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아 Dec 17. 2023

너그럽지 못한 담임 마음

작은 위로가 다시 사랑하게 한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 그걸 나만 모르고 지냈나 싶은 일주일을 지냈다. 우리 반을 위한다는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혼자 깨닫고 속상했거든. 11월부터 낌새가 있었지만 12월이 되자, 중학생들은 ‘내년에는 저희 맡지 마세요.’를 온몸으로 시전하는 듯 정을 떼는 일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중학생한테 그림책을 건넨 내가 잘못인가. 이번주의 일이다. 힙하다는 작가님에 대해 알게 되고, 북토크를 신청해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림책을 조회시간에 들고 갔다. 노티드 도넛 패키징으로도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협업하는 작가님이래, 했더니 끄덕이는 부반장 한 명. 우리 애들이 보아도 좋을 내용이라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직접 읽어주지는 못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편하게 보라고 교실 앞 스마트패드장 위에 둔 것이다.

그날 점심시간, 요새 많이 힘들어하는  아이를 조퇴시키고 교실 뒷문을 들어섰더니 그 그림책이 분리수거함 위에 떡하니 놓여있다. 쓰레기통 위에. 무슨 상황일까. 내 마음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괘씸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지들 보라고 둔 것을 이렇게 취급했구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랬느냐고. 그림책을 들고, 교실 뒤에 붙여둔 엽서, 그림, 잡지 기사 등을 마구 떼어내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다 쓰레기 취급 당하는 느낌이었다. 교실에 아이들 읽으라고 갖다 둔 책 바구니도 다 치우고 싶었다. 속상한 마음은 곧 다른 데로 번졌다. 같은 반에 마음이 힘든 친구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구나, 친구가 한 달째 혼자 지내도 저희들끼리 신났구나, 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이 없구나.

다들 자리에 앉도록 시키고 교탁으로 오면서 보니 스마트패드장이 없다. 아까 담당학생이 신나게 옮기던 게 생각났다.(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한다고 가져가기로 했었다.) 우리 솔미가 스마트패드장을 옮기다가 그 위에 있던 그림책을 교실 뒤에 급하게 올려두었을 장면이 그려졌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지. " 말하면서 화내던 걸 멈추지 않고 이때다 싶어 계속 훈계했다. 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지라고. 누가 힘든지, 어떤지 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각자 살 거라면 학교는 왜 있는 거냐고. 학교에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 다르다는 것도 알고, 서로를 존중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고. 그런 소리가 입에서 술술 나왔다.

우리 반 급식 차례가 되어 내보내고 나니, 이쁜 학생 하나가 내 옆으로 온다. “선생님, 아까 그 책 솔미가 스마트패드 옮기면서...” “그런 거지? 응, 그랬나 보다.” 하고 말했지만 전체 우리 반 앞에서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내 심보.

그날 종례 시간에 보니 교실 뒤편에 새로운 엽서며 그림 등이 붙었다. 게시판 담당 학생에게 며칠 전에 더 붙이라고 줬던 거였다. 모른 척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같은 그림책에 사인받은 포스터를 가지고 들어갔다. 좋은 말로 건네고 붙여두고 싶었는데 옹졸한 마음이 긴급 발동했다. 매일 아침마다 “안녕~”하면서 들어가고, “누구 아침은 먹었니?” 묻고, 하던 게 새삼 생각났다. 말없이 들어갔더니 나를 보고도 데면데면한 학생들. 아무도 인사하지 않는다. 반장에게 인사를 시켰더니 당황한다. 한 번도 조회 시간에 인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안 가르쳐서 그렇구나, 애들한테 얘기했다. “인사하라고 안 가르쳐서 인사도 안 하는 거지? 그래, 인사부터 하자. ” 가만 보면 요새 아이들은 인사하는 법을 모른다. 언제는 전날 비가 와 빌려준 우산이 아침에 교탁 옆에 널브러진 채 있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최소한 잘 정리해 두어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요새 애들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싶었다. 아니, 진짜 몰라서 인사를 안 하는 거였겠지? 또다시 복잡한 심경에 그전날 저녁 북토크에서 작가님께, “중학생들에게 한마디 써주세요. ”하고 받은 사인 포스터를 어찌할까 하다가 그냥 가지고 나와버렸다. 이거 붙이려고 가져왔는데, 붙이면 또 떨어지겠지? 아무도 안 볼 텐데 뭣하러 붙여 혼자 궁시렁거리다가 뒤 게시판에 붙은 그림들도 다 떼어서 가지고 나왔다. 아이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어제에 이어 담임 왜 저러나.

점심때 급식지도하러 교실에 갔더니 남자아이 하나가 안녕하세요, 한다. 어, 그래.. 억지로 인사받은 기분에 얼떨떨. 우리 반에서 우리 반 아이가 인사하는 게 너무도 어색했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뭔가 의식하고 있구나, 노력하는구나 싶었다.



이런 얘길 동료 선생님들과 나누자, 애들이 정말 인사할 줄도 모른다 공감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 반 벽에 붙여둔 것들을 아쉬워하셨다. 생각해 보니 거기 있는 게시물이 좋았다는 피드백을 주는 건 선생님들뿐이었다. 수업하다가 봤는데 이번에 붙은 엽서가 예쁘더라, 그 기사 참 좋더라, 이쁘게 잘해놨다, 볼 때마다 좋던데 등등. 선생님들을 위해 게시판을 다시 살려야 하나?


점심시간 호통치던 그날, 우리 반 아이 하나가 교무실에 찾아와 작은 쪽지랑 비스킷을 줬다. “선생님, 힘들 때 이거 드세요. ”라 적힌 쪽지였다. 아이고, 고마워. 친구들이랑 거리가 생겼다는 아이라 마음이 쓰이던 차였는데 나한테 건네는 다정함이 왜 이리 찡한지. 이러니 내가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단념할 수가 있나.


고수리 작가님 <선명한 사랑>을 읽다가 아이들에게 속상했던 마음과는 별개로 다시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샘솟았다. 이대로 지낼 수는 없지. 국어 수업은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 다른 반에 수업하러 가는 마음이랑 우리 반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게 속상했다. 국어 시간, 학습활동 중에 단어 뜻을 보고 단어를 찾아 색칠하는 부분이 있다. 정답을 고르면 하트가 나오는, 그 부분에서 말했다. “선생님 마음이야. ” 싱긋 웃는 얼굴들.

수업이 끝나고 교실 뒤에 게시물을 다시 붙였다. (미리 들고 갔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 마음이 머쓱해 혼자 하기는 민망해서, 마침 내가 있을 때 험한 말(!)을 하던 아이한테 마스킹테이프를 계속 잘라 달라고 요청하고 옆에 세워두었다. 여기저기 서점에서 받은 엽서와 책 읽고 나온 엽서, 예쁜 디자인의 봉투와 '시사인' 기사(이번 기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편으로)를 예쁜 마스킹테이프로 붙였다.


 그림책이 쓰레기통 위에 있던 건 나도 뜨끔, 아이들도 뜨끔하던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오해였다는 거. 이렇게 우리가 하나 배워갈 수 있다면 좋지. 학년 말, 학부모들과의 잦은 상담과 마무리해야 할 쌓여있는 업무에 내 마음이 쪼그라들었던 모양이다. 금세 오해하고 금방 토라지고. 찌그러진 내 마음을 펴준 것들은, '안녕하세요'하는 짧은 인사, 작은 비스킷 하나와 쪽지, 동료 선생님들의 다정한 말들이었다. 그리고 고운 노란색의 <선명한 사랑>이란 책. 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고수리 작가님의 좋은 친구가 해준 말씀이었다.

"나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재밌는 친구, 멋진 사수, 살가운 딸, 다정한 엄마. 그런데 나는 한 사람이야.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잖아. 모두에게 마음을 쏟는 건 불가능해. 소문은 터무니없지만 힘이 세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지. 나는 누군가에겐 서운한 사람, 무서운 사람, 심지어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 거야. 좋은 사람이란 뭘까.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나다운 나'가 되고 싶어.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고수리, <선명한 사랑>, 유유히

버럭 소리를 지르고, 이랬다 저랬다 하던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지만, 결국엔 나다운 내 모습 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교실에 내가 모아둔 예쁜 풍경들을 붙이고, 좋은 글귀들을 붙이고, 북토크에서 만난 작가님께 중학생들을 위한 메시지를 받고 하는 게 다 내 모습인 걸. 작은 것 하나에 금방 속상했다가 다시 괜찮았다가 하는 것도. 조만간 그림책을 들고 읽어줄 장면이 그려진다. 이슬로 작가님이 써주신 메시지처럼, 아이들의 매일이 예쁘게 물들기를. 변덕스러운 담임과 함께일지라도.

앞 칠판에 붙여둔 @ 이슬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위즈덤하우스 포스터 / 우리 반 교실 뒷편
@ 고수리, <선명한 사랑>, 유유히


이전 07화 쉬는 시간의 바이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