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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Dec 23. 2023

내향형 독서모임 리더의 기쁨과 슬픔

올해의 실패_저의 MBTI는 무엇일까요?

내향형인 내가 어쩌다 독서 모임을 두 개나 이끌고 있는 걸까. 벌써 4년이 꽉 찬 모임에 대해 심드렁해졌다. 한 달에 한 권씩 쌓여가는 독서목록에 뿌듯한 마음도 있지만 조금은 권태롭던 차였다. 기대가 사라지고 있달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모임에 대한 나의 애정에 비해 다른 분들의 마음이 덜 느껴진달까.

모임일 전날이어도 '내일 어디서 볼까요?' 하는 질문도 없고 으레 내가 먼저 '내일(혹은 오늘)이 우리 모임일입니다' 안내하는 상황에 힘 빠졌다. 나는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하는데 당일에야 불참 소식을 전하는 분들에게 실망스러웠다. '어떤 책 읽을까요' 묻고 '좋은 책 추천해 주세요'하는 대답이 돌아올 때면 무심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지 않고 오는 분들도 늘 있고. 모여서 그 학교 얘기만 하는 분들께 괜스레 부아가 났다. 아무래도 학교 안에서 바쁘다 보니 회포를 풀고 싶으시리라 짐작은 하지만, 다른 이들을 소외시키기도 하는 걸. 이 모임 이대로 괜찮은 걸까 생각하던 요즈음이었다.


지난 12월 모임을 앞두고 엽서책 하나를 준비해 갔다. 그러고는 이번 책은 읽기도 싫었고, 연말 모임의 특별함도 없고, 다들 그냥 오셨구나 하는 마음에 혼자 새초롬해져서는 책 얘기가 아닌 다른 데로 이야기가 흘러가도 그저 웃고만 있었다. 들고 간 엽서책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고 말이다. 연말이면 이벤트를 하고 싶은 마음에 작년 12월에는 (그때도 내가 엽서책 하나를 가져가서) 마음에 드는 거 한 장을 골라 롤링페이퍼를 썼더랬다. 그런 제안을 드리는 게 조금은 조심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들 좋아하셨는데 이번에는 또 꽁한 마음에 그냥 들고 왔다. 너무 어려워 말고 나답게 했어야 됐는데 왠지 불편한 마음에 가만히 있고는 혼자 후회하는 나란 사람.

작년 12월의 엽서와 즉석사진들 @엄주 작가님 일러스트 엽서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늘 조심스러웠다. 가기로 한 식당에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었고, (곧 우리가 가는 시간에는 한산하다는 걸 알고 마음을 놓았다.) 내가 추천한 책을 어려워하시면 어떡하지, 혹은 너무 젊은 세대의 이야기일까 주저했다. 읽어보지 않고 내가 읽고 싶어 추천한 책에 대해 별로였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신경이 쓰였다. 결국은 읽어본 책 중에 고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두 번 읽으면서 생긴 내 애정하고는 다르게 쉽게 말해지는 부정적인 의견에 상처받았다. 나는 별로이지만 추천을 받은 책에 대해서는 모임을 진행하면서부터 책에 대한 자신이 없어 말도 덜 하게 되었다.

선배 선생님들께서 나를 '회장님'이라 불러주시는데, 내가 제 역할을 못했던 것 같다. 1차 식사할 때는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2차 차 마시는 시간은 온전히 독서모임에 집중하자고 다시 안내했어도 되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책 얘기가 아닌 다른 주제로 빠질 때에는 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덜해서 할 얘기가 금방 동이 나거나, 내가 특별한 주제를 나누자고 제안하지 않을 때. 한때는 프린트물도 준비해 가고, 이야기할 거리도 생각해 가고 했었는데 말이다. 회원 선생님들께 이렇게 서운해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준비를 덜해놓고는 그 섭섭함을 다른 분들을 향해 겨누었다.


최근 새로운 독서모임이 열렸다. 단톡방에 초대되고 나서 '회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어떤 책을 읽을까요'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좋은 책들이 추천되었고, 리더분이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의견을 내지 않고 가만히 톡을 읽기만 했던 것이다. 이 기회에 새로운 책을 알고, 그냥 여럿 가운데 묻혀서라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 발동했다. 독서모임 리더가 아닌 회원으로서의 마음을 새로 알게 된 것이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회원의 마음이 이럴 수도 있구나, 모임에 대한 호감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을 수 있던 거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 모임원들에게 서운해하기만 했다. 더 나쁜 건 이런 서운함을 표현도 안 했다는 것.


곰곰 생각해 보니 회원 선생님들은 모임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보여주셨다. 정산하는 일에 뭉툭한 나를 대신해 총기 있는 선생님이 총무 역할을 맡아주신 지가 일 년이 되었고, 육아에 바쁠 텐데도 모임에 참여하려고 애쓰는 아이 셋 선생님도 계신다. 우린 번역서를 읽는데 영어 원서를 읽고 오시는 멋진 부장님도 계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오시고는 우리 수대로 책갈피를 챙겨 주신 부장님, 신혼여행 다녀와 모임에 빠진 분들을 챙기느라 두 달에 걸쳐 선물을 전해주신 선생님, 운동 마치고 독서모임을 위해 밥을 포기하고 달려오는 선생님, 조금은 겉도는 것 같지만 가장 성실하게 참여해 주시는 선생님, 언제나 촘촘하게 태그하고 정리해 오셔서 든든한 교감 선생님까지. 이 마음들을 내가 모른 척했었네.


올해의 실패에 대해 쓰자는 글쓰기 모임 선생님들 덕분에,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수필의 본질이란 이런 것 아닐까.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 일. 우리 독서모임 선생님들이 모두 내 브런치 주소를 알고 계시는데, 이렇게 부끄러운 고백을 해도 되는 걸까 저어되지만 이게 다 나의 성향 탓이자 모임에 대한 커다란 애정 탓이라고 변명해 본다. 올해의 실패 쓰기 덕분에 독서모임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다.

우리 모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가장 오래된 독서모임이고, 직업은 동일하게 교사이지만 다양성을 갖추었다. 성별, 과목, 학교급, 연령층도 다양해서 내가 딱 중간에서 선배님들의 지혜, 후배님들의 생기를 전해받는 모임이어서 참 좋다. 언제나 내가 추천하는 책을 환영해 주시고, 다음 달에는 무려 내가 쓴 책으로 모임을 하자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참 감사하다. 내가 받는 과한 애정을 새로운 독서모임에 들어가면서야 알게 되었다. 의견을 피력하지 않아도, 그저 모임 안에서 만족스러우며 모임에 대한 충분한 애정을 지녔다는 걸 회원이 되어서야 알았다.

새로 열린 단톡방에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했다. 모임 방식에 대해 의견을 냈다. 반응하지 않으면 내 호감이 드러나질 않으니까 할 수 있을 때마다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독서모임, 1월에는 엽서를 가져가 1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자고 제안할 테다. 책갈피랑 예쁜 도장도 챙겨가야지. 우리는 1년 뒤에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 일단은 다정한 연말 인사를 건네야겠다.

‘올해의 실패’에 대해 쓰자며 마음을 나누던 글쓰기모임. 독서모임에서도 이렇듯 나답게! @전주 살림책방에서 고른 @byuljoy 님의 엽서책/ @오케이슬로울리 에서 주신 연말정산 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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