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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Jan 14. 2024

겹겹이 새로운 중학생

못 본 척 중학생 관찰기를 마치며

사제동행 문화체험인 영화 관람을 마치고 상영관 앞에서

“선생님, 괜찮으셨어요?”

묻는 세랑이.

“응? 응, 재밌었어.”

했더니,

“아, 선생님 귀 아프시다고 해서요.”

한다. 세랑이 반 수업인 월요일 1교시, 귀가 먹먹하고 불편해서 자꾸만 오른쪽 귀를 만지고, 머리를 숙이고 했던 기억이 났다. 관찰을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도 못한 순간에 나를 헤아리는 중학생이 있구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질 못했다.


중학교 2학년과의 일 년이 끝나간다. 아이들은 끝까지 입체적 인물로 내 곁에 존재했다. 종업식까지 일주일여를 남겨놓고 내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중학생이라니.

대청소 시간이었다. 우리 동수는 머리도 좋고 유머가 있어 우리 반의 재간둥이이다. 지원자가 없던 분야에 봉사활동 담당으로 뽑혔는데 자신은 봉사 시간 안 받아도 된다고 자꾸만 활동하기를 주저했고, 실제로 봉사할 시간에도 미적거리면서 대충 때우곤 했다. 2인조 활동이라 적극적인 옆친구와 너무 비교되었는데, 그 아이에게 민망해 하는 건 오히려 나였고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아 해서 나는 나대로 얌체 같다고 파악했다. 일 년 내내 같은 캐릭터였다. 힘든 일은 빠지려 하고, 자기는 괜찮다며 재치 있게 거절해 왔다. 친구와 다툼이 있어도 정색한 얼굴로 내 앞에서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아이였다.

대청소를 맞아 쓰레기통을 닦을 일이 걱정이었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반장은 교무실 분리배출 봉사를 하러 갔고, 부반장은 체험학습을 쓰고 나오지 않았으며 주번에게 시키기에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대청소로 일단 주번은 할 일이 많았다. 저마다 내가 시킨 일을 하느라 바쁜 틈에 옆에 있던 동수에게

“동수야, 쓰레기통을 닦아야 하는데 해볼까?”

물었다. 당연히 거절할 것 같아서

“물티슈로 닦으면 덜 힘들 거야. ”

 했더니 동수가 선뜻

“네.”

한다. 그러고는 대뜸

“물티슈로는 잘 안 되는데요.”

한다. 나는 동수가 하고있다는 거 자체에 놀랐기 때문에 그럼 이제 누굴 또 시키지 걱정하며

“그럼 어쩌지? 물로 닦아야 되나?”

하고 아무 기대 없이 말했다. 그러자

“네, 그럴게요.”

하고 쓰레기통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일반쓰레기통은 아주 작고 귀엽습니다.) 쓰레기통을 들고 가는 동수의 뒤에 대고 '우리 동수 정말 멋지다'를 퍼부었다. 동수가 쓰레기통을 닦겠다는 것부터가 의외여서 기특했는데, 물로 닦아오겠다는 것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잠시 후, 맨 밑에 붙어있던 끈적이던 먼지가 싹 사라진 통을 들고 온 동수에게 칭찬 세례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동수야, 우리 동수가 쓰레기통을 닦아오다니, 정말 멋지다. 너무 고마워. “

“선생님, 이게 저예요.”

으쓱하는 동수.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상황을 더 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 요새 아이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 최전선에 있을 거라 여겼던 아이가 학년이 다 끝나갈 즈음에 보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선생님들께 다 자랑하고 다녔다.


중학교 2학년과의 일 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귀엽게만 볼 수 없는 악의와 나를 갉아먹는 되바라짐에 한숨만 나오던 때를 지나 드디어 종업식을 앞두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마음이 괴로웠다. 할 일이 많은 틈틈이 아이들은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교사들을 찔러댔고 학생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동료 선생님들과 힘든 여정에 함께하고 있는 서로를 알아주고 위로할 뿐.

그런데 마지막까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2로구나, 알려주는 일주일이었다. 성장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의 통증에 괴롭다가도 그 끝에는 달라진 그가 서 있고, 함께 깊어진 마음에 책을 덮고 나서는 흐뭇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가. 성장소설 속을 중학생들과 함께 달려온 기분이다. 진상 고객님들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도 달라지는 아이 모습에, 그래, 아이들은 이렇게 달라지지, 하며 웃게 되었다.


시작을 준비하는 것만큼 끝을 맞이하는 데에도 애쓰고 싶어서 편지를 썼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글뿐이어서, 그들을 응원하는 내용의 글 한 편을 인쇄하고, 마지막 장엔 우리 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 네 장의 편지를 봉투에 담았다. 그래놓고 나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우리 반 마지막 국어 시간에는 선생님께 편지 쓰기를 시킬 요량이다. 억지로라도 시켜야 내 마음이 다독여질 듯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편지 쓰는 시간에 나는, 아이들 각자 가진 우리 반 소통 공책에 아이의 장점을 써주려고 한다. 김하나 작가님의 <말하기를 말하기>에는 중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이 따로 불러 '기억해, 너는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담겼다. 내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일 년 간 지켜본 바 자신의 강점을 짚어주는 일을 꼭 해주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힘이 되길 바라면서.

우리 반의 일년살이를 사진으로 보여줘야지. 단체대화방이 있어도 아이들은 거기에 사진 올리는 걸 안 좋아한다. (얼마나 귀찮은지 모르겠다. 일일이 사진을 보내주고 그랬다.) 그래도 이번에는 보여주고 말겠다. 1학기에 그들이 얼마나 귀여웠는지를. 우리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서먹하던 우리가 이만큼 정이 들었고, 이제는 헤어지게 되었다는 레퍼토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인생의 단편을 중2들과 함께했고, 그들 덕에 나는 나의 글을 쓴다. 작년에 출간한 책에는 우리 반의 이야기도 담겼다. 나를 속상하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고마운 중2들. 그들에게 2023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한 학기의 배움을 정리하며 이렇게 놀라운 작품을 그려내다니. 저 지우개가루 그림이에요. 예술제에서 그들은 눈부시게 빛났다. 겹겹이 새로운 중학생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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