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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Jan 21. 2024

현실을 성장물이라 오해하고 싶은 아들 엄마

아들의 비밀과 거짓말, 자칫하면 <괴물>이 될 엄마

서울 친정에 머물던 새해 첫날, 온 가족이 함께 본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이었다. 기말고사 기간에 꼭 봐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대전에 상영관이 없었다. 홍대입구를 오랜만에 거닐고 오픈 무렵 해리포터 카페에도 가보고. 보고 싶던 영화를 남편, 아들들이랑 본다는 자체가 나는 좋았다.

정작 영화는 나의 신남과는 전혀 다른 결로 심각했다. 3부로 구성된 영화는 저마다 아팠다. 1부는 싱글맘 엄마의 시선, 2부는 신규 호리 선생님의 것, 3부에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시사인에서 읽은 기사 덕에 나는 슬픔에 빠지진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눈물 흘리며 감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큰아들은 ‘영화가 어렵네요.’했고 둘째는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의 감상 대신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의 괴물 편을 들으며, 이 언니들은 어쩜 이렇게 해석과 감상도 유려한가 감탄했다.


아이들의 서사는 아프면서도 아름다웠고 1부, 2부 모두에 공감 포인트와 고민거리가 담겨 있었다. 엄마인 나는 1부가 자꾸 생각났다. (2부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이야기하고 싶다. ) 남편은 다른 여자랑 온천에 갔다가 사고사 했어도 아들에게는 아빠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현재 자신은 정상가족이 아니어도 아들이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는 걸 보고 싶다고 소망하는 모순. 내 옆에 있는 아들은 다정하지만, 그 안에 있을 수도 있는 따돌림의 징후 혹은 폭력에 대한 의심과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싱글맘의 고뇌는 언뜻 보면 나와 다른 것 같지만 아들에 대한 고민은 같은 결이다. 애정을 기반으로, 아이가 잘 자랐으면 하고 바라는 기대와 걱정 탓이리라.

우리 둘째는 사춘기가 형보다 일찍 찾아왔고 진폭이 더 넓다. 초6의 사춘기는 부모에 대한 지긋지긋함을 표정으로, 온몸으로 표현하는데 그럴 때마다 (벌써 일 년째지만) 적응이 쉽지 않고 아들과의 소통은 매우 어렵다. 언제였던가, 학원 가고 나서 아들의 흔적(내팽개쳐진 책가방 외에)을 발견했다. 자그마한 샴푸와 올리브영 영수증이 거실 바닥에 있길래 볼 수밖에 없었는데 만구천팔백 원짜리 탈모방지 샴푸였다. 구입 시간을 보니 영어학원 끝나는 시간. 요즘 들어 학원 차를 타지 않고 따로 온 적이 많았다. 단어시험 보고 통과를 못했거나 미진한 온라인 수강 탓인 줄로만 알았는데  올리브영 쇼핑도 했었나 보다. 둘째는 머리숱이 적은 편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자고 일어날 때 베개에 머리카락이 종종 붙어있어서 ‘머리가 많이 빠지네’라고 지나가는 말로(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꽤 자주) 했던 게 미안해졌다. 하원하고 저녁밥을 먹이고

“바닥에 샴푸랑 영수증이 있더라?”

했더니 우리 도빵이는 태연하게

“응?”

샴푸가 있더라고 재차 말해줘도

“뭐? 왜?”

하며 모른 척한다. (어쩜 이리도 단답형인지!) 남편과 둘이 우리 뭐라고 하지 말자고 얘길 해두어서 더 이상 뭐라고 하진 않았다. 뻔히 얘가 산 걸 아는데 아들이 아닌 척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욕실에 갖다 뒀더니 다음날 샴푸 입구에 붙어있던 은색 스티커가 뜯겨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이렇게 바로 사용할 거면서 왜 자기 게 아닌 척했을까. 실행력 좋은 남편이 같은 샴푸를 대용량으로 주문했다.

아들의 거짓말로 아들의 고민을 알게 된 셈인데, 지난주에는 책상 밑을 정리하다가 또 아들의 새물건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트리트먼트와 헤어 미스트와 단백질 영양제였다! 무려 세 개나 되는 헤어제품이라니. 아들 용돈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달라고 하면 안 사주겠어, 왜 이렇게 혼자 꽁꽁 숨겨놓고 맘고생을 했을까. 쇼츠를 보고 이런 물건들을 알았을까? 혹시 누가 머리숱 가지고 놀렸나. <괴물>에서는 잘린 머리카락과 물통에서 나온 흙탕물 등으로 아들에 대해 고민하는데, 나는 고작 헤어용품이라니 아이의 고민이 고만고만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원한 아들을 이번에도 저녁을 먹이고 나서, 자기 방으로 불렀다. 숨겨져 있던 물건을 꺼내며

“우리 도빵이가 고민이 이렇게 많았어?”

하고 안아주었다. 나는 나대로 아이가 민망하지 않도록 한다고 한 건데, 우리 아들은 또 온몸으로 나를 거부했다. 자기 물건을 건드린 게 싫었을 수도 있다. '트리트먼트는 조금씩만 쓰는 거야' 이런 오지랖이 짜증 났을 수도. 내가 이러니 저러니 얘길 해도 내 눈과 마주치는 걸 거부하고 듣기 싫다는 걸 드러냈다. 얘기하지 말라는 신호를 읽었으니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할 수도 없었다. 자칫하면 철천지 원수가 될 수도 있으니.

귀엽기만 했던 둘째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들에게 비밀과 거짓말이 성장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걸까. 독립의 과정이란 어쩌면 부모는 모르는 다른 이야기를 지으면서 이루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괴물>의 두 소년이 그러했듯이. 미나토와 요리의 이야기는 얼마나 찬란하고도 애틋한가. 둘만의 비밀이 그들의 마음을 기차 한 량만큼은 키웠으리라.


1, 2부의 각 이야기 끝부분에는 뱃고동 소리 같은 이상한 효과음이 들린다. 3부에서야 소리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결말이 1부와 2부처럼 마냥 나락으로 치달을 것 같진 않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불길한 효과음으로만 느껴지던 그 소리가 서툰 불협화음으로 다가오면서, 살아가는 일에 능숙할 수는 없다고, 누구나 더듬거리고 헤매면서 살아간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


아들과의 소통 단절과 아들의 거짓말 혹은 비밀 또한 꼭 겪어야 할 성장통이려니 하련다. 내가 겪는 일들이 한 편의 성장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아들도 나도 쑥쑥 자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내 인생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갔으면 좋겠다.


내 새로운 연재 주제는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성장소설 속 인물이라 여기기 어떨까. 이거 좋다. 나는 각종 성장소설을 섭렵하리. 현실을 성장물로 착각한다고 하는 게 나을까 오해가 나을까 위안이라 해야 하나. 커어다란 성장물 안에서 마음껏 자라겠다.



나는 이미 소설 속인가 보다. 핸드폰에서 저장한다는 걸 발행해버렸다! 전체 드래그해서 오려두기할 수가 없어서 그저 두었다.ㅠㅠ 벌써 하트를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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