 아이가 카톡으로 오늘의 만남에 대해 반가운 안부를 길게 전해주어서 또 뿌듯했다. 선생님처럼 멋진 교사가 되고 싶었다든가, 존경했다든가 하는 그런 귀한 말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나는 또 수업마다 진심을 보일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은 겸연쩍어도 내 안의 무엇이든 전해지기를, 스물여덟 명 중에 단 한 명에게라도, 그러면 되었다. 몇 년이 흐르고도 기억될 수 있는 축복을 나는 이렇게 조금씩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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