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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Apr 20. 2024

감사 표현하기를 가르칠 것

배은망덕한 아들들

남편 생일이 4월의 목요일이었다. 그날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배움의 공동체(신입이다!) 모임일. 우리 둘 다 웬만큼 나이가 먹어 생일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지만 왠지 미안해서, 3월부터 ‘생일날 나 약속 있는데 괜찮지?’ 양해를 구했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기숙사에 있는 큰애 있을 때 생일 파티를 미리 하려고 준비했다. 슬프게도 내가 챙기지 않으면 우리 집 누구도 남편이나 내 생일을 알지 못한다. 생일 선물을 사러 가자고 둘째를 꼬드겼다. 아빠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애쓰는데, 선물도 사드리고 그러자고. 이제 중학생인데 이런 데에 마음을 좀 써야 한다고 말이다. 토요일밤에 미리 말하고 일요일 아침에 깨우면서 같이 나가자 했다. 쇼핑몰엔 오전에 가는 걸 선호한다. 주차난도, 북적이는 사람들도 피곤해서. 일요일마다 큰애 학원을 데려다주면서 남편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온다. 부자가 나가고, 그제야 일어난 둘째 아침을 주고 세수하고 머리 감기를 기다리면서도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분명 가기 싫다고 할 텐데 그냥 혼자 다녀올까, 큰애 점심시간을 맞추려면 외출은 후딱 해야 한다. 학원 일정 상 점심 먹는 데에는 겨우 20분 간의 시간이 주어지므로. 드라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금이라도 혼자 나갈까, 같이 가도 서로 좋은 소릴 안 할 게 분명한데, 하면서 망설였다. 머리를 말리고 나온 도빵이에게, 웃는 얼굴로

“얼른 아빠 선물 사러 갔다 오자.”

했더니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싫은데.”

설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내 머릿속에는 ‘배은망덕’이란 단어가 떠올랐으나 입 밖으로 내진 못하고, 차가운 얼굴로

“그럼 국어 문제집도 풀고 책 읽고 있어. 이따 오후에는 도서관 갈 거야.”

했다. 운전하면서도 왠지 부아가 나 전화를 걸어

“엄마가 문제집에 표시해 놨어. 거기까지 풀고 있어.”

하고 말았다.

아웃렛에 가서 남편에게 맞는 브랜드로 곧바로 향했다. 낡은 여름 재킷을 바꿔줘야겠다 싶어서 같은 색으로 적당한 걸 사고, 반팔티도 하나 골랐다. 와인을 사러 가는 길에 귀걸이를 얼른 고르고-물론 내 거다. 이런 쇼핑이 없으면 너무 억울하기만 할 것 같아서- 와인샵에 가서 세일 중인 보르도 와인을 한 병, 바로 옆에서 치즈 두 종을 집어 들고 나왔다.

집에 오니 그제야 책을 들춰보는 도빵이. 잠옷 차림 그대로다. 얼른 점심을 준비하고 식구들을 먹여서, 다시 큰아들과 남편을 내보냈다. 도빵이에게 도서관 갔다가 케이크를 사 오자고 외출했는데, 도서관엔 앉을자리가 없었다. 벌써부터 중간고사를 대비하는지, 익숙한 우리 학교 중학생들도 보인다. 안 되겠다며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로 향했다. 새로 열었는데 혼공족을 위한 공간이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둘이므로 마주 보고 앉아서 도빵이는 숙제를 하고, 나는 책을 읽었다. 자리를 뜰 무렵 옆테이블에 손님이 장바구니를 들고 왔는데, 꽃향기가 아주 좋았다. 바로 옆에 있는 로컬 가게에서 사셨나 보다. 아들에게

“엄마, 저 꽃 좀 사다 줘.”

했더니 반응이 없다.

“우리 이따가 케이크 사고 저 매장 들러서 계란이랑 사게, 장도 보자.”

했더니 이번에는 인상을 쓴다. 적극적으로 대답도 했다.

“싫은데.”

오늘 두 번이나 들은 저 인상적인 표현. 우리가 앉은 카페 1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로컬 매장이다. 바로 앞에 있는 식료품점 들르기를 그렇게 싫어할 일인가?

“야, 거기서 사는 두부, 계란 다 누가 먹어? 너 먹으라고 사는 거야.”

또 생각난 4음절 단어, 이번에는 말하고 말았다.

“엄마가 아까부터 생각나는 단어가 있어. 배은망덕. 무슨 뜻인지 알지?”

했더니 별로 표정의 변화가 없다. 설마 뜻을 모르나?

“몰라? 뜻 찾아봐. “

했더니 정말 검색한다. 그럼에도 별 반응이 없다. 오늘 아침부터 상기한 단어를, 혹시 기분 나쁠까 참다가 이제야 말했는데, 얘는 찾아보고도 변명도 안 하네. 자기를 지칭하는 걸 모르는 건가. 말을 덧붙이다간 서로 안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저녁 식사 전에 작은 케이크 하나에 초를 켜고 노래를 불렀다. 서프라이즈 선물을 안겼더니 놀라는 남편. 언제 이런 걸 준비했냐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흡족했다. 요새 큰애 학교며 학원 데려다주느라 주말에도 바쁜 게 안쓰럽던 참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온 식구가(아니, 둘째는 어쩐지 알 수 없다.) 피곤이 누적되었다. 짧은 기쁨의 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애쓰는 게 내 일 같아서, 고양이 그림엽서에 아들 둘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도 억지로 쓰게 했더랬다.


목요일 남편 생일날, 혼자 저녁 먹을 남편 생각에 반찬 가게에 들러 반찬을 사고, 밥을 해놓고 외출했다. 또 하나 챙긴 것은, 아들들에게 오늘이 아빠 생일이라는 걸 알리는 일. 아들 둘과 내가 속한 단체채팅방에 ‘오늘 아빠 생신인 거 알지?’ 남겼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겠는가? 곧이어 그 채팅방에 둘째가 이렇게 썼다.

“축하합니다”

헐. 그리고 밤 11시와 아침 7시 반 무렵에만 핸드폰을 손에 쥐는 큰아들은 다음 날 아침, 그 방에, 축하한다는 이모티콘을 올렸다. 다정한 큰아들마저 이럴 수가.

“이 방엔 아빠 없는 거 아십니까들?”

이라고 그제야 올린 나. 다시 한번 ‘배은망덕’을 떠올릴 수밖에. 아이들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고 교사들끼리 말하곤 하는데, 우리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해주는 것에 대한 수고를 모르고 감사도 할 줄 모른다. 거기에다가 어휘력 부족한 둘째에게 국어 공부는 필수. 요 며칠 아들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은혜 갚아.”

축하의 말, 감사 표현에 무심하고도 인색한 아들들과의 5월이 기대된다. 나는 또 어떤 에피소드를 쓸 수 있을까.

얘가 딸이라는 게 위안이 된다. 요새 자꾸 깨물기는 하지만. 앗, 겨울아, 너 혹시 깨물기- 오빠들한테 배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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