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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Dec 24. 2023

내 불안이 하는 일, 공감

중학생의 자유함에 대처하는 나의 불안

기말고사 감독을 하면서의 일이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불편해 '자리에 앉습니다'를 큰소리로 외쳤다. 평소에도 반마다 다른 분위기는 시험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전히 산만한 이 반에서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이 나를 옥죄여왔다. 서랍을 비워야 하는데 서랍 가득 책이 들어차있는 게 보이고(시험 기간에는 빈 서랍을 앞을 향하게 책상을 돌려둔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치우라고 했더니 우왕좌왕 자기 가방을 찾아 헤매고(시험 시간에는 가방도 교실 앞에 둔다) 급기야는 '제 가방이 없어졌어요' 하기까지. 가방에 발이 달렸나. 온통 시커먼 가방이 늘어서있는 가운데 자기 가방을 못 찾는 아이도 있는 거다. 일단은 교탁 밑 서랍에 넣으라 안내하고, 책상 줄을 맞추고 자세를 바르게 시키고 주의 사항을 말하며 OMR 카드를 나눠주었다. 시험지를 배부하고 인쇄 상태를 확인하라는 걸 잊지 않았다. 본령이 울리고 응시.


일단 시작된 고요가 나를 차분하게 했지만 내 눈은 사방팔방으로 분주했다. 그런 가운데 느낀 점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은 시험 시간에도 티가 난다는 것.

책상 위에 올려둔 필기도구를 보고 의아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응시요령에 따르면 필요한 필기구는 컴퓨터용 사인펜과 검은 볼펜, 거기에 수정테이프는 선택. 문제를 편하게 풀기 위한 샤프펜슬이나 연필, 지우개 정도는 당연히 추가될 수 있겠지. 책상 위에 컴싸 두 개, 샤프 두 종류를 꺼내놓고 대비하는 아이도 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형광펜이었다. 대 여섯 개의 필기구를 놓고 문제를 몇 번을 푸는 건지, 종료 10분 전에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검토하는 것이 아닌가. 책상 배열에 있어 옆 사람, 앞뒤 자리와 여유를 두기는 하지만, 형광펜으로 표시하면 자기 답이 잘 보일 텐데 저래도 될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이 반 감독을 다녀온 선생님께서 내게, 누구는 국어 시험을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 가며 풀더라고 말씀해 주셨지. 그래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니 지금 와서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암기 과목의 경우 45분의 시간은 여유롭게 마련. 20분 정도면 컴퓨터용 사인펜 마킹까지 끝낸다. 겨울 외투를 입은 채로 혹은 허리 밑을 감싼 채로 시험 보는 학생들 가운데에는 담요를 무릎 위에 두르거나, 추워지면 두를 요량으로 의자 뒤에 걸고 시험을 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할 일을 다했는지 주섬주섬 움직이는 학생들.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서 도톰하게 쿠션을 만들어 책상 위에 두고 베개처럼 쓰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자기 몸이 안 보이도록 감싸고 엎드리네? 담요를 펼쳐 어깨부터 두르고 엎드리는구나. 음, 시험 보다가 저래도 되나 고민하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시험 시간에 몸을 움직이는 거 자체가 신경이 쓰이고 활동에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중학생들은 그런 생각일랑 없는 듯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아이들도 얼추 문제를 푼 것 같고 내 마음의 평정 또한 축적되고 있었다. 노랑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답안지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쪽으로 와' 속삭였다. 아이가 앞쪽에 앉아있어서 뒷문보다는 앞문으로 내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노랑이는 내 말엔 아랑곳 않고 뒷문으로 향했다. 교실 뒤쪽으로 걸어가 뒷문으로 나가는 아이를 쳐다보다가, 복도감독에게 인계했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같은 줄 맨뒤에 앉았던 주황이가 손을 들고 수정테이프를 찾는다. 갖다 주고서도 왜 하필 연달아 이러는가 싶었다. 좀 있다가 노랑이가 뒷문을 열고 돌아오는데, 주황이가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보는 거다. 들어오던 노랑이의 눈도 자연스레 자신을 보는 주황이를 향했지. 나도 모르게

"눈 맞추지 마!"

하고 다급하게 말했고, 그 둘은 곧 자기 자리, 자기 시험지로 눈길을 돌렸다. 뭔가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왠지 불안한 마음에 내가 급히 소리친 꼴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내가 너무 크게 말한 건 아닌가. 눈알을 여기저기로 굴리는 활동에 더해 내 마음마저 바빠졌다. 이 콩알만 한 마음. 하지만 방금 전의 상황은 둘을 향해 전달해야 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나를 달랬다. 그래도 저 아이들은 내가 버럭해서 시험 시간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까 무안했겠다 걱정이 됐다. 남은 시험 시간은 그런 생각들로 채워졌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시험 시간이라고 더 조심해야 한다든가 하는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지레 걱정하고 전전긍긍하고 있구나. 별일 아니었던 것을 알고는 나는 또, 내가 괜히 큰소리를 냈나 걱정했다. 나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몸 사리고 움츠러들고. 나는 왜 이다지도 걱정이 많은가. 그에 반해 내 앞에 앉아있는 중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험을 치르는 통제의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자유로웠고, 통제받고 있는 건 오히려 불안해하는 나 같았다.


종료령이 울리고, 답안지를 걷고 수를 세어 가지고 나오다가 아이를 마주쳤다.

"노랑아, 화장실 갈 때 선생님이 앞으로 나오랬는데 왜 뒤로 갔어? 그리고 올 때 주황이랑 눈을 맞추면 어떡해. 안 그래도 너 나가자마자 답 고쳐서 놀랬단 말이야. 시험 때 화장실 다녀와서는 절대로 딴 데 보면 안 되는 거야."

아이는 내가 말하는 틈틈이 ‘어, 못 들었어요’, ‘몰랐어요’, ‘죄송해요’했다.

"아이고, 알았어. 선생님이 갑자기 소리내서 놀랐을 것 같아. 남은 시험 잘 보고!"

주황이랑은 대화를 못 나눴지만 오해를 풀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마음을 쓰는 것도 다 나의 걱정 덕분인 거지?


불안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사 역할을 하면서 학생이 ‘저지른’ 일에 대해 함께 불안해하며 걱정할 때가 많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떨리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 입장에서 상대에게, 부모님께 내가 대신 변호하기도 하는 것 같다. 중학생 아이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막연하게 느끼고 예리하게 표현해내지 못한다. 그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일을 나는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반 분홍이가 앞자리 아이의 아이보리색 새 잠바에 빨간색 잉크를 여기저기 튀게 했다. 수업에 집중 안 하고 볼펜을 만지작거리다 일어난 일이다. 분홍이의 미안함을 상대 학생과 부모에게 전한 건 나였다. 가운데에서 전화를 드리고 문자를 주고받고, 일주일 넘는 시일이 소요되어 무난하게 일이 끝났다. 내가 먼저 이쪽 저쪽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면 문제가 크게 번지지 않는 것 같다.

시험 감독을 하면서 튀는 행동들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까 걱정한 건 나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형광펜으로 시험지를 풀면서 자기가 몇 번 검토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목도리와 잠바, 담요로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면서 시험 시간의 긴장감을 완화할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맘 졸임을 해소했을 것이다. 나의 불안을 통해 상대에 대한 공감에 이르는 일이 꽃길은 아니다. 하지만 공감을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다.


시험 감독할 때 나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남자아이들의 머리손질에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손을 드는 것인가 하고 일단 눈길이 가는 것이다. 요새 남자아이들은 가르마를 이마부터 싸악 가르는 게 아니라 앞머리는 그대로 둔 채, 양손으로 윗머리를 가르는 게 유행인가 보다. 시험 보다가 머리를 손질하는 것도 자신을 편안하게 하는 한 방법이겠지. 불안을 통해 헤아리는 마음을 넓히는 나, 공감력이 1% 증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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