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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Jan 07. 2024

아직 12월 45일을 살고 있는 학년말

학년말 교사의 상태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으나 체감상 2023년 12월 45일경에 머무르는 듯하다. 학년의 마무리가 안 되었기에 그럴 것이다. 방학할 때가 되었다고 내 몸은 진작부터 시위 중이다. 색색깔의 약이 담긴 약봉투를 끼니마다 챙기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금요일의 일이다. 5, 6교시 동아리 시간에 독서동아리 '독토리'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우리끼리 파티해도 충분히 좋았겠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다. 연단 두 시간 중 첫 시간은 우리끼리 즐기고 준비했다. 간식을 먹으며 일 년 간의 활동사진을 영상으로 감상하고, PPT에 담긴 동아리와 책 홍보를 보았다. 이 시간 발표는 담당교사인 내가 했지만, 다음 시간에는 동아리 회장과 부회장이 할 거라 일러두었다. 우리가 어떻게 모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책 한 권을 만들어냈는지, 이 책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 등의 홍보와 함께 책 제목과 관련한 활동도 하나 넣어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자고 했다. 돌아가며 책을 만든 소감을 나눴다. 뿌듯한 마음과 감사가 채워졌다. 일 년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일 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 쓰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보관했다가 내년 이맘때쯤 주겠다고.

쉬는 시간도 없이 다른 동아리를 초대했다. 여섯 팀의 동아리를 순서대로 모시느라 타임라인을 짰다. 학기말 단축수업으로 40분의 시간이었다. 7분 간격으로 동아리 담당선생님들께 시간을 미리 안내해 도서관으로 모셨다. 첫 번째 팀을 초대하고 회장과 부회장은 조금은 어수선하게 진행을 했다. 동아리와 책을 소개하고 책을 둘러보게 하고, 참여를 시키는 동안 다른 부원들은 웰컴간식을 증정하고 자리를 안내했다. 뒤표지에 실린 글의 작가 세 명은 해당 부분을 차례로 낭독했다. 참여한 학생에게 간식과 굿즈(우리가 만든 엽서와 책갈피)를 안겼다. 좋은 질문을 한 사람에게는 책과 간식을 선물했다. 이렇게 하기를 여섯 차례! 회장 부회장의 진행은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각자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어쩔 수 없이 병풍처럼 서있던 부원들도 있었으나 우리가 마련한 행사에 학생들이 초대되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는 것 또한 의미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꽉 차게 시간이 흘렀다. 준비한 우리도 초대손님들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간식과 굿즈와 책을 잘 챙겨가도록 했다. 일 년 간 함께 책을 만들면서 나도 행복했다는 감상은 5교시에 진작 해두었다.

독토리 <스페이스> 출판기념회

보내놓고 나니 다 함께 책 들고 기념사진도 안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뜻깊은 시간이었으면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내 안에서는 '힘들다 힘들어'가 연달아 나왔다. 이 두 시간을 위해 내 두뇌는 풀가동되었다. 사실 꽤 한참 전부터 그랬다. 7분이면 충분한 시간일까. 여섯 팀의 동아리 학생들이 오면, 간식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줄 수 있나. 목적사업비라 예산을 0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딱 이만큼의 간식을 구입하려면 뭘 얼마나 사면될까. PPT 구성은 어떻게 하지? 책 100권은 언제 갖다 놓을까. 몇 권씩 가져가라고 할까. 책상 세팅은 그대로 두고 해도 될까. 참여시킬 활동은 쓰게 할까, 발표하게 할까. 아침부터 동아리 이름과 책 제목을 굵은 글씨로 크게 프린트해 놓고. 라벨지에 우리 동아리 이름과 책 제목을 담아 인쇄했다. 부원들 모두 옷 위에 붙이고 우리를 표시했다. 아이들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사 시작 전부터 많이 설렜고, 이런 일을 기획하는 거 자체가 신났다. 다만 내 체력은 나의 달뜬 마음과 달랐다.


전날에는 문화예술체험 공연 관람이 있었다. 전세버스로 편하게 이동한다고는 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인원을 체크하고 공연장에서 지도하고 하는 데에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공연장 도착 후, 버스가 우리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아이들도 태운다고 하여, 가지고 갔던 실내화주머니를 다 챙겨 들고 내리도록 했다. 맨 뒤에 앉아있던 학생에게 보이는 실내화가방을 가지고 내리라고 했더니, 가방 세 개에다 주머니 없는 슬리퍼까지 수거해 왔다. 잘했다 하고 아이들에게 '이거 누구 거야?' 물으니 아무도 주인이 없다. 아무도 나서지 않다가, '그거 우리 탈 때부터 있었어'하는 제보를 들었다. 헐, 이미 버스는 떠났는데 어쩔.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실내화가방을 아무도 들려 하지 않았다. 챙겨 들고 공연을 보고 다시 버스로 와서 버스 기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그 학교 다 데려다주고 끝났으니 우리 학교로 들고 가라는 거다. 그 얘길 듣고 갑자기 어지러워 휘청 했다. 내가 괜히 들고 오게 해서 이렇게 만들었나 싶기도 하고. 결국 그 실내화 가방을 다 들고 교무실로 왔다. 학년부장님이 해당 학교에 연락을 드렸고 그날 오후 한 선생님께서 출장을 내고 찾으러 오신다고 하셨다. 헐, 놓고 내린 건 학생들인데 뒷감당은 선생님이 하신다니 죄송스러웠다. 다른 반 학생은 버스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는데 다른 학교 학생이 챙겨서 그 학교에 핸드폰이 가있었다고 한다. 휴대폰은 학부모님이 찾으러 가셨다는데 실내화가방은 교사가 챙긴다. 이래저래 교사가 무슨 죄인지. 그날 오후 나는 예산에 맞추어 간식을 사 도서관에 나르고, 책 상자를 갖다 두고, 책 표지를 인쇄해 계단 및 복도 등 게시하는 등 다음날 행사를 준비하고 퇴근 시간 30분 전 병조퇴를 달고 병원엘 가서 약을 탔다.


그전날에는 진로와 연계한 문학기행이 있었다. 출근 시간 전인 아침 7시 10분까지 모여서 서른일곱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까지 다녀왔다. 대학교를 탐방했고, 문학관엘 다녀왔으며, 힙한 전시를 보고 오는 일정으로 학교에는 저녁 6시 20분에 도착했다. 독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어여쁜 학생들과 함께해 인솔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동선도 낯설고 온종일 체험 시간에 맞춰 동동거리며 다녀야 해서 마침 감기약이 떨어진 나는 콧물이 잔뜩 들어찬 채로 골골댔다. 학생들은 다양한 체험에 진심으로 기뻐했고, 부여한 과제도 훌륭하게 해냈으며 소감문은 알차고 진지했다.

문학관에서 영상도 설명도 진지하게 듣던 학생들, 그라운드시소 서촌의 전시 <Mundo Mendo>는 아이들의 감성을 키웠다.


이게 2024년 1월 첫 주, 단 나흘의 일이다. (화요일을 더 보탤 수도 있다. 학년의 꿈끼 자랑 행사가 있었고, 전교사 협의회가 있었고, 학급에서 있던 사고로 처리해야할 일들이 있었다.) 연이은 학교행사는 내 의지대로 만들어낸 것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다녀온 것도 있으나 아이들에게 가치 있는 활동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다만'이라는 부사를 떠올린다. 다만 이 모든 학교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운영하는 교사의 복지는 어디에 있는지? 문화예술체험이 있던 날, 다른 학년은 또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에 모여 서울에 있는 놀이공원엘 다녀왔다. 저녁 일곱 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다음 날 모두가 정시에 출근해 일정대로 하루를 마쳤음은 당연하다.

학기말 교사는 정말이지 너무나 바쁘다. 내내 뛰어다니다가 방학을 맞닥뜨리는 일을 해마다 한다. 학년 말에는 더하다. 학교생활기록부 마감은 교사들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각종 일에 화장실 갈 틈도 없다. 보통 학년말에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기에 정신없는 와중에 교사들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업무에 치중한다. 내게는 지난 일주일이 그러했는데 다음 주에 있을 학교 예술제를 준비하는 선생님은 또 오죽할까.

교사를 위하는 이는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누가 교사의 지친 마음과 몸을 달래주지? 독토리의 좌청룡 우백호가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인사해 줘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 문학기행 다녀온 우리 부반장이 '너무 좋았어요, 또 가고 싶어요'해도 쉽게 그러자 할 수 없는 몸.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약기운에 헤롱 대며 그 기운을 빌어서 기록한다. 중학생을 관찰하는 기록이라고는 하나, 학교에는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이 있다고 알리고 싶다. 교사는 방학이 있지 않냐고 쉽게 말하지만, 방학에 가까워진다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지친다.

다크서클을 달고 사는 옆자리 선생님의 굳은 어깨를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볍게 할 수 있을까. '우리끼리라도 즐거워야 돼' 하시는 동료 선생님의 말씀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우리끼리 편해야 한다고. 더 많이 웃어야 한다고. 동료 선생님들과 찐하게 우리끼리의 종업식을 해야겠다. 아직은 멀어 보이지만 하루하루 다가오는 그날을 위해 보이차 두 주전자를 마시며 지친 몸을 충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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