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온 날, 영화와는 다른 빈자리
3월 한 달을 착실히 살았다. 나 혼자서도 3월은 바쁘지만 큰아들의 기숙사 생활은 가족에게 영향을 주었다. 금요일 오후에 데리러 가기, 일요일 저녁에 데려다 주기 외에도 주말 두세 번씩 학원 라이딩도 추가되었다. 주말이면 맥주나 와인을 한 잔 하던 일도 뜸해졌고, 월요일마다 피곤한 얼굴로 출근하곤 했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오면서 우리도 이렇게 피곤한데 당사자는 얼마나 고될까 대화를 나눴는데 이번 주말에는 남편이 유독 까칠했다.
금요일 밤이던가, 소설을 읽다가 근처에 앉아있던 둘째와 남편에게 책에 대해 얘기했다. 책 안 좋아하는 아들과 책 잘 안 읽는 남편이지만, 읽고 있던 소설의 세계관이 신선해서 소개한 것이다.
"자원이 부족해져서 인간 7부제를 한대. 그니까 요일마다 신체를 공유하는 인물이 달라지는 거지. 필수 전문 인력이나 돈 많은 부자는 365일을 살고 나머지는 돌아가며 사는 거야. 신기하지? 그런데 주인공의 전날 사람이 주인공이랑 원수야. 어떻게 됐겠어?"
신나게 얘기하는데 남편이
"하나도 안 신기해. 신기하면 혼자 봐. 나한테 말하지 말고. 나도 피곤해. "
이딴 식으로 반응하는 거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기분이 팍 상했다. 아니, 내가 뭐 자기 의견을 말하랬나, 그냥 대충 듣고만 있어도 되고 하다못해 아들이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끔 '그래, 재밌겠다'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우리 식구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스노볼> 작가님 책이어서 더 열심히 영업한 건데, 아들 앞에서 민망하기도 하고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골이 났다. 이해심 넓은 내가 참아야지, 좀 전에 어디 교수님인지 전화가 와서 남편이 한참 응대하던 게 생각났다. 그래, 차 막히는 금요일 밤 운전하고 저런 전화도 받고 피곤하겠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금요일 밤에 업무 전화를 거는 거랑, 옆에 앉아있다가 책 소개하는 거랑 뭐가 더 나쁜데, 그 교수님한텐 '네네'하고 나한테 왜 이래 또 짜증이 났다.
사실 까칠함에는 둘째를 따를 자가 없다. 형이 주말 내내 학원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도빵이는 한 번은 나랑 도서관엘 간다. 무심하고 말없는 둘째는 뭔가 필요할 때 빼고는 내게 말을 먼저 거는 법이 없다. 도서관에서 겨우 학원 숙제를 하고, 나도 옆에서 프랑스어도 오랜만에 읽어보고 교육 관련 책도 읽으며 공부했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 덕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어 카페에 들렀다가 형한테 가자 제안했다. 다정한 모자이고 싶건만 카페에서 도빵이는 피파(아들은 축구 애호가입니다)를 했고, 우리가 나눈 대화는
"뭐 마실래?"
"아이스 초코"
가 유일했을 거다. 나머지는 죄다 나의 일방적인 말이고 도빵이의 반응은 아주 소극적이었다. 끝날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데, 20분 정도 늦게 끝난다는 연락이 왔다. 도빵이는 진작에 눈을 핸드폰에 고정시켜 두었다.
"엄마가 오늘 보고 온 영화가 있는데 음악이 너무 좋아."
독백을 하며 음악을 감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큰아들이 차에 탔다. 뒤돌아보며 반기자 새로 산 선글라스를 보더니
"선글라스가, 값비싸 보인다."
한다. 둘째에게
"엄마, 어때?"
물었을 땐 고개만 끄덕였는데!
"비싼 건 아니고, 오래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샀어. 자외선 차단하려고. "
"멋있어요."
덧붙이는 아들. 그러더니 곧
"음악이 딱 지금 이 시간에 어울리는 음악이에요."
한다. 시간은 다섯 시 무렵. <패스트 라이브즈>의 약간 몽환적인 음악이 그렇게 들렸구나.
"응, 맞아. 정말 그러네!"
방금까지 학원에서 문제 풀고 피곤할 텐데 웃는 얼굴로 이런 얘길 들려주는 다정한 아들이라니! 둘째의 무심함이 상쇄되었다.
그런데 둘째의 무정함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평소엔 잘 닦지 않던 서랍장 아래를 닦다가 팔을 긁혔다.
"앗, 따가워. 가시 조심해야겠다. "
하고 말았는데 저녁을 준비하면서 보니 세 군데에 빨간 선이 그어졌다. 계속 따가워서 정말 가시가 박혔나 싶어 보려는데, 슬프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내게도 노안이 온 것이다. 거실에 있던 둘째에게
"엄마 여기 가시 있나 봐 봐."
했는데
"왜? 엄마가 봐."
하면서 본 척도 안 하는 것이다. 내가 볼 수 있으면 봤지. 내 눈에는 안 보인다니까.
"아니, 좀 봐줘. 엄마가 잘 안 보여서 그래."
해도 꿈쩍 안 한다. 서러웠다.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큰아들을 부를 수도 없고, 그 옆에서 훈수를 두는 남편을 부를 수도 없었다. 다정한 큰아들이었으면 열심히 들여다보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큰아들 학원 간 시간에 얼른 조조영화로 보고 온 <패스트 라이브즈>는 이야기에 몸을 맡긴 채 함께 흐르고 싶은 영화였다. 초등학생 때와 이십 대, 또 십이 년이 훌쩍 지난 삼십 대 두 주인공의 만남에 푹 빠져들어 보면서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생각하고, 보고 나서는 당연히 멀어진 인연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먼 인연들보다도 당장 내 옆의 다정한 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퇴근하고 오면 늘 집에 있던 큰아들. 같이 다이제를 하나씩 베어 물고, 가끔은 디카페인 커피를 내려주던(내가 시켰다) 따스함. 아까 잠시 대화 나누면서도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는데. 그때는 몰랐던, 아이가 주는 안정감을 이제야 알겠달까.
과거여서 다 좋게 느껴지는 건 아닐 거다. 곁에서 지내던 그 잠깐의 시간이, 상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내내 붙어있지 않아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 그건 섬세한 관찰과 애정에서 비롯된다. 큰아들의 다정함을 알게 되었듯이. 지금 내 옆엔 무심한 둘째와 피로를 호소하는 남편뿐이지만. 이제는 도빵이의 모습을 탓하지 않고, 그저 탐구하고 싶다. 해성이 나영이의 자기다움을 좋아했듯. 저 아이만의 모습을 바라봐야지. 현재 내게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과연 어떤 매력일지, 금속성의 차가운 혹은 차돌처럼 단단한? 도무지 언어로 표현할 것 같지는 않은 도빵이의 애정을 두 눈에 가득 담아둬야겠다. 남편의 매력은 지면상 생략한다.
언급한 책은 @ 박소영, <네가 있는 요일>, 창비 (디스토피아를 그렸지만 재미있고 아름답다!)
영화는 @ 셀린 송, <Past Lives> (화면도 음악도 내용도 아름다웠다.)
(제목 사진을 내 그림으로 변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