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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Oct 21. 2023

문학과 소통하는 법, 소설을 시로 재구성하기

중학생들의 국어 수행평가, 나의 최은영 소설 다시 읽기

수행의 계절은 어째서 이렇게 맑은 가을하늘과 함께 오는 것인가. 중국어, 수학 등 다른 과목의 수행평가가 진행 중인 이때 내가 계획한 2학기 수행평가는 한 권 읽고 시로 재구성하기. 소설을 시로 바꿔 써서 자신만의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다. 소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할 테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소설을 읽고 고민하겠나. 여름방학 과제가 소설 읽기였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아이들 글 채점에 앞서 나도 같이 수행평가 쓰기를 해보았다. 첫 번째 시간에는 소설의 줄거리를 적어보고 감상문을 적도록 했다.

내가 고른 소설은 최은영 작가님의 <일 년>으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단편집에 있다. 사진으로 된 표지가 정말 예쁜데, 초판본에 한해 양장으로 된 책의 속표지는 은은한 파스텔톤의 체크무늬로 볼 때마다 감탄한다. 그 부드럽고 섬세한 결이 소설 속 은은하고 다정한 정서와 꼭 닮았다.

<일 년>은 풍력발전기 짓는 현장을 오가며 카풀했던 ‘다희 씨’와 ‘나’의 이야기이다. 일 년 인턴으로 온 다희와 현장근무를 다니며 차에서 함께 하는 시간, 회사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던 ‘나’는 둘이 함께하는 차 안 공기가 서먹하다. 다희는 가방 속 귤을 까서 손바닥 위에 올려주며 연신 이야기를 하고, ‘나’는 주로 호응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귤을 하나씩 집어먹는다. 솔직한 다희가 하는 얘기에 어느새 ‘나’의 마음도 풀어지고, 자신의 이야기도 조금씩 꺼내어 놓으며 ‘나’는 깨닫는다. 그동안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독백에 가까웠다고. 인턴이 끝나갈 무렵 회사 사람들이 ‘나’에게 다희에 대해 묻자, 가는 길이 같아서 동행할 뿐이라는 대답을 했고, 그것을 다희가 듣고 만다. 마지막 날 둘은 좀처럼 대화가 없었는데, ‘나’는 용기를 내어 다희에게 말한다.

“저는….. 다희 씨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에요. ”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고민하면서 쓰다 보니 선명해지는 게 있다.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좋아지는 일, 살아갈 힘을 얻는 일에 대한 이야기라 내가 이 소설을 좋아했구나.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사람은 함께 해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그래서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내 곁에 있는 이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닐까 싶은 거다. 독백을 주고받는 관계 말고, 자신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타인과 교류하는 경험을 다룬 이야기여서 좋았다. 진정한 자신을 내보이면서 소통해야 자신하고도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두 인물은 8년 후 우연히 재회한다.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익숙한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번에도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는다. 독자로서 아쉬웠지만, 이런 교감을 나눠본 인물이니 다른 누군가와 교류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 예감했다. 소통을 통해 더욱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관계를 겪어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 더 빛날 거니까.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어느 날 아침, 옆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받으셨단다.

“선생님, 시는 어떻게 써요?”

하고 점수에 관심 많은 부반장이 물었다는 거다. 나는

“아, 국어 수행 둘째 시간에 시 쓰거든요.”

라고 답하면서 아이들의 답답한 심정을 전달받았다. 오죽 걱정스러우면 기술가정 선생님께 물었을까. 시를 쓰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다.

국어 수행 두 번째 시간, 우리가 시인은 아니지만, 내용을 충실하게 담고 조건을 갖추면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만의 제목을 새로 짓고, 시적 상황이나 화자를 설정하여 시적인 요소를 갖춘 8행 이상의 시. 그저 시처럼 써보자고 얼렀다. 그리고 나는 시 쓰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너무 예뻐 보여서, 손가락 하트를 마구 날리고 싶었다. 저마다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거든. 저 앞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을 보여주었고, 입술을 오므리며 야무지게 뭔가를 써댔다.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썼다가 지웠다가 하는 중학생이라니. 나도 시를 만들어 내느라고 머리를 쥐어짰다. 소설에 나온 소재를 침낭에서 담요로 바꾸었으며, 화자를 다희로 바꾸어 서로를 향한 응원의 마음을 표현했다.


소설 감상문, 시, 재구성 의도와 수행 소감문까지 써서 제출한 두 장의 종이를 받아보니, 수정테이프로 범벅이 돼있거나 두 줄 긋고 아래에 쓴 문장들, 화살표 표시로 문장 순서를 바꿔놓은 것 등 그들의 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부실한 줄거리도 있고, 자기 관점을 넣지 않고 시로만 바꾼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글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시를 읽는 즐거움이 컸는데 다들 주어진 조건을 따라 시를 잘 써냈다. 내가 주기로 했던 점수를 벗어나서 잘 쓴 글과 시에는 별표를 쳐놓고 칭찬을 하리라 다짐했다.

한 권 읽고 시로 재구성하기에 대한 소감은 대체로 이러했다. 이렇게 시로 쓰다 보니 소설 내용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고, 소설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재미있었다’라는 짧은 소감도, ‘시 쓰는 게 힘들었다’라는 단순한 고뇌도 있었지만 소감문을 읽어보니 이번 수행평가가 의미 있었다는 확신이 든다. 다들 열심히 써서 점수를 주기 위한 채점인가 조금 고민했지만, 내가 관찰한 두 시간의 수행평가 동안 아이들이 정말 애쓴 것을 알기에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 중학생들이 소설을 시로 바꿔 쓰면서 애쓰고 고민한 두 시간(보다 더 고민했을 거다)이 앞으로 읽게 될 문학의 깊이와 폭을 넓혀줄 것 같다. 서술자나 소재에 대한 통찰,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생각하고 고민한 시간이, 수동적으로 읽기만 하던 소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감상하게 했으리라. <일 년>에서 느낀 것처럼 한 번 진정한 소통을 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을 테니까, 또다시 소통할 수 있을 거니까. 문학하고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과 만나고, 시를 읽으며 고민을 마주하면서 문학과 소통하기, 문학을 입체적으로 감상하기. 중2 여러분, 이번에 해봤으니 이제부터 소통할 문학 작품이 얼마나 무궁무진할지 기대된다. 자, 기쁘게 시작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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